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비와 목련 풍선
사실 난 벚꽃보다는 목련을 더 좋아하는데, 색은 단순하지만 거대하고 화려한 형태 때문인지 괜히 마음이 간다. 꿀벌의 가장 큰 욕망 형태의 거푸집 같구나 싶었는데 사실 목련은 백악기때부터 살아남은 꽃이라 벌과 나비가 출현하기 전부터 존재했다고 한다. 꿀샘이 없는 대신 꽃가루를 먹는 딱정벌레 등을 유인한다는데, 꿀벌보다 딱정벌레의 욕망이 더 크고 화려한 걸지도.
목련이 더 좋아지게 된 계기는 영화 매그놀리아 덕분이기도 하다. 난 매그놀리아를 대학교 도서관에서 DVD로 보았다(책은 거의 읽지 않았지만 DVD는 정말 자주 봤기 때문에 이걸로 나름 등록금을 어느정도 활용하지 않았을까 싶은.. 물론 그래도 등록금은 아깝다). Aimee Mann의 One이 흐르면서 오프닝 시퀀스가 시작될 때부터 난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될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나레이터는 기가 막힌 우연이 겹친 세 가지 사건들을 들려주며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말한다. 작은 선택들이 모이면 이런 영화같은 일도 일어난다. 사실, ‘각본을 이렇게 쓰면 말도 안된다고 그럴걸!’ 하는 일도. 다만 스스로가 선택하지 않은 일들이 모여 다가온, 영화같은 재난 속에서 우린 중얼거린다. “말도 안돼.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어?”
영화의 마지막 즈음엔 갑자기 개구리 비가 내린다. 말 그대로 내 주먹만한 개구리 수백마리가 하늘에서 떨어지며 내장이 터지고 도시가 난리가 난다. 정말 뜬금없고 어이 없는 재난이지만, 사실 인생사 그랬던 것 같다. 아버지가 산재로 돌아가셨던 작년 봄, 장례식장에서 3일 밤낮 개구리 비를 맞으며 줄곧 생각했었다. 어떤 선택들이 모여 개구리가 하늘에서 떨어졌을까.
그 날 아침엔 동생이 갑자기 30만원을 달라고 했다. 이유는 묻지도 않고 돈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아버지 산재소식을 듣고 천안가는 고속버스를 탔다. 나를 시작으로 친척들이 부산에서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저녁이 다 돼서야 나와 동생은 단국대병원 근처 카페에서 잠깐 쉴 수 있었다. 문득 아침에 줬던 30만원이 생각나 동생에게 물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30만원은 왜 달라고 한거고?”
“아. 내 다이슨 에어랩 리퍼상품에 당첨됐거든. 한 명만 뽑히거든 이거. 웃기제. 무슨 운수 좋은 날도 아니고”
사는게 참 웃기다. 난 동생 손을 잡아 주었다.
영화는 개구리 비 속에서 상처입은 양녀를 끌어안는 어머니와, 망가지려 하는 청년을 도와주는 경찰을 보여준다. 아마도 내 기억에 타인이 타인을 구원하는 첫 장면이다. 역시 인생사 그랬던 것 같다. 갑자기 개구리 비가 내리는 인생이지만, 서로를 끌어안고 구원하며 다시 살아간다. 그래 옳은 일을 하며 살아야지, 내뱉으며 겨울 코트를 챙겨입고 장례식장 밖으로 잠깐 나오니 골목 길가에 목련이 피어 있었다. 부산은 3월에도 목련이 피는구나. 사흘새 봄이 왔을지도 모르겠다.
저번 주말엔 밤 늦게라도 수유로 벚꽃 구경을 하러 가고싶었지만, J의 체력이 바닥난 탓에 혜화동 한 바퀴를 돌기로 했다. 맥플러리를 하나씩 사 들고 돌아다니다 목련 나무를 보았는데, J가 목련 향을 맡아보라고 했다. 목련 향은 태어나서 처음 맡아봤는데 생각보다 향이 강해서 놀랬다.
“목련 잎으로 풍선 불 수 있는거 알아?”
J는 떨어진 목련 잎을 줍더니, 끝 부분을 살짝 뜯어 잎 사이에 열심히 바람을 불어댔다. 물론 진짜 풍선처럼 잘 부풀어 오른건 아니고 아주 찔끔찔끔 잎이 커졌는데, 거의 5분을 불어재끼니 기어이 잎이 바람으로 통통해졌다. 통통해진 잎을 자랑하며 엄청 행복하게 웃었는데 난 그게 너무 웃겨서 빵 터졌다. 이게 뭐라고 저렇게 웃지.
“형이 터뜨리게 해줄게”
고마워하라는 얼굴에 난 어이없이 웃으며 손가락으로 잎을 터뜨렸다. J는 그 후에도 내리막길에 있던 자목련 잎을 가지고 10분을 풍선을 불었다. 문득 아 인생사 이렇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찍 피는 부산의 목련과 혜화동의 목련잎 풍선이 함께 하는게 인생이구나. 아버지 기일을 보내고 처음 맞는 올 봄엔 목련 풍선을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