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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o Hwang Jan 31. 2021

3주년

게이 데이팅 어플 이야기

 잭디를 접속한지 오늘로 만 3년이다. 아, K를 만나고 연애하기까지 1달은 걸렸으니 3년하고 30일 정도가 되겠구나. 아이폰을 켜니 K와 만나기 시작한 날이라고 알람이 뜬다. 까먹으면 죽기때문에 2주 전부터 알람이 울리게 설정해놓았다.


 잭디에서 새로운 기능을 홍보하는 일러스트 의뢰가 와서 정말 간만에 그림을 그렸다. 3년간 잭디에 접속하지 않았더니 이런 새로운 기능이. 스와이프로 매칭하는 기능과, 보낸 사진을 캡처하지 못하게 만드는 기능이 생겼다고 한다. 얼굴 사진을 캡쳐당해 직장에 다 알리겠다 협박 당했던 옛 친구가 생각난다.


 일러스트 참고자료(?)를 위해 잭디를 설치해볼까 하다가, 과거의 남자들이 스쳐지나가며 역시 관두기로 한다. 참으로 애증의 앱이다. 처음엔 앱으로 같은 게이를 만난다니 이것이 신인류의 사랑인가! 했다가, 공일오비의 노래 가사처럼 정말 ‘어디서 이런 남자들만 나오는거야~ 야야야야’를 흥얼거리게 되는. 나도 이젠 다른 친구들 처럼 맘에드는 누군가를 사겨보고 싶어~ 라고 후렴구를 마저 따라 불렀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3년하고 30일 전쯤의 어느 날 밤에 나는 역시나 잭디를 하고 있었다. 불면과 출근사이 어딘가 쯤 이젠 하도 봐서 외워버린 정자동 남자들을 보다가 질려서, 랜덤 찾기로 잠 안자고 있는 남자들을 구경했다. 얼굴사진도 없던 K에게 별 생각없이 인사를 하고는 폰을 덮고 잠을 청하려던 찰나에 답장이 왔다. 그 땐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K가 가게 마감을 하고 집에 돌아갈 시간이었던 것 같다.

“논현에서 작은 술집을 하고 있어요. 직업은 빚쟁이고요~”

K는 얼굴사진도 없으면서 되게 수다스러웠고, 카톡 아이디를 알려주고는 내일 마저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리고 그 주 주말, 그래도 나름 신년이니 나는 용하다는 관상가를 만나 나와 K의 궁합을 보았다. 관상가는 K의 사진을 보더니,

“음.. 정말 한 성깔 하시는 분인데? 만나면 피곤해”

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짐짓 심각해져서는, 그 즈음 나에게 대쉬했던 다른 남자분의 사진을 보여드렸다. 관상가는 이 분과 궁합이 좋으니 이 분을 택하라고 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나는 이미 K를 좋아하기로 마음 먹었는데.

난 결국 파도만 보고 바람은 보지 못하는 관상가의 말을 따르지 않기로 했다. 파도를 만드는 것은 결국 바람이건만.

1년쯤 만났을 때 이 이야기를 실수로 K에게 해버렸는데, K가 내 멱살을 잡더니(관상가의 말이 맞았던 것인가?) 고민했던 다른 남자가 누구였냐 추궁했다. 그리고 그 돌팔이 관상가는 어디 있냐고도.


 작년 초에는 어쩌다 신점을 또 보게 되었는데(토속신앙에 심취하는 타입은 아닙니다만..) 마케터로 일하다 얼마전에 신내림을 받은 신빨좋은 20대 매화당 애기씨에게 점을 보게 되었다. 매화당 애기씨는 내 직업을 맞추더니, 나와 K가 전생에 매우 애틋했던 부모와 자식의 인연이라며 관상가와 대치되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난 애기씨 말을 믿기로 했다. 말을 정말 잘 하셨기 때문에.. 애기씨는 내가 해외로 가면 대성할 기운이라고 했고, 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무슨 맥주이름의 역병이 창궐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


 문득 K와의 3주년을 맞아, 그리고 잭디 그림을 그리며 떠올랐던 이야기를 끄적여보았다. 오랜만에 글을 써서 그런지 이야기가 산으로 갔지만, 이 글의 주제는 관상가 말을 잘 듣자.. 가 아니라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자는 뭐 그런. 21년에는 글을 좀 써보려고 결심했지만, 역시나 진정한 새해는 구정부터! 이기 때문에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메모앱을 열었다. 2주년때 썼던 일기가 같은 페이지에 보인다. 새삼 작년엔 정말 글을 안 썼구나 싶다. 하지만 올해는 정말 간행물을 내려구요! 다들 새해엔 잭디에서 좋은 남자 만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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