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도> 4일차 - 24
나에게도 그런 사진들이 있다. 유적지 앞에 잠시 어리고 작은 나를 세워두고 일곱 걸음 정도를 옮겨 뒤를 돈 다음 카메라 렌즈에 나를 담으려 했지만 나는 다섯 걸음 정도를 따라 걸은 뒤라서 나와 출력된 사진의 시야 사이에는 두 걸음만 남은 사진. 어떻게든 뒤의 배경에 나 하나만을 끼워주고자 나를 계단 위에 앉혀놓았지만 그 밑에 내가 떨어질까 혹시 몰라 받치고 있던 손이 함께 찍혀 처음 의도가 망가진 사진. 타이밍이 맞지 않아 저길 보라는 손가락이 미처 다 접히기 전에 찍힌 사진과 손가락은 다 접혔지만 내가 칭얼대기 시작하려는 듯 미간을 찌푸려 모든 것이 우스워진 사진.
그 옆으로는 어리고 작은 나를 품에 품은 채 저기를 보라는 손짓을 해 보이는 손가락들과 손가락이 가리키는 끝을 얌전히 보고 있는 내가 담긴 사진. 세 번의 암 중 하나를 통과 중인 시절에 갇힌 이의 양반다리 옆에서 주황색 바지를 입은 내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진. 흘러내릴 것 같은 볼을 양쪽에 두고 새끼손가락을 펼치고 있는 내 반대쪽 손을 꼭 쥐고 있는, 젊고 아름다워 슬픈 얼굴이 내 볼을 응시하고 있는 사진. 보일러가 가장 뜨끈하게 돌아가고 다락방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그 방에서 나를 ‘아가’라고 부르는 편지들이 풍선 위에 쓰인 채 벽을 장식해 놓은 사진. 동생이 태어나기 전 할머니집 마당에서, 공사를 하기 전 벽돌 색이 그대로 남아 있는 집 앞에서, 내가 반쯤은 엄마 품에, 반쯤은 아빠 품에 걸쳐진 탓에 적갈색 모자를 쓴 작은 얼굴이 보일 듯 말 듯 하게 찍힌 사진…
그 마당. 마지막 사진이 찍힌 그 마당은 할머니집 내부가 대대적인 공사를 거치는 와중에도 오랜 세월 변함이 없는 곳이었다. 나는 3살이 되던 해에 그 마당을, 아직도 할머니집 대문에 걸려있는 황토색 빗자루로 쓸며 놀기를 시작했다. 그 뒤로 세 생명이 탄생한 그 마당은 나의 지도 아래, 빗자루를 든 네 어린 숨의 손길로 깔끔히 치워지곤 했다. 지금의 새로 태어난 작은 두 생명들은 마당이 토해낸 낙엽을 치우는 일을 하진 않지만, 여전히 그 마당에서 공을 차고 뛰어다니며 마당의 비호를 누리고 있다. 나는 그 마당이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것을 최근에야 실감하는 중이지만.
하지만 그 마당은 식구들 모두가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식사를 해도 괜찮을 정도의 크기는 되는 것이다. 태어나는 아이들이 불쑥불쑥 생기며 챙길 숟가락이 많아지기만 하던 오랜 세월 속에서, 그 마당은 초여름의 선선한 바람과 밥을 같이 먹고 싶다고 누군가 말을 꺼낼 때나 늦가을의 시원한 햇살을 국에 말아먹고 싶다고 누군가 중얼거리듯 말을 뱉을 때에, 그저 인자하게 자리를 내어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마당에서 하는 식사는 바람과 햇살을 느끼고 싶어서-라는 처음의 명목이 민망해질 정도로 늘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었다. 바람과 햇살은 낄 틈이 없는 것이었다. 아무도 그들에게 의자 하나씩 내어줄 생각을 못하고 우리끼리 너무 좋아서 키득거리는 시간들이었다. 대문은 막혀있어도 낮은 담장 너머와 위로 하늘은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었는데도, 그걸 모르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서로의 눈에 닿은 햇살에만 잠시, 서로의 코를 뎁히는 바람에만 잠시 관심을 기울였을 뿐, 서로의 입에 밥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런 세월이었고, 그런 사랑이었다.
