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만화방과 당구장을 운영하셨다. 지금으로부터 30년도 전이었다. 철들기 전부터 만화방에서 숙식을 해결했고, 그곳에서 24시간을 보냈다. 만화방은 나에게 학교를 제외한 세상의 전부였고, 만화방을 오는 손님은 내 이웃이자 내가 세상을 보는 창이었다.
그 당시는 PC와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학교에서 선생님이 금지하는 것은 만화방과 당구장뿐이었다. 공교롭게 나는 만화방 아들이자 당구장 아들이었다. 매일 밤 가게에 딸린 좁은 쪽방에서 4 식구가 잠을 잤다.
만화방은 지하에 있고 쪽방은 지하로 내려오는 계단에 있었다. 한 번은 새벽에 지나가던 사람이 지하실 계단에 소변을 봤는데 계단 틈 구멍으로 흘러 떨어져 잠자다가 얼굴에 맞은 적도 있었다.
행색이 워낙 초라하여 국민학생(현재 초등학생) 때는 장학금을 받았다. 성적 때문이 아니라 환경이 좋지 않으니 힘내라고 장학금을 수여한 것이다.
지금과 달리 만화방을 보는 사회의 눈이 냉랭했다. 그러다 보니 만화방을 찾는 손님들은 착실한 사람들보다는 공부하기 싫은 학생들과 놀고 싶은 어른들이었다. 만화방 밖에서 그들이 어떤 생각으로 사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만화방 안에서의 그들은 미래에 대한 고민과 노력 없이 담배를 피우고, 컵라면을 먹으며 오랜 시간 만화에 빠져들고 자신의 인생을 불만과 투정으로 일관했다.
부모님은 내가 8살 때부터 10년 이상 만화방과 당구장을 운영하셨고, 나는 그곳에서 컸다. 내가 바라보는 어른들의 모습들은 뭔가를 얻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자신의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는 사람들이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계획을 세워서 꾸준히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하루하루를 대충 사는 것이 세상 사는 법이라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자랐다.
삶에 대한 마음가짐을 바로 세우고 인생을 사는 자세를 배우고, 자신을 가꿔야 하는 어린 시절에 내 주변은 황폐했다. 내 삶을 가로지르는 가치는 대충대충과 임기응변이었다. '이 순간만 보내면 된다.' '세상을 진지하고 치열하게 사는 것은 머리 아프다.' 이런 생각들이 내 삶의 디폴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