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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y 06. 2024

오늘 : 화창

2024. 5. 6.

1.

어제는 호우, 강풍, 풍랑주의보가 한꺼번에 내린 날이었다. 새벽부터 내린 비는 밤이 되어서도 그치지 않았다. 아침에 깨어 배가 뜨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 후 다시 잠자리에 누워 빈둥대다가 독서를 하며 오전을 보냈다. 점심때 영진이네에서 따뜻한 국수를 끓였다며 함께 하자고 해서 비를 맞으며 점심을 먹으러 갔다. 부추와 어묵을 넣은 국수는 정말 맛있었다. 이웃사촌이라더니 가까운 친척이 생긴 것 같다.

어제가 어린이날이라는 걸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아이들이 다 커버려서 그런가 보다. 영진이네 집에는 어린이가 셋이나 있다. 선물이라도 줘야 할 텐데. 궁리 중이다.


2.

고양이들이 비를 맞으면서 마당에서 논다. 이상하다. 고양이는 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비가 오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즐기지는 않는 것 같은데 피하지도 않는 것 같다. 감자를 비를 맞으며 앉아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밖에 나와 서 있으니까 따라 하는 걸까? 혹시 참치캔을 달라는 걸까?


3.

존재하기 위해 사라지는 법을 야금야금 읽고 있다. 이런 책은 후딱 읽어치우는 책이 아니라, 야금야금 읽어야 맛이 나는 책이다. 읽다가 눈이 가는 문장을 만난다.


"보이지 않게 되는 걸 그저 도피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와 힘이 되는 조건으로 여길 수 있을까? 보이지 않게 되는 건 품위와 자기 확신의 표시가 될 수도 있다. 눈에 띄지 않으려는 충동은 자기만족적인 고립이나 무의미한 순응이 아니라 정체성, 개성, 자율성, 목소리 지키기와 관련이 있다. 그저 디지털 세상에서 뒷걸음치려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삶에서 진정한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사라지는 건 아무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 위해서다."


도피가 아니라 사라지는 것.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의 의미와 힘을 생각하게 한다. 계속 읽어봐야겠다.


4.

밤새 비가 내리더니 아침이 되니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화창하게 개었다.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치고 가벼운 차림으로 출근한다. 오늘은 연휴의 마지막 날. 배가 다 뜰 것이다. 친절하게 손님을 응대하고, 차분히 책을 읽고, 깊게 생각해야겠다. 내일은 고양시로 올라간다. 그 이전에 강의안 두 개를 마무리해야 한다.


5.

한라산이 구름모자를 쓰고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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