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가계도 20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일삼 Mar 24. 2024

<가계도> 3일차 - 20 

 전시관에 들어서면 왼쪽 벽면에  2012년 1월의 플래너 한쪽이 찢겨져 벽에 걸린 것이 제일 처음 보인다. 월별로 계획과 다짐을 써놓고 그 모두를 지켰는지 한달이 끝날 때마다 스스로 확인을 하던, 갓 한 살을 더 먹어 닿은 열세 살. 그 종이 위에는 확인을 위한 자필서명란도 만들어져있다. 1월의 약속은 세계사를 공부하는 것과 방학 과제를 완성하는 것. 1월 24일에, 세계사 중에서도 인더스 문명을 공부하겠다는 계획이 적혀 있고 그 위에 큼지막한 체크(✔️) 표시가 그려져 있다. 1월의 자필 서명은 완벽하다. 

 한 걸음 반 정도를 오른쪽으로 옮겨 걸으면 2012년  2월의 몫이 있다. 영어로 ‘식물과 광합성’을 배우던 학원을 다닐 때다. 당시 나는 나보다 한두 살이 많은 학생들과 같은 반이 되면서 약간 위축이 되어 있었다. 플래너는  그 증거로, 매일매일 식물과 광합성 교재를 복습하고 정리하는 목록이 만들어져있음을 제시한다. 나만 수업 내용을 완전히 알지 못하는 기분이 들어 직접 노트를 사러 문구점에 가던 길은 내 머릿속에만 들어있고, 노트는 이사하면서 버려진 게 확실하다. 

 세계사 공부도, 광합성 영어 공부도,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이라서, 스스로만이 확인하고 넘어간 일이라서, 자필 서명으로만 세상에 남겨졌다 바스러진 일이라서, 목격자가 단 하나인 일이라서, 내 빽빽한 일기장은 누군가에겐 전부 무(無)와 같다. 그 슬픔은 또 시작이냐며 질린다는 뜻의 눈동자가 내는 직선을 맞을까봐 잔뜩 움츠려 전시관 저기 저 구석에 혼자 있다. 


 한 걸음 반 정도를 오른쪽으로 한번 더 옮겨 걸으면, 거기엔 내 오른손의 물집 사진이 크게 자리하고 있어요. 누구는 거길 지나며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누구는 거길 본 체도 하지 않겠죠. 그렇지만 엄마는 거기서 멈춰 서서 잠시 미소를 짓겠죠. 집에 있는 연습장에 두꺼운 동화책을 전부 다 옮겨 쓰려는 계획을 혼자 세우고는 평소 잠드는 시간을 훌쩍 넘겨서도 끝까지 다 하고 잔 여섯 살을 그녀는 기억하니까요. 잠이 쏟아져 칭얼거리면서도 연습장의 모든 페이지를 써 가며 결국 완성한 필사본을 그녀가 기억하니까요. 연필을 쥐고 쓰느라 검지와 엄지 사이의 홈에 자리한 그 물집을 그녀가 아니까요. 그럼 나는 벌써 괜찮아요. 정말요. 벌써요. 

 나는 내가 대단한 이유나 소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해요. 그리고 쓰러지면서 만든 포물선을 그대로 되새기며 일어나야 하죠. 아무리 질 좋은 변명과 핑계라도, 그건 그냥 정면으로 부닥쳐야 하는 선을 아주 약간이라도 비껴가는 일이 될 뿐이라는 걸 기억해야 하고. 눈을 감고 바람을 느껴보고 낙엽을 바라보면서 찬찬히 삶을 돌이키고, 어떤 책을 읽고 어떤 문장에 밑줄을 긋고 있는지, 어떤 영화를 보며 울고 있는지 같은 것들을, 나 말고는 아무도 목격한 적이 없는 순간들을 아주 많이 기억해야 해요. 오늘 아침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매일 끼고 다니는 다섯 반지 중 하나를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나는 신화로라도 만들어야 해요. 오른손 중지에 엄마가 생일 기념으로 사주신 반지와 중학교 동창 친구들과의 반지, 오른손 검지에 체인 모양의 반지 하나, 왼손 검지에 두꺼운 가락지 느낌의 은반지 하나, 왼손 중지 위쪽에 작은 반지 하나. 이 중 가장 마지막 것을 박물관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리던 순간에 놓치고 말았다는 것을 노랫말로 남겨놓아야 해요. 안 그러면 나는 죽을지도 몰라요. 

 죽을지도 몰라요. 


