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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o Hwang Jul 23. 2021

아버지의 금고

사람을 매료시키는건 언제나 황금보단 수수께끼

이제 막 봄이 됐을 무렵, 어머니가 말했다.


“하늘아 니 저 아빠 금고 비밀번호 모르제.”


어머니는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다, 아버지 방의 작은 금고를 보고 말했다.

손뼘 두 개 정도 되는 크기의 촌스러운 금고였다.


“저기 머있는데? 내가 맨날 물어도 안갈켜주더라”


“느그 아빠가 맨날 자기 죽으면 여기 금덩어리 숨겨 놨으니까 이걸로 잘 먹고 잘 살아라 캤거든”


장난기 가득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셋 모두 금덩이가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안에 뭐가 들었을까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사람을 매료시키는건 언제나 황금보단 수수께끼다.

장난기 많으면서도 속을 알 수 없는 아버지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무슨 비밀이 그리 많았던지, 가방에선 아무도 몰랐던 주식 계좌와 두 번째 핸드폰이 툭 떨어졌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바람난거 아니냐며 얼른 비밀번호를 풀어보라 했다.

차라리 바람이라도 났으면 안슬플 것 같다고.

봄 동안 우리는 아버지의 숫자들을 이리저리 짜맞췄다.


4월이 되고 부산에서 생일을 지냈다.

미친놈처럼 모든 금고의 문을 열어제끼며 서른 둘이 되었다.

금덩이를 만진 적은 없다.

어쩌면 서른이 넘으면 문을 열지 않고 그냥 두게 될거야, 라고 스물아홉 여름엔 생각했던 것 같다.

아버지 49제를 지내고, 여름이 오기 전 다시 분당으로 올라왔다.


3년 사귄 애인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더 반짝이는 황금을 얻고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서른 둘에도 난 여전히 금고 문을 열고있다.


폭염이 왔다.

기상청에선 퀴어 퍼레이드에서 책을 팔았던 2018년보다 더 뜨거운 여름이 될거라고 한다.

에어컨 없이 자려다 너무 더워 에어컨을 켰다.

자정 즈음 문득, 아버지 금고가 생각나 동생에게 물었다.

운 좋게 문을 열었다고, 비밀번호는 결국 맞추지 못했지만 

아버지 책장에서 우연히 금고 열쇠를 찾아서 열었다고 했다.

갑자기 밤중에 그건 왜 묻냐는 동생 말에 ‘그냥’ 이라고 대답했다.


“근데 안에 뭐 있던데?”


금고에 있던 물건을 듣고는 피식 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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