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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가계도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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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일삼 Mar 23. 2024

<가계도> 3일차 - 19 

 오늘이 되기 전의 국립경주박물관에 대한 기억은 까마득하다. 분명 전시관 건물 사이사이를 뛰어다니는 애들을 어떻게든 잡아두려는 저 부부처럼, 엄마와 아빠도 아직은 어렸던 나와 내 동생을 데리고 와 역사 공부를 조금이라도 시켜두려 했을 것인데. 

 아마 내 동생은 신라의 왕들이 썼다던 금빛 왕관을 자기도 쓰고 싶다며 떼를 썼을 것이다. 나는 이것과 저것을 책에서 봤다며 실컷 아는 체를 하다가도 금으로 세공된 왕의 신발을 보고는 혹시 왕이 거인이었냐고 아빠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을 것이다. 엄마는 그 소곤거림을 기어코 듣고는 웃음을 터뜨렸을 것이며, 아빠는 웃음을 참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 신발은 왕이 평소에 신고 다닌 게 아니라는 대답을 했겠지. 그리고 왕이 죽어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는 길에 신으라고 왕 뒤의 사람들이 크고 화려한 마지막 신발을 준비한 것이라는 말이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는 모양을 보면서, 나는 죽은 왕이 걸어야 하는 저승길이 험난했을지 평안했을지를 상상하느라 잠시 말이 없어졌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금관총의 주인이 부디 무사히 저승길을 건너가고 있기를 바라며 슬퍼지는 마음을 달랠 뿐이다. 

 금관총은 무덤의 규모나 입지 등을 볼 때 왕릉으로 보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 출토 유물에는 무덤의 주인이 저승길을 걷기 위해 신고 갔을 크고 화려한 신발이 있다. 함께 출토된 칼에는 ‘이사지왕’이라는 이름이 적혀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무덤은 왕릉이 아니다. 신라 역대 임금 중 ‘이사지’라는 이름을 가진 자는 없다. 

 아무런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은 이름을 품고 잠든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는 자신에 대해 아무런 기록도 남지 않은 것에 슬퍼하며 잠들어있는 왕인 걸까. 아니면 권력을 탐하다 결국 맨 위에는 닿지 못한 채로 죽은 가여운 이무기인 걸까. 그도 아니면 스스로 왕호를 지어내 갖다 붙인, 돈키호테의 영혼을 돈키호테보다 먼저 갖고 태어난 누군가였을까. 이사지왕이 누구였는지, 자신만이 갖고 있던 왕국은 어땠을는지, 그런 것들을 하나도 제대로 상상하지 못한 채로 전시실을 나오고 있을 때. 

 출구 옆으로 금관을 종합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벽면이 보인다. 사람들이 다음 전시실을 향해 출구를 빠르게 통과하고 있는 장면을 홀로 제쳐두고, 나는 혼자 그 벽 앞에 한참을 우뚝 서 있었다. 

 금관총의 주인을 여자로 보는 견해가 있다는 마지막 딱 한 문장 때문에. 

 아. 아무것도 확신할 수 있는 게 없었지만 동시에 많은 것들이 퍼즐처럼 한데 맞춰지는 느낌이 든다. 천 피스짜리 퍼즐을 오랜 시간 끝에 완성한 후 맥이 탁 풀리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만약 이사지왕이 왕이 맞았다면? 왕이었지만 규모도, 입지도, 어느 것 하나도 왕릉으로 볼 수 없는 곳에 묻히게 된 거라면? 왕인데 그런 취급을 받아야 한 이유가 있는 거라면, 나는 지금 내가 쳐다보고 있는 문장을 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무려 왕좌에 앉았는데도 기록과 이름이 지워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던 왕. 정말로 왕좌에 앉은 그를 봐놓고도 후대는 그의 이름을 일시의 실수로 취급했던 역사. 미리 예감이라도 한 것처럼 자신의 이름을 다른 것도 아닌 칼에 새긴 채로 영원하고 불안한 잠에 들었을 왕의 얼굴. 그런 것들이 내 머릿속을 휘감기 시작한다. 