 전시관 안쪽의 커다란 벽 뒤로 걸어가면 빛 하나 없는 깜깜한 공간이 펼쳐지고 갑자기 빔 프로젝터에서 나온 동그란 빛 하나가 시작돼요. 그럼 내가 만든 모든 영상들이 흘러나와요. 그리고 흘러나오는 영상들 중엔 어느 날 엄마에게 변명한 보라빛 편지가 끼어 있어요. 엄마는 그걸 보고도 웃어줄까요? 


 H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나의 후기 역작들을 늘 함께 만들었던 H. 내가 그 애 방을 벌컥 찾아가 이제 어떤 영상을 만들고 싶은지가 중요하지 않다고 고백했던 날이 있었어요. 어떤 사람으로 살지가 더 중요해서 이제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니는 날은 내 안에서 멸종하고 말았다고. 물고기는 전(前) 세대의 멸종 없이 진화를 한다죠. * 나는 물고기자리인데도 다음으로 넘어가는 방법에는 하나만 있는 줄 알았어요. 그리고 몇 년이 흘러서야 H가 늦은 고백을 해 왔어요. 그때 느낀 배신감에 대해 말해줬어요. 나는 나의 새 소원을 듣는 유일한 관객이 되어준 H가 그 자신이 어떤 무대의 주인공이었는지는 몰랐던 거죠. 이제는 그때 재밌었다는 추억밖에는 할 수가 없고 나는 그것마저 전시해두는 주정꾼이고요. 

 그 이후로 나는 지금까지 친구들 생일을 축하하는 영상 3개와 친구가 첫 아이패드를 개봉하던 날을 기념하는 영상 1개, 친구가 생애 처음으로 아이폰을 사서 개봉하던 날을 기념하는 영상 1개, 가족들과 여행 혹은 캠핑을 다녀온 것을 추억하는 영상 3개를 만들었어요. 어딘가에 소개되는 영상이 아니라 관중은 전혀 없고, 그냥 아는 사람끼리 보고 낄낄거리자고 만든 것들이에요. 그리고 나는 이 영상들을 지난 모든 시간 동안 만들어온 것 중 가장 아껴요.  비밀이에요. H에게는 이 사실을 털어놓지 못했어요.

 그중에서도 가족끼리 2박 3일의 캠핑을 다녀왔을 때를 기록한 43분짜리 영상을 가장 좋아해요. 영상에 우리만 아는 농담과 유행어가 섞여 있는 것, 우리만 아는 어릴 적 영상이 끼어있는 것, 우리만 아는 부은 얼굴과 맨발 따위가 아무렇지 않게 찍혀 있는 것이 좋아요. 그리고 우리 집에서 우리끼리만 그 영상으로 조촐한 영상회를 연 것까지도 나는 좋아하죠. 나는 앞으로도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할 영상들을 더 만들 거예요. 그 영상이 또다시 우리 안의 농담이 되고 유행어가 되는 과정이 나는 벌써부터 기대돼요. 그리고 그것들이 우릴 전혀 모르는 누군가에게도 사랑으로 가 닿을지 조금 떨려요. 

 나는 또 무엇을 벽에 걸어둬야 하는 걸까요? 무엇을 더 토해내야 내 빈속이 채워질까요. 좋아하는 것들을 말해볼까요. 아, 참, 좋아했다가 싫어하게 된 것들도 말해볼까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조용히 옆에서 내 말을 듣고만 있던 이사지왕이 그즈음에 갑자기 끼어든다. 그런 휘청이는 기준이 어디 있냐고 내게 묻는다. 그쯤 하라는 신호인 건지 더이상 궁금하지 않다는 의미인 건지 내 벌게진 얼굴을 달래려는 시도인 건지 하나도 계산하지 않은 채, 나는 당신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고 대충 둘러대며 입을 마저 나불댄다.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이야기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싫어요. 도대체 왜 인간은 본래 추악하고 계속 추악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하는 거죠? 그래서 어쩌자고요? 우리는 모두 더럽고 치사하고 악한 존재니까 다 어쩔 수 없는 거라고요?

 한낮에 집 주변을 산책하다가 킥보드를 타고 있는 어떤 애를 본 적이 있어요. 나는 어릴 적 그걸 씽씽카라고 불렀지만, 아무튼요. 그 애는 킥보드를 타고 나를 지나쳐 놓고는, 나보다 다섯 걸음 정도 앞에 있던 다른 애의 옆에 가 속도를 줄였어요. 그리고 그 다른 애의 보폭에 맞춰서 움직였죠. 두 사람은 뭐라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킥보드는 내가 그곳을 벗어날 때까지 빨라지지 않았어요. 내 느긋한 걸음이 옆사람 보폭에 맞춰 걷는 바퀴를 이길 정도로 두 사람의 세계는 내밀했죠. 킥보드를 타고 있던 그 애는 빠르게 달릴 수 있는데도 옆사람의 속도에 맞추어 무려 ‘바퀴’를 천천히 굴릴 줄 알아요. 아이일 땐 잘 아는데 크면 다 까먹어버리기라도 하는 걸까요? 이 마음이 문명과 진화의 동력임을 사람들은 쉽게 잊어버려요. 그리고 뒤로 걸어요. 바퀴가 있어도 우린 뒤를 향하죠. 


