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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o Hwang May 25. 2020

스텝밀(Staff meal)

    K는 매일 일하는 식당 직원 둘과 점심을 만들어 먹는다. 그리고 그 사진을 나에게 보내준다. 남의 끼니를 책임져야하는 직업의 숙명이겠지만, 그 시간은 대부분의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4시쯤이다. 공교롭게도 나는 4시쯤 간식을 챙겨먹는게 습관이 되어 K의 점심식사 사진은 항상 내 배고픔과 맞물린다.

비가 왔던 어제는 들기름 메밀국수를 만든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이럴수가. 이건 좀 많이 힘든데. 집 근처에 있던 좋아하던 메밀국수집이 사라진 뒤로 몇 달간 메밀국수가 계속 생각나던 참이었다. 그 곳의 들기름 메밀국수와 물 대신 주는 따뜻한 메밀차가 정말 끝내줬는데. K는 오늘도 ‘자기가 만들었지만 정말 맛있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호밀빵에 치즈를 올려 구워먹으며 들기름 메밀국수를 부러워했다.


“내일 밥 먹으러 올래? 내일은 아마 타키코미고항 할 것 같아. 너 봄죽순 좋아하나?”


    타키코미고항이 무엇인지도, 죽순과 봄죽순은 무엇이 다른지도 몰랐지만 나는 바로 가겠다고 답했다. K가 매일 보내주는 점심식사 사진들은 하나같이 맛있어 보였으니까. 알고보니 타키코미고항은 일본식 돌솥밥이었고, 죽순은 원래 봄비를 맞으면 금방 자라버려 질겨지기 때문에 봄죽순만 먹는다고 한다. 그럼 그냥 죽순이라고 하면 되지 않나 하고 생각했지만, 봄죽순이라니 단어가 뭔가 더 싱그러워 보이고 군침이 돌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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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시쯤 K와 직원 둘이 먹는 이런 식사를 ‘스탭밀(Staff meal)’이라고 한다는 것을 K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레스토랑에서 피크타임이 지나고 스태프들이 모여 먹는 식사. 스태프들이 먹는 식사라니 이것을 일컫는 용어가 따로 있구나. 생각해보면 나도 스탭밀을 꽤 오래 먹었다. 카페 알바를 3년간 하며 프라푸치노나 빵으로 식사를 때우곤 했는데 그것에 이름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스타벅스가 레스토랑은 아니지만 이제 한국인에게 밥과 커피는 붙어다니는 탓에 바리스타들의 식사도 점심과 저녁, 혹은 저녁과 야식 사이에 어중간하게 걸쳐있다.

    스탭밀의 성격이란 것이 그것 뿐은 아니겠지만 내가 처음 생각한 스탭밀의 성격은 두 가지 정도였다. 노동과 노동 사이에 끼어있는 식사, 그리고 남들이 식사를 끝마친 뒤에 먹는 식사. 짧은 휴식시간 동안 비좁은 창고에서 얼른 때워야했고, 다른 식당들도 브레이크타임이라 사먹을 식당도 몇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칼로리가 높은 프라푸치노나 매장에서 파는 빵으로 소위 간단히 떼우곤 했다.

    정규직이 된 지금에서야 구내식당 메뉴 중에서 마음가는 것을 고르는 정도로 발전 해서, 노동보다 노동을 끝낸 나에게 더 집중하게 되었지만 이마저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재택근무를 하며 다시 돌아가고 있다. 매일 끼니로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스스로에 대한 관심과 정성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더더구나 나처럼 게으른 사람에게는.

    그래서인지 K의 스탭밀은 신기했다. 냉장고에 재료가 있거나 생각나는 음식을 간단히 만드는 것 같은데도 항상 정성스럽고 맛깔스럽다. 정신없는 피크타임을 견뎌낸 노동에 대한 진심어린 축하같다. 그리고 괜히 내 밥도 신경쓰고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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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먹은 타키코미고항은 내 입맛에 딱 맞았다. 평소에 내가 슴슴하게 먹는 것을 좋아해서인지, K가 일부러 간을 슴슴하게 한 것 같다. 내가 술안주로 은행구이를 종종 먹었더니, 밥에 은행도 듬뿍 넣었다. 내가 온다고 신경을 쓴 것인지 어쩌다 얻어걸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먹으면서 참 고마웠다. 스스로를 위한 끼니에서 다른 사람을 염두에 둔 끼니로, K의 마음 씀씀이만큼 내 세계가 넓어졌다.


“나 이런 맛 너무 좋아. 콩나물 간장밥도 엄청 좋아하거든”


“야 죽을래? 이건 콩나물 간장밥따위와는 비교도 안되게 만들기 힘든거야”


타키코미고항에게 실례되는 말을 했구나. 어쨌든 너무 맛있었던 터라 남은 밥을 비닐봉지에 싸서 들고왔다. 덕분에 저녁도 맛있게 해결했다. 밥 한끼로 봄죽순처럼 행복해진 하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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