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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o Hwang Jun 16. 2022

식물과 남자

Boy with plants

 틴더로 연락하던 T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데, 그냥 돌아가긴 아쉬우니 T 영화 보자고 했다.  CGV 앱으로 손석구도   용산CGV 범죄도시2 시간표를 뒤적였다. T 예매하려는  보더니 대뜸 자기 집에 가서 영화를 보자며 묘한 눈빛을 쏘았다.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좋다고 대답했다.


“아.. 너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나..?”


T는 빵 터지더니 따라오라고 했다.


 사실 틴더에 식물을 좋아한다고 적혀있었기도 했고, 집에 식물이 많다고 말을 들었던지라 어느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막상 집에 들어가니 좀 충격이었다. 온 집에 식물이 가득한 것은 물론이고 방 한 칸이 통째로 식물만 가득 차있었기 때문에.. 원룸에 사는 나는 방 한 칸의 소중함이 더 크게 다가와서인지 T가 진짜 엄청난 식물 덕후구나 싶었다.


 집을 둘러보니 엄청 널찍한 테라스가 있었는데, 그런데도 대부분의 식물을 집 안에 들여놓은게 의아해 물어보았다.


“아, 많이들 야외에서 키우는게 식물한테 좋다고 알고 있는데, 한국 날씨는 식물들한테 너무 극악이라 실내에서 키우는게 더 좋은 경우가 많아”


그러면서 근육 덩치아저씨가 자기 몸보다 큰 이파리를 들고 있는 인스타 사진들을 보여줬다(나는 헐벗은 남자들 사진만 잔뜩 저장해놨는데 이런 식물사진들을 저장하는 사람도 있다니). 플로리다같이 기온이 일정하고 습한 곳이 식물들에겐 천국이라고 했는데, 그 천국에 살면 식물이 이렇게까지 큰다고 했다(하지만 벌레도 테니스공만해지잖아..). 그러고보니 영화 어뎁테이션에서 유령난초를 찾으러 늪지대를 돌아다니던 식물 덕후들도 플로리다에 살았었지. 커다란 이파리 사진을 보며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T가 귀엽고 웃겼다.


 어뎁테이션 원작 소설을 보면 난초들을 교배해서 특수한 무늬를 만들거나 해서 비싸게 파는 내용이 나오는데, T에게 물어보니 실제로 그렇다고 한다. 또 바나나뿌리선충인가 뭔가 하는 해충처럼, 어떤 해충이나 전염병같은게 주로 생기는 식물은 국가에서 수입금지를 시키는데 그러면 또 그 식물들의 가격이 폭등을 한다고. 식물은 개체 수를 늘릴 수 있다보니 실제로 식테크를 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고 했다. 인스타 이웃분 스토리에서 본 잎 한 장에 몇백만원 하던 식물이 그런 거였구나 싶었다.


 부엌에서 얼린 블랙사파이어 포도를 안주삼아 와인을 두 병 비우고는, 원래 계획대로 영화를 보기로 했다. 부엌 TV로 넷플릭스를 뒤적이는데 T가 침대에서 프로젝터로 보면 더 편하다며 또 묘한 눈빛을 쏘았다. 그래 자세가 편해야 영화에 더 집중할 수 있으니까. 난 영화 그녀(Her)를 골라서 틀었다. 영화 초반부 테오도르 사무실이 나오는데 T가 사무실에 걸려있는 식물을 보더니 말했다.


“저거 말도 안돼. 네펜데스라는 식충식물인데 쟤는 엄청 습한곳에서 자라는 애라 저런 곳에선 못키워”


분명 자기는 ENFJ라고 했는데 F가 아니라 T 아닐까 살짝 의심이 들었다. 테오도르가 사만다를 설치할 때 쯤부터 T가 내 손을 잡기 시작했는데, 사실 그 후엔 영화 내용이 머리에 안들어와서 어디까지 봤는지 기억은 안난다. 사귀고 나서 그 때 이야기를 하니 내가 너무 수녀처럼 앉아있어서 같이 기도해주려고 잡았다고 한다.


 T때문에 나도 좀 큰 식물을 한 번 키워보고싶어졌는데, 추천을 해달라니 T가 몬스테라를 추천해줬다. 북향에 실내에서도 잘 자랄까 싶어 걱정했는데, T 말로는 식물들은 좋은 환경보다 일정한 환경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좋은 일정한 환경이면 더 좋겠지만 덜 좋은 환경에서도 적응하면 잘 지낸다고. 식물 사는 것과 사람 사는 것이 참 비슷하구나. 내 집에 있던 이케아 조명 아래에 두면 괜찮을 것 같다고 했는데 식물은 식물용 조명 아래에 둬야하는 줄 알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라고 한다. 일전에 T가 출근할때 뽀뽀를 해주고 다시 침대에서 잠들었는데 구글홈이 아침7시에 갑자기 조명으로 솔라빔을 쏴서 잠을 깬 적이 있었다. 그런 특수 조명이 필요한줄 알았지.


 만날때마다 T는 식물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데 정말 하나도 모르는 세계라 그런지 내 세계가 넓어지는 느낌이다. 그제는 두 시간을 식물 물을 주더니 아스파라거스 메이리 라는 애가 꽃이 폈다고 사진을 보여줬다. 식물에 대해 말할 때 반짝거리는 눈빛을 보는 게 좋다. 내 집엔 피어리스 화분 하나만 살아남았는데 몬스테라는 잘 키울 수 있을까. 그 피어리스마저도 지난 겨울에 잎이 후두둑 떨어져서 엄청 당황했다. 무서워서 영양제도 하나 꽂아줬는데 T 말로는 그런 영양제는 사실 큰 도움은 안된다고 한다(T 집에는 농약부터 비료까지 다 있었는데 그런 전문적인 제품을 써야하는걸까..). 그래도 정성 덕분인지 봄에 잎이 좀 나서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는 느낌.. T한테 이것저것 물어가며 다시 열심히 잘 키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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