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멀미를 멈추려 보드게임을 더 신나게 열었다
원태가 소개팅이 미뤄지고 갑자기 부산에서 보드게임을 하러 올라오겠다고 했다. 내 책장엔 엄청나게 많은 보드게임이 그득그득 쌓여있는데, 사실 사놓고 한 번도 플레이 못한 보드게임이 많다. 아니 살때만해도 이렇게 플레이 못할줄은 몰랐지. 사는게 맘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다. 그래서 혼자 룰북을 보면서 보드게임을 상상하곤 했는데, 원태 덕분에 거의 2년만에 실제로 플레이를 해보았다.
<황하와 장강>이라는 보드게임을 했는데, 영토를 넓히고 봉기와 반란, 전쟁등을 일으키며 영향력을 키워가는 게임이었다. 게임을 하는데 원태가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아냈다고 말했다. 난 무슨 말이냐 물었다.
“공명은 초인이라 자기가 언제 죽을지 정확히 알고 있었거든. 근데 상대편 중달도 초인이라 공명이 언제 죽을지를 알고 있었어. 오장원 전투에서 공명이 중달이랑 대치하고 있었는데, 자기가 죽은게 알려지면 병사들이 다 죽을 상황이었단 말이야. 그래서 나무로 자기 모양 목상을 미리 만들어서 죽는날 수레에 실었어. 그걸 본 중달이 공명이 살아있는줄 알고 ‘아, 공명은 하늘의 뜻도 바꾸는구나!’ 싶어서 퇴각했지”
원태는 종종 삼국지 이야기를 해준다. 이번에도 재밌는 이야기였지만, 결국 황하와 장강은 내가 이겼다.
지금이야 보드게임을 취미라고 말 할수 있을만큼 많이 하긴 하지만, 사실 어릴때부터 체스는 좋아했었다. 어릴 때 아버지는 컴퓨터를 가르치셨는데 그 때 수강생 형들이랑 체스를 자주 뒀던 기억이 있다. 아직까지 그 박스 모양이 기억나는데, 보드는 대리석 문양이 인쇄된 종이였고 기물은 플라스틱으로 적당히 만들어진 싸구려 체스였다. 아마도 근처 문방구에서 산 것 같은데 대체 누가 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학원에 계속 굴러다녔던 기억. 형들은 심심했는지 어린 나한테 체스 룰을 알려주고 같이 게임을 했다. 생각보다 재밌었던 탓에 꽤 자주 체스를 뒀다.
원태는 내가 고등학생때 한겨울 송정 바닷가에서 진솔이랑 옷벗기 체스(!)를 뒀다고 했다. 두 판 연속 내가 이기고 진솔이가 목도리와 코트를 벗고는 그만뒀다고 한다. 똑똑한 진솔이를 이겼다면 대단한 일일텐데 사실 기억이 잘 나진 않는다. 왜냐하면 그 날 원태랑 고스톱 친 기억밖에 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린 그 날 고스톱을 처음 배워서 밤새도록 느릿느릿 경로당 고스톱을 쳤는데(옆에서 구경하던 재우가 잠와서 못보겠다고 자러갔다) 그 때 어마어마하게 큰 점수로 이겨서 원태의 노예계약서를 받았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원태랑 나는 그 때부터 보드게임에 미쳐 있었다. 둘 다 보드게임 덕후의 싹이 보였구나.
체스나 훌라, 고스톱이 아닌 보드게임을 본격적으로 접한건 대학교 문학동아리 소모임(?) 디오게네스클럽 친구들 덕이었다. 누가 그 게임들을 가져왔는진 모르겠지만, 너구리와 공강시간에 챠오챠오를 하거나 금요일 저녁에 다 같이 모여서 딕싯이나 아발론을 했다. 그 때 그게 왜 그렇게 재밌었을까. 언젠가 점심을 먹고 게임 인원이 모이길 기다릴 때, 클럽 후배 Y는 서른까지만 살고싶다고 말했다. 난 왜냐고 묻지 못했다. 대신에 스물 다섯까지 우리는 ‘이렇게 재밌어도 될까’ 싶게 보드게임을 하며 놀았다.
그 때 난 인생의 필승전략과 최단루트를 찾아 어지럽게 멀미를 하는 하루 끝에서 보드게임을 했다. 완벽한 규칙이 적용되는 닫힌 세계라는 것에 매료됐을지도 모르겠다. 명확한 시작과 끝이 있고, 디자이너가 설계한 균형 잡힌 규칙이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보드게임의 언어는 자연과학의 언어와 같다. F=ma라던지 E=mc2같이 모두에게 공평하고 절대적이다. 인생사도 그랬으면 좋으련만. 생이란 참 언제나 경계가 흐리다. 언제 끝나는지도 알 수 없고 계획을 짜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공명처럼 가는 때를 명확히 알았다면 더 분명하게 살았을텐데. 우린 공명처럼 무엇을 해야할지도, 갈 때를 명확히 알지도 못했다. 삼국지를 읽었어야 했나. 카뮈와 기형도와 라이트노벨을 읽던 우리는 멀미를 멈추려 보드게임을 더 신나게 열었다.
디오게네스클럽 친구들과는 내가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며 연락이 뜸해졌다. 다들 아마도 내가 먼저 졸업을 하고 몇 년은 더 모여서 게임을 했을 것이다. 친구들을 다시 만난건 너구리 덕이었다. 몇 년 전, 너구리한테 메세지가 왔다.
‘정호야 나 오늘 졸업증명서 뽑으러 학교에 갔거든. 근데 Y가 있더라구. 그래서 우리 그 때 보드게임 할 때 너무 그립다고 했더니 자기도 너무 그립대. ‘오빠 우리 그 땐 왜 그렇게 생각없이 살았을까요?’ 라더라. 우리 그 때 진짜 재밌었잖아. 또 모여서 꼭 게임하자!’
그 메세지가 왜 그리 반가웠는지. 그 즈음에 어몽어스가 엄청 유행했던지라, 너구리 주도하에 우린 간만에 모여서 같이 어몽어스를 했다. 그 후로 다시 디오게네스 톡방을 만들어 서로 안부를 묻는다. 후배 Y는 고양이 네 마리를 키우게 되었고, 혜화동 오락실에서 펌프를 하며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난 올 봄에는 혜화동 카페에 모여서 꼭 보드게임을 하자고 했다. 물론 게임은 내가 가지고 오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