 그럼 아까 본 황남대총은? 황남대총도 왕이 묻힌 남분에선 금동관이 나오고 왕비가 묻힌 북분에선 금관이 나왔는데, 왜 금관을 쓴 자를 왕으로 보지 않았지? 아, 북분에서 출토된 허리띠 장식에 ‘부인대’라고 써져 있었지. 남분에는 저승에서 시중을 들라고 집어넣은 어린 여자의 치아가 나왔다 그랬지. 하지만 뭔가 이상해. “금으로 만든 관은 최고 권위를 가진 자만이 제한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그 어떤 유물보다 착용자의 신성성과 정통성을 드러내는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족보다 낮은 귀족 또는 지방의 지배자들에게는 금관이 아닌 금동관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 뭐지. 왜 왕이 금동관을, 왕비가 금관을 쓰고 있었다는 게 그냥 ‘특이한 점’으로 설명되고 거기서 끝인 거지? 그냥 검소하고 소박했던 왕이 왕비에게 금관을 양보하기라도 했다는 건가? 그렇다면 남분에 발견된 여자의 치아와 쇠, 도끼, 창 다양하게도 즐비한 무기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금관을 쓰고 죽은 여자의 저승길은 험난했을까, 평안했을까. 

 이사지왕이 여왕이 아니었더라도, 왕이 되고 싶어 몸부림치다 미쳐 죽은 여자였더라도, 나는 똑같은 무게로 슬플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르고 다른 시대가 닿아서, 나라를 빼앗긴 아이들이 그가 끝내 못 놓아 품고 죽은 것들을 가지고 놀다가 그의 무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는 결말을, 이사지왕은 알고 있었을까? 아니면 아직 이것이 결말이 아닐 거라고 눈을 부릅뜨고 있을까. 


 한참을 서 있다가, 나는 봐야 할 전시가 더 많이 남았다며 애써 상념을 갈무리한다. ‘아무것도’ 확실한 건 없다고 중얼거리는 동안, 팜플렛에 적고 있던 메모들은 빽빽해져 갔다. 

 그리고 금장신구를 구경하러 다시 출구를 거슬러 걷는다. 내 옆에서 함께 금귀걸이를 구경하던 노부부. 할아버지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귀걸이의 크기에 감탄하며, 지금 여자들은 이런 거 무거워서 어떻게 들고 다니겠어, 하는 농담을 했다. 

 아! 천년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 우리는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뒤로만 걸었던가요? 귀걸이와 꾸밈이 여자들만의 전유물이 된 세상에 화랑과 장신구의 나라였던 신라가 담겨있는 꼴이 우스웠다. 

 마음이 따끔한 채로, 나는 신라역사관을 나온다.


 그리고 이사지왕을 내 가계도에 넣을 준비를 한다. 

 우리가 직계 가족이 되기에는 내가 당신을 모르네요. 많이 모르네요. 내가 아는 건 당신이 저승길에 신고 갔을 크고 화려한 황금 신발과 당신과 함께 잠든, 어떤 이름이 적힌 칼뿐이지요. 사실 그 이름이 당신의 것이 맞는지도 나는 몰라요. 직계 가족이라고 서로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직계 가족이 아니라도 서로를 잘 알 수 있다고, 당신은 그렇게 말할지도 모르죠. 어차피 끝의 끝까지는 서로를 모르게 설계되어 있는 이 세계의 청사진을 아직도 손에 넣지 못한 거냐고 나를 타박할지도 모르죠. 고민은 짧게 하고 이만 가계도에 당신의 이름을 써넣으라고 나를 다그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어느 기록에도 남지 못했으니까요. 당신과 함께 잠든 그 칼 말고는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 수 있는 단서가 남아있지 않아요. 그것마저 그 어떤 기록에도 일치하는 이름을 찾을 수 없어 희미하게 흐려지죠. 내가 잔뜩 눈치를 보며 내 새 가계도에 적어 넣을 이름이, 만약 당신의 것이 맞다면, 그것이 당신에 관해 남는 유일한 기록이 되는 걸까요. 그건 너무 슬퍼요. 

