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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가계도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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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일삼 Mar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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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도> 4일차 - 23

4일차 

 11시에 이른 점심을 먹었다. 혼자 씩씩하게 돌아다니는 데에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는 걸 몸이 본능적으로 알아서인지, 야채와 채소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여행 첫날부터 마지막 날인 오늘까지, 평생 싫어하던 건강한 맛의 참맛을 느끼는 중이다. 

 어제 자기 전, 내일이 될 마지막 날의 성대한 장식을 위해 몇 가지 계획을 세워 두었다. 첨성대가 있는 동부사적지를 따라 걸은 뒤, 동궁과 월지에 자연스레 닿은 다음, 그 일대를 산책하고 다시 대릉원 쪽으로 돌아와 카페에 앉아 글쓰기. 경주를 걷는 사람이 자아인 양 걷겠다는 첫날의 다짐을 굳이 꺼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다듬어 보는 것이다. 걸으면 내가 정리가 되고, 걸으면 쓸 것이 보이기도 하니까. 


 나는 우선 계획대로 밥을 먹은 뒤 곧장 동부사적지로 갔다. 하늘은 맑다 못해 투명한 수준이었고 구름은 하늘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마치 계란국에 퍼져있는 계란 같은 모양새. 그리고 그 아래로 넓은 평야가 보였고 대릉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점처럼 작게 늘어져있었다. 일반 도로에서 평야 바로 옆의 길로 들어가는 발을 딛는 순간. 그 순간에 내 이어폰에서는 ‘Stranger Way’라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나는 가사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그 노래의 도입부가 이 일대와 이렇게나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리고 힘센 가성으로 시작하는 그 노래와, 몇몇이 천년 넘게 함께 잠들어있는 땅과, 그들이 매일을 관람하는 하늘을 배경음 삼아 첨성대 앞까지 걷는다. 



  첨성대 앞에 다다르니, 자기 종아리만 한 아이를 안고 있는 아빠와 그 둘을 찍고 있는 엄마가 보인다. 젊은 부부들이 누군가가 잠들어있는 이 땅으로 갓 태어난 생명을 품에 안고 오는 장면을, 나는 여행 내내 자주 보았다. 아이는 멋진 사진을 남겨주려는 엄마 아빠의 마음은 하나도 모르기에, 품이 답답하다며 어느새 뛰쳐나와 앞으로 걸어 나온다. 그리고 그렇게 뒤뚱뒤뚱 걸어 나오는 모습 그 자체로 하나의 사진이 될 거라는 걸 나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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