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대표 P와 면담을 하는 중 회사에 바라는 점이 있냐 물어봐서, 새로 짓는 사옥에 헬스장좀 지어달라고 했다. P는 당황했지만 헬스장은 중간에 공사가 어렵고 근처 헬스장 제휴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난 그럼 대신 간식에 닭가슴살 소세지와 프로틴 바 같은걸 추가해달라고 했다. P는 그건 바로 가능할 것 같다고.
P는 내가 연예병을 나온게 신기한 듯 물었다. 하긴 연예계랑 연이 있을만한 외모는 아니니.. 연예병이었지만 하는 일은 해군본부에서 영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P에겐 내가 대학에서도 영상을 전공하고 군대에서도 영상병으로, 지금도 영상을 업으로 삼고있는게 신기했나보다. 원래 꿈이 영상 일을 하는 거였는지, 혹시 영화를 하고싶었는지 물었다.
영화를 하고싶었던 시절은 있었다.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영화를 줄창 빌려보다, 고등학생 땐 허접한 영화를 찍었다. 대학교 1학년땐 독립영화 현장을 나갔는데,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보더니 카메라 감독이 “야, 힘들어? 힘들면 때려쳐” 라고 했다. 그 길로 난 힘들어서 때려쳤다. 그렇게 그냥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남았다. 살면서 어떤 결정에 확신이 있었던 경우는 잘 없지만, 그래도 그 때 만큼은 확신이 있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20대 중반 즈음 묻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난 내 이야기를 남들에게 들려주는걸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친구가 나는 뱅뱅사거리에서 자기 이야기를 소리쳐야하는 부류라고(좀 끔찍한데..). 그렇게 꿈은 없어졌지만 영화 대신 글과 그림을 가끔씩 끄적이기로 했다.
“그래도 근처를 서성이면서 비슷한 일을 하고 있네요”
P는 내가 영화를 그만두고 모션그래픽으로 밥벌이를 하기로 결심한 것을 두고 말했다. 그 말이 사실 가치중립적이라고 생각은 했지만(친구 왈 "가치판단 좀 들어간 것 같은데?") 왠지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었다.
"영화를 찍는 것 만큼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의미있고 행복한 일인 것 같아요. 전 지금은 하고싶은 이야기를 영화 대신 글로 쓰면서 살고 있는데, 그것도 충분히 행복하구요. 그걸 직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근처를 서성이면서 매일매일 좋아하는 일 조금씩 하고 잠드는것도 행복한 일인 것 같아요"
말하다보니 목소리가 좀 커져서 P는 살짝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시나리오 작가를 꿈꿨던 친한 지인도 비슷하게 가끔씩 글을 쓰며 살고 있다고 P가 덧붙였다. 모르긴 몰라도 그 분 역시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가끔가다 취미생활을 하며 반짝이는 사람들을 본다.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등등. 정말 말 그대로 사람이 반짝거린다. 그걸 바라보는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생각은 이제 안 한지 오래다. 세상사 그렇게 대단한 의미가 없다고 생각도 하고, 좋아하는 일들로 하루를 채우는 건 그 자체로 반짝이는 일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