 상관없으니 빨리 나를 네 사촌으로 만들라고 당신은 말하죠. 나는 적어요. 사실은 이 모두가 전부 내 부탁이라는 사실까지도 함께 적어요. 



 월지관에서 들었던 생각은 딱 하나다. 뭔 놈의 식기 출토품이 이렇게 많냐. 

 술을 얼마나 드셨길래 이걸 여기 다 떨어뜨려놓고 가신 건가요. 그런 불경한 생각. 월지에서 출토된 유물에는 금불과 금동불도 많았다. 복도 끝 쪽에 있던 금동불 하나가 귀랑 손 부분만 남겨진 채로 전시되고 있었다. 나는, 나머지 부분은 이 땅에 조각조각 흩어져있을지 아니면 차마 완성하지 못하고 죽은 장인의 아쉬움이 지금 여기를 떠돌고 있을지를 고민해 보았다. 그리고 어제 국화무늬 잔과 잔받침 옆을 살핀 것처럼 가만히 고개를 숙여보았다. 

 월지관을 나왔을 때, 비가 온다던 일기 예보가 그제야 조금씩 들어맞고 있었다. 나는 월지관에서 신라미술관으로 향하던 길이었고 그 사이에는 어제 본 석가탑과 다보탑의 모형을 그대로 본뜬 것이 서 있었다. 그리고 내가 거길 통과하고 있을 때, 흰나비가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나의 무의식은 죽은 사람의 영혼은 나비의 몸을 빌려 온다는 오래된 소문을 곧장 불러냈고, 만약 그것이 아사녀가 맞다면, 여기 석가탑은 진짜가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어 애가 탔다. 그러는 사이 나비는 저 멀리 날아갔고 나는 떨어지는 빗방울을 손으로 막는 것도 잊은 채 신라미술관으로 달렸다. 



 신라미술관에는 ‘통일신라시대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유구(遺構)가 보존되어 있었다. 그 유구는 1998년 신라미술관을 지을 때 발견된 길을 보호해 놓은 것으로, 그 위를 유리 바닥으로 처리해 두었기 때문에 전시실을 걷는 사람 모두가 그 길을 걷지는 못해도 볼 수는 있었다. 그 길에는 수레바퀴 자국이 길고 선명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주령구의 원품은 발굴 직후 보존처리 과정에서 실수로 태워버려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의 수레바퀴 자국은 흙바닥에도 여전히 선연히 살아있다. 한 손에도 잡히는 크기였던 높으신 분들의 놀이 도구는 사라졌고, 일생을 부지하기 위해 삶을 지고 날랐을 수레꾼의 흔적만이 거대하게 남은 셈이다. 아이들은 유리 바닥이 신기하다고 그 위를 콩콩 뛰기만 했다. 그래, 그 수레도 그냥 일상처럼 여상하게 흘러갔겠지. 호기심이 동하는 건 무조건 건드려봐야 하는 아이들의 저 일상적이고 무해한 천진난만한 얼굴처럼, 수레꾼 역시 그 길 양옆의 가게 주인들에게 인사를 해 가며 영차영차 살았겠지. 

 마음이 아려오는 걸 보니, 내가 유난이긴 한가보다. 


 나는 황급히 사촌을 불러낸다. 오래전 죽은 나의 사촌, 이름마저 그때 함께 묻혀 영영 죽어버린 나의 사촌에게 내가 왜 누군가 지나다닌 길의 흔적이 남아있는 걸 보고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되는지 말해야 한다. 나에게는 수레가 없다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야 한다. 나에게는 이름을 새긴 칼도 없다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야 한다. 아무런 관심을 받지 않는 수레를 끌고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이름이라도 남겨야 할 것 같은데, 나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야 한다. 나는 이사지왕이 할 대답까지도 상상해야 해서 머리가 터져나갈 지경이다. 

 삼십 분 뒤, 아주 긴 침묵 끝에 이사지왕은 내게 전시회를 열라는 말을 한다. 약 오십 오분 가량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대답한다. 응, 알겠어요. 그래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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