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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가계도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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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일삼 Mar 26. 2024

영화

<가계도> 3일차 - 22

 저녁을 먹으려 이리저리 식당을 둘러보는 길에, 유리창 너머로 혼자 중얼대며 연습을 하고 있는 타로 점술가를 봤다. 

 지금은 그 장면을 밥과 나물이 씹히는 감각과 함께 목 뒤로 삼키며, 영화를 만들고 말겠다는 결심을 식탁에 올려둔 노트에 적는 중이다. 중얼거리며 연습을 하던 타로 점술가의 모습이 빛의 형태로 창문을 통과하여 길을 걷던 내 눈에까지 닿은 그 장면을 반드시 영화에 넣겠다고. 


 그 영화는 그해 겨울 동생이 서울에 올라가고 주인공과 엄마와 아빠, 셋이 함께 지내던 곳, 방이 하나 비는 아파트에 해가 들어오는 아침으로 시작된다. 그들의 아파트는 줄곧 전세 아파트를 전전한 끝에 마련한 마침내의 보금자리다. 주인이 따로 있는 집을 깨끗이 쓰기 위해 벽에 못을 박지 않아야 하고 책상을 무리하게 옮기는 등으로 바닥에 흠집이 생기면 혼이 나는 규칙이 모두의 어린 시절은 아니라는 것을 체화한 지난한 세월 끝에 얻은 아침. 사실은 아침이 아니고, 주인공이 눈을 뜬 순간부터 하루가 시작되던 많은 날들 중에 하나가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므로, 한낮이다. 

 그 영화의 주인공은 눈을 뜨자마자 손을 더듬어 휴대폰을 확인한 뒤, 모두 출근해 집에는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는 거실로부터의 고요로 알아채고는, 휴대폰으로 음악을 하나 골라 튼다. 사실은 고른 게 아니고 임의재생 버튼을 눌러 툭 튀어나온 하나를 그대로 귀에 박아넣는다. 

 패티 스미스의 Redondo beach. 

 그 노래에 엉덩이를 욱여넣는 것을 춤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춤을 추며 화장실로 간다. 양치를 하고 거울에 얼굴을 비추다가 are you gone gone? 하는 가사를 조금 따라해보다가 찡그린 표정을 만들어 보였다가. 칫솔을 컵에 꽂아둘 때는 물기를 세번 정도 털고 난 다음 꽂아야 한다는 정언명령에 따라 휙 꽂은 칫솔을 다시 빼 물기를 세번 털고 다시 휙 꽂아둔다. 

 그러다가 세 개의 칫솔이 부딪힐랑말랑 하는 장면이 스크린에 비치고, 나는 한번 더 are you gone gone? 부분을 따라하며 칫솔 세 개의 대가리 부분이 각각 꼭짓점이 되어 완벽한 삼각형을 이루는 모양을 만들어낸다. 강박인 건지 대가리가 닿지 않게 두려는 의식인 건지 알 수 없는 그 손짓은 재빠르다. 영화는 그 이상한 삼파전을 시작으로 주인공을 포함한 세 명의 여자애들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

 다시 여기. 

 연주야. 우리가 친했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우리 셋은 자매와 자매 아닌 자매들이었을텐데. 그러면 우리는 같이 어렸다가 같이 늙고 같이 외로울 수 있었을 텐데. 우리는 따로 외로워서 곱절은 더 슬퍼야 하는구나. 

 우리가 친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그 상상으로 이 영화를 만들려고 해. 

 주인공은 저녁 시간에 밥을 대충 시켜놓고 유리창 너머로 혼자 중얼대며 연습을 하고 있는 타로 점술가가 돼. 너희 두 자매의 미래를 미리 보고 행복으로만 가 닿을 수 있게 만들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런 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물에 발을 밀어넣는 그 순간에야 깨닫게 돼. 그래서 점술가가 된 그 주인공은 너희 두 자매가 고를 카드 곳곳에 행운으로 자랄 수 있는 초록빛 씨앗들을 미리 확인하는 저녁을 보내곤 해. 너희 자매들이 매번 그 타로집에 들르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러면 주인공은 카드를 정리하고 밥을 기다리며 이젠 다른 말을 중얼거리지. 

 are you gone gone? 

 내가 목격한 것과 내가 겪지 않은 것과 내가 통과한 것들이 뿌리가 엉켜 있는 나무처럼 곧게 서 있는 날이 오면, 그러니까 정말 그 영화가 세상에 나오게 되면, 연주야, 그때 너는 내게 무슨 말을 할까? 나는 왠지 이 말을 하는 네가 상상이 된다.  

 언니, 이사지왕 얘기, 진짜야?



 그럼 연주야, 나는 너에게만은 내 자켓 안주머니에서 가계도를 꺼내 그 사람을 소개할게. 그 사람이 해 준 모든 말을 네게 할게. 그렇게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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