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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Apr 03. 2024

그림책 : 동백꽃이 툭,

2024. 4. 3.

1.

오늘은 4월 3일.  오전 10시 제주 4.3 평화공원 위령제단·추념광장에서 제76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거행된다. 나는 오전 9시 40분에 가파도 매표소에서 이 글을 쓴다. 풍랑주의보로 배는 뜨는 않고, 내 몸은 가파도에 있지만 마음은 추념광장으로 달려간다. 10시 정각에는 1분간 제주도 전역에 묵념 사이렌이 울린다. 제주도민이 되었으므로 당연히 희생자를 위한 묵념을 드릴 것이다.


2.

잊어야 할 것도 많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들도 많다. 75년 전 제주도 전역에서 벌어진 학살은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적 비극이다. 그래서 화가는 그림으로, 작가는 글로 이 기억들을 남겨 우리에게 전한다. 4.3과 동백꽃을 최초로 연결한 강요배 화가는 2008년도에 <동백꽃 지다>(보리)라는 작품을 책으로 발간했다. 지금은 절판이 되어 안타깝지만, 중고가격이 원래 가격보다 높게 책정된 드문 책이다. 도서관에 가면 대출할 수 있으니 오늘을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한 번 보시기 바란다.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동백꽃 지다〉는 아름다운 평화의 섬을 피로 물들인 제주 4ㆍ3 항쟁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화집이다. 화가 강요배가 힘차고 간결한 필치로 제주 민중들의 투쟁과 처참했던 민간인 학살의 현장을 되살려내고, 여기에 4ㆍ3을 겪은 제주 사람들의 사실적인 증언을 덧붙였다. 4ㆍ3의 전 과정을 보여주는 강요배의 그림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그린 것이다.

'제주 4ㆍ3 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 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제주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제주도를 방문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러한 4ㆍ3의 비극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서귀포 정방폭포에서 많은 사람들이 집단으로 희생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더욱 적을 것이다. 하지만 제주도를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빼어난 풍광과 함께 4ㆍ3의 역사도 알아야 한다.

이 책은 크게 강요배의 그림 59점과 4ㆍ3 관련 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제주의 치열했던 삶을 묘사한 강요배의 그림은 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다큐멘터리처럼 펼쳐 놓는다. 그리고 개인사나 사회사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은 자연에 있음을 보여준다. 각 그림에 덧붙여진 증언은 '제주 4ㆍ3 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위원회'의 김종민이 방대한 자료를 검토하여 선별한 것이다.


3.


이 책보다 훨씬 구하기 쉽고 얇은 책으로는 김미희가 쓰고 정인성, 천복주 부부가 그린 <동백꽃이 툭,>이다. 이 책은 2022년 아르코 문학나눔책으로도 선정된 그림책으로 내가 꼽은 몇 안 되는 그림책 중 하나이다. 제주도와 4.3을 상징하는 동백꽃의 이미지를 이처럼 아름답게 그린 작품을 본 적이 없다. 오늘을 어린이에게 소개하고픈 사람은 이 책을 선택하면 된다.

첫장을 넘기면 양면 가득 담겨있는 동백꽃과 동네 전경이 너무도 정겹다. 한 장을 더 넘기면 이야기가 시작된다. 동백꽃을 좋아하는 주인공 섭이는 어미의 만류에도 떨어진 동백꽃을 주으러 밖으로 나선다. 그 꽃들을 모아 오래도록 보지 못한 누나에게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길을 걸으며 동백꽃을 줍는데 사라져 버린 사람들을 떠오른다. 섭이는 사람들이 누웠던 곳에 동백꽃을 툭, 내려놓는다. (다음 이야기는 생략해야겠다, 대신 출판사에서 공개한 그림 몇 컷을 옮겨놓는다.)


3.

최근에 '다크투어'라는 말을 배웠다. 어둡고 아픈 기억의 장소를 외면하지 않고 찾아가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잊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에 현재도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이고, 그들과 함께 이 아픈 역사를 넘어가고자 하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가파도도 4.3에서 비켜나 있지 않다. 이곳에 유일한 학교인 가파초등학교에서 학살이 있었고, 그 학살을 피해 도망다녔던 동굴이 있다. 지금은 풀 숲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동굴이 있다고 지역주민이 조심스럽게 증언해 주었다.

가파도는 청보리로도 유명한 곳이지만, 가파도로 오시는 분이라면 제주도민의 가슴 아픈 역사도 함께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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