 이사지왕은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는 내 휘청이는 마음이 더 있는지 묻는다. 꺼내어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벽에 걸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서 슬픈 내 마음을 그렇게 가만히 만져준다.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잠시 숨을 쉬어야겠다고 자리를 뜬다. 벽 뒤로 걸어가 깜깜한 공간에 새어나오는 보라색 빛을 잠시 바라보다가 눈물이 목을 타고 넘어가는 것이 느껴진 뒤에, 다시 이사지왕의 곁에 가 앉는다. 이사지왕은 내 노트 몇 권을 훔쳐보고 있었고, 나는 지금 이러는 게 당신이 아니었다면 싫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며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사지왕은 멋쩍은 기색도 없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 계속 말해, 괜찮아, 그런 눈빛을 하며. 전부 내 착각인 걸 알고 있다. 


 나는 내가 쓴 글 중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공개하는 부끄러운 일도 해버리겠죠. 중학교 학보사 시절 썼던 특집 기사, 고등학교 때 썼던 자기소개서의 초안, 대학교 글쓰기 수업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쓴 글과 죽음에 대해 쓴 글, 환경디자인에 관해 발표했을 때 썼던 대본, 탈락한 공모전에 썼던 생명에 관한 글 등을 기어코 전시하겠죠. 어린 생명들과 그 생명들을 책임지느라 빛바래야 하는 숙명을 가진 다른 생명에 대해 쓰면서, 내가 이렇게나 많은 말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 놀랐던 날들을, 슬퍼서 행복했던 그 글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겠죠. 사람들은 무엇이 칭찬 받아 좋아한 글인지 내가 정말로 납득해서 좋아한 글인지 구분하는 선을 두고 내기를 할지도 몰라요. 

 당신이 방금 훔쳐 본 내 노트들이 길가에 떨어져 있을지도 몰라요. 시간을 들여 나를 들춰내고자 한 수만 번의 시도와 어거지로 내린 결론을 놓고, 이 마음이 또 어떻게 변주해나갈지 지금의 나는 알 길이 없다며 뒷구멍을 벌써부터 계획해놓은 내 일기를 보고 사람들이 비웃을 지도 몰라요. 2031년 9월의 내게,  ‘이번 다짐도 결국엔 부서지고 말았나요? 그렇다면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여기 나를 기억해주세요. 울다가도 또 한 번 사랑해주세요.’ 라는 편지를 보내놓은 또 다른 일기를 보고는 촌스러운 문장에 어설픈 감성이 더해진 최악의 텍스트라는 평이 붙을 지도 몰라요. 

 하지만 나는 말해야 하는 거잖아요. 내가 그 전부를 뱉어낸 적이 있다고 알려야 하는 거잖아요. 나 여기 있었다고. 내가 여기 있었다고. 고작 칼 하나를 손에 쥐고 불안한 채로 잠들었을 당신이 나는 견딜 수가 없는데. 내가 삼천 년 동안 구천을 떠돌다가 겨우 누군가의 가계도에 들어가게 되는 날이 오면 어쩌죠. 그런데 그때 내 사촌은 내가 어떤 하루들을 보냈는지 내가 어떤 것에 울었는지, 그런 것들을 하나도 알 수 없어 망연해지면 어쩌죠.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럼 나는 한번 더 죽음일 것 같아요. 어떡하죠…. 내 반지 말이에요. 내 잃어버린 반지를 삼천 년 뒤의 누군가가 찾으면 어떡하죠. 그게 내 것인 줄 아무도 모르면 어떡하죠. 


 이사지왕이 사라진다. 화가 난 것일까? 표정을 살펴보고 싶지만 눈과 코와 입도 이미 알지 못하는 얼굴이다. 나는 가지 말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오려는 것을 느끼며 원래부터 없던 이사지왕의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본다.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었던 것들이 한번 더 희미해지는 꼴이 슬프다고 느낀다. 어떤 영혼이 아주 갈 때 환한 빛이 굳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는 사실을 목격하며, 동시에 내 주먹이 곧게 펴진다. 

 … 있잖아요. 

 당신은 내 가계도에 여전해요. 


 그가 웃었을까?

이전 19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