나의 유년기.
사랑이었다. 그런 사랑.
그런 사랑.
그런
사랑.
그런
사랑?
…
사랑?
우리의 밥과 국을, 햇살과 바람에게는 한 톨도 나눠주지 않은 밥과 국을, 그 모두를,
누가 나르고 있었게?
그냥 내리쬐는 햇살과 그냥 불어오는 바람과는 다르게 저절로 생기지 않는 그 밥과 국을,
누가 나르고 있었게?
마당과 가장 먼 대척점에 서 있는 저기 저 부엌에서 밥과 국을 만든 건 누구이며, 거기서 여기까지 그 모두를,
누가 나르고 있었게?
딸부잣집에는 백 년 동안이나 귀한 손님 신분으로 살 수 있다는 사위들밖에 있을 수 없어서, 그 모두를, 누가 나르고 있었게?
나는 여자와 여자애 중, 그래도 ‘애’라는 글자를 아직 가진 사람이라서 마당이 허락되었지만, 내가 곧 부엌에 가게 될 거라는 생각을, 아니 그전에, 내 엄마와 내 할머니와 내 이모와 이모를 부엌에 홀로 보낼 수 없어서, 그 모두를,
누가 나르고 있었게?
딸들이 오지 않아 명절 연휴의 끝무렵만이 자신의 몫으로 주어지는 여자가 지키고 가꾸는 그 집, 그 마당에서, 셋째마저 아들이 아님을 확인하고 펑펑 울었던 날을 당신 혼자의 서러움으로 묻은 기억을 안고 사는 여자가 사는 그 집, 그 마당에서, ‘외’ 할머니밖에는 될 수 없는 그 여자가 사는 그 집, 그 마당에서.
나는 그 여자가 사는 그 집, 그 마당에서 소리를 지르는 상상을 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 좀 마아아아아아악.
나는 이번에도
‘세상을 잘 모를 때는 모든 것이 질서가 잡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아하게 말할 줄 모른다.
밥과 국을 만들고 나르는 사람들과 그걸 그저 맛있게 먹으면 되는 사람들. 마당의 사람들과 부엌의 사람들. 두 개의 부류. 세상은 이렇게나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지만, 사실 그 선은 연약하고 엉망입니다. 그 선은 연약하고 엉망이며, 사실은 연약하고 엉망인 그 선을 지키기 위해 어떤 더러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못 봅니다. 보고도 모른 척을 합니다. 선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고, 그 선은 흐려져서도 뒤틀려서도 안 되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것은 문명이랍시고 무언가가 시작되는 날부터 강물에 쓰인 선이라서, 물에 쓰인 선이라서, 매일을 흐려지고 매초를 뒤틀리고 일렁이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그 선이 심장에 박힌 척을 합니다. 그건 질서가 아니라 그냥 억지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도 모른 척을 합니다. 모든 것은 강에서 시작되었지만, 우리가 밟고 사는 것은 땅이라는 것을 제대로 마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없습니다.
강이 일으킨 문명만큼은 아니지만
이 마당에도
수십 년의 오랜 세월이 쌓였고
딱 그만큼
이 마당은
썩어 있습니다.
