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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y 09. 2024

오늘 : 축사

2024. 5. 8.

1.

5월 8일 12시 50분발 아시아나 항공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공항에서 지하철 타고 백마역으로, 백마역에서 버스 타고 동국대학 병원으로, 병원에서 피 뽑고 심전도 검사하고, 혈압 재고 진료실로, 진료실에서 상담하고 처방전 받고 택시 타고 집으로, 집에서 샤워하고  사과 한 알 계란 프라이 한 개 먹고 주엽동  한양문고로, 한양문고에서 1시간 반 가량 환갑모임 갖고  연우네 맥주집으로, 맥주집에서 12시 가까이까지 술 먹고  나는 택시 타고 집으로, 후배들은 라페스타 근처에서 새벽까지 술 먹고 아침에 각자 가야 할 곳으로.

여기까지가 공식 일정
지금부터는 술자리와 비공식 일정.

2.

환갑 잔치에서 후배 작가의  축사문을 입수하여 기록 삼아 여기에 옮겨놓는다.


경윤쌤 환갑 축사_이수연


김경윤 선생님의 환갑에 홀라당 중국으로 출장을 가버린 못된 제자 이수연이 경윤쌤의 환갑 축사 글을 맡게 되었습니다. 제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많은 분들의 축하를 받으시겠지만 떠난 제 마음에는 선생님의 빈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에 함께 해야 하는데. 아쉬운 마음과 정성을 담아 축사를, 편지를 이렇게 써 봅니다.


저는 만으로 서른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만으로 예순이 되셨지요. 저와 딱 서른 살 차이. 그래서인지 부모님 연세는 기억하지 못해도 경윤쌤의 나이만큼은 언제 물어도 바로 대답할 수 있습니다.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실제로 선생님을 처음 뵀던 5년 전부터 부모님보다 경윤쌤을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이 얘기했습니다. 부모님이 어떻게 사는지는 몰라도 경윤쌤이 어떤 일을 하시려는지는 기가 막히게 들을 수 있었죠. 부모님 같은 선생님이라는 식상한 표현보다 믿을 수 있는 어른이라 하고 싶습니다. 믿을 수 있는 어른은 생각보다 제 삶에 많지 않았는데, 경윤쌤의 존재만으로 모두 보상받은 기분입니다. 이제는 저도 어엿한 서른인지라 선생님을 본받아 믿을 수 있는 어른이 되려고 조금씩 노력합니다. 마냥 막내 같던 제 밑으로 슬슬 더 어린 친구들이 치고 들어오거든요. 이제 막내의 타이틀을 내어 줄 때가 왔나 봅니다.


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강연이었지만,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첫 만남은 홍진참치에서였습니다. 태국 담배를 전해주기 위해 만났었죠. 생각해 보면 담배가 이어 준 기분입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선생님과 함께 할 때 마음이 늘 편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담배를 피는 시간만큼은 지켜주시거든요. 저는 선생님의 든든함에 힘입어 어디서든 담배를 폈습니다. 물론 건강을 생각해 줄였으면, 하고 모두가 바라겠지만 저는 선생님이 가진 소소한 행복을 지키며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이제 환갑이니 담배는 조금 줄여주시죠.


어디서 굴러먹다 온지도 모르는 저를 거둬주시고 많은 분들에게 저를 소개해주었던 경윤쌤이 생각납니다. 처음 선생님이 지적프로젝트 분들과 제주도 행을 같이 가자 했을 때 저는 거절했습니다. 한 번도 다른 사람들과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거든요. 선생님은 알겠다고 하셨고 또 한 번 더 물으셨습니다. 마음이 흔들리더군요. 그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만 믿고 가겠습니다.”


아는 사람은 선생님밖에 없으니 믿고 함께 했는데 웬걸. 모두가 너무 자연스럽게 어울렸습니다. 제게는 충격적이기도 하고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이제는 그때 함께 한 모두가 어느 정도 제 삶에 들어와 있습니다. 저밖에 모르던 제 세상을 넓혀 준 계기기도 하죠. 그런 면에서 선생님은 단순히 인문학을 알려 준 스승이라기보다 인생을 조금씩 바꾸게 해 준 인생 스승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제게 그러더군요. 선생님 얘길 하는 제 모습이 좋아 보인다고. 정말 좋아하는 스승인가 보다고. 숨길 수 없이 티가 나는 것은 제 약점이자 강점입니다. 아마 제 속이 빤히 보이기 때문에 축사를 제가 맡게 되었겠죠. 솔직히 뭐라 써야 할지 모르겠어서 역시나 숨길 수 없는 마음을 마음대로 쓰고 있습니다. 글 쓰는 사람이라고 제게 큰 기대를 걸었다면 그 사람의 실수라 말하고 싶을 정도로.


너무 축사가 길어지면 다들 지루해질 테니 하고 싶은 말은 만나서 마저 나누고 이만 정리하려 합니다. 선생님이 제 스승이라는 것은 제게 큰 기쁨이고 감사입니다. 아마 저만이 아닌, 선생님을 선생님이라 부르는 모두가 그럴 것입니다. 선생님의 지난 시간은 빠짐없이 의미 있었고 그 의미가 모두를 이어줍니다. 환갑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더더 오래 함께하시죠. 선생님과 마시던 술과 담배가 그립습니다. 선생님의 날에 모두가 그 시간을 누릴 거라 생각하니 셈나네요. 부디 그곳의 모두가 어느 날보다 기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3.

잔치를 준비하고, 잔치에 참여하고,  함께 즐겨준 모든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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