마당에서 돌로 만들어진 세 개의 단이 놓인 계단을 올라 현관문을 연 다음 거실이 펼쳐지면, 거기에는 탁자에 일렬로 세워진 나와 내 동생을 포함한 손주 여섯의 백일 사진들이 보입니다. 이 집에 백 년의 손님들이 차례로 오던 날을 담은 흰색 사진들 아래로, 손주 여섯의 백일 사진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거기서 제일 큰 액자에 담긴 사진이 뭔 줄 알아? 당신들의 첫 ‘아가’였다는 나, 언제나 자랑이었다는 나, ‘날개’였다는 나, 내가 아니야. 그 안에 들어있는 건 나 다음으로 태어난 남자야. 그다음으로 큰 액자들은 그다음 남자, 그다음 남자가 차지하고 있고. 나, 당신들의 첫 ‘아가’였다는 나, 언제나 자랑이었다는 나, ‘날개’였다는 나, 나는 나머지 여자 동생들과 함께 작은 액자에 담겨있어. 책을 읽을 때도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세상에 나가 가게 간판들을 더듬더듬 읽을 때, 그러니까 세상을 읽을 때도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읽어야 한단다- 배울 때부터 당연했던 규칙대로 그 탁자를 읽어보면, 큰 액자의 남자들은 왼쪽에 작은 액자의 우리들은 오른쪽에. 절을 할 때도 남자는 왼손을 위로, 여자는 오른쪽을 위로 올려 보이게 하라는 규칙도, 그것도, 그것마저도. 한패인가? 나는 피해와 피해 의식은 다르다는 규칙도 들으며 살아남아서, 모든 게 어렵기만 해.
당신들의 ‘첫 아가’였다는 나, 언제나 ‘자랑’이었다는 나, ‘날개’였다는 나. 나는 이 마당의 주인에게 공주고, 나 다음으로 태어난 남자는 그녀에게 대장이지.
그게 얼마나 X같은 줄 알아?
그게
얼마나
X같은 줄
알아?
그래.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저기 저 하늘에서 올 때, 부엌도 없고 화장대도 없고 아빠의 서재 방도 없는 그곳에서 올 때. 깜빡하고 X을 두고 왔지 뭐야! 깜빡한 내 잘못이야. 내 잘못이야. 내가 그것만 들고 왔어도 세상과 나는 잘 지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그 마당에서 제일 먼저 태어난 아이인 나는 장손이 아니야. 그렇지만 이것도 다 내 잘못이야! 내가 X만 가져왔어도 장손일 수 있었을 텐데. 참 아쉬워, 그치.
분이 안 풀려. 내가 ‘X’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란 것도 몰랐죠? 나는 그냥 자랑이고 날개인 착하고 예쁜 아가, 공주, 그게 다라고 생각했죠? 내가 당신들이 만든 마당에서 태어나고 당신들이 만든 세월로 빚어졌다고 생각했죠? 나는 그걸 먹고 자랐다고 생각했죠?
아니요.
사실 나는 한번 죽었어요. 열여덟 어느 날에. 죽었다가 다시 태어났어요. 그때 나는 다른 걸 먹고 자랐고 다른 걸로 피와 살을 빚어가며 하루들을 보냈어요. 그래서 새로 태어난 내 가계도에는 당신들의 이름과 같은 발음이 단 하나도 없어요. 나는 이제 그 마당 출신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이제 날 그만 괴롭히라고.
알아요.
당신들이 내게 주고자 한 안온한 세계, 그 평안을 나도 알아요.
무엇보다,
당신들을 탓하기엔,
딸부잣집에는 이미 족보가 죽어있다는 걸 알아요.
내가 이것이 내 진짜 가계도라며 새것을 손에 든 채 대문을 박차고 들어와 마당에서 소리를 질러도, 소리를 내며 찢어질 종이가 이 마당엔 이미 없다는 걸 알아요.
당신들과 당신들의 마당이 키워낸 우리들, 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낙엽을 치우는 엉덩이와 손톱을 반질하게 닦아놓았을 당신들.
세씨 족보를 가진 그 놈들이 시켜서 한 짓인 걸 알아요. (세상과 세월.) 나를 장손이 아닌 공주라고 부르며 내 날개를 기어코 부러뜨려 놓고, 어디 날아가지 못하게 날 마당이 아니라 부엌에 가두려고 슬금슬금 준비를 하고 있던 그 모든 것들이, 곧 평안이라고 믿어서 그랬다는 걸 나도 다 알아요. 세상과 세월, 그 놈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나도 알아요.
근데요.
있잖아요.
다시 날개 돌려주세요.
제 것 있잖아요.
엄청 크고 희고 초록빛이 살짝 도는 그거.
날개.
돌려주세요.
여기서
나갈래요.
나 갈래요.
내 유년기는 두 쪽으로 갈라진다.
마당에서.
두 쪽으로.
쩌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