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금요일 쉬는 날이다. 휴식뿐 아니라 재충전이 필요하다. 지인에게 소개받은 강풍식당에서 해장국을 먹고 추사를 보러 간다. 가는 길에 대정향교가 눈을 들어와 잠시 들른다. 추사가 유배 왔을 때 이곳에서 제주의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추사의 명작 세한도에 나오는 소나무가 이곳의 나무를 모델로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진짜일까?
이 나무? 혹은 저 나무? 향교는 성균관 대학의 명륜당에 비해 크기는 작았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정갈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의 문들은 하나 같이 낮았다. 당대 사람의 신장이 작은 것이 아니라면 들어오는 모든 사람은 겸손히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라는 신호렷다.
유교의 위인들을 모시는 사당을 갖추고 있어, 제사와 공부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온고지신, 옛것과 현재는 늘 만나 대화를 한다. 그것이 역사라고 말하는 듯.
2.
잠시 머문 후, 추사기념관으로 향한다. 추사의 유배지를 보존하고 기록물을 전시하는 곳. 예전에 전시관은 들렀으나 유배지는 지나쳤는데, 오늘은 목적은 유배지를 보는 것. 더위로 지친 나를 위무하기 위해 추사가 갇혀 지낸 곳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은 무엇일까? 작은 고난을 더 큰 고난과 비교해서 나를 반성하려는 것일까. 추사에게 유배는 날벼락이었지만, 나의 가파도행은 자발적 선택이라 언감생심 비교할 바도 안 되지만, 그래도 유배지에서 보내는 추사의 자세와 기운이 내 안에 스며들기를 바라며, 유배지 마루턱에 기대앉아 오랫동안 있었다. 그늘 사이로 선선한 바람이 밀려왔다. 그나마 유배지는 제주도의 부잣집 모걸이(중간채)를 얻었고, 밖거리(바깥채)는 인근 학동을 가르치는 서당 역할을 했으니, 외롭지는 않았겠다. (물론 안거리는 집주인 강도순의 식구가 기거하는 곳이다.) 그래 봐야 방들은 달팽이집처럼 작았다.
모거리 방에는 초의선사와 추사가 마주 앉아 차를 마시는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둘이 앉았는데 방이 꽉 찼다. 밖거리 방에도 추사가 학동 3명을 가르치는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아이들이 불편해 보였다. 그러니 당시에는 불편이 기본값이었던 것 아닐까? 아니, 내가 생각하는 불편과 그들이 생각하는 불편이 다른 것은 아닐까? 내 불편은 사치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에 문득 부끄러워졌다.
3.
전시관으로 들어가니 시원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왔다. 지하이기도했지만, 적절히 조절된 내부 온도가 몸의 열기를 식혔던 것. 전시관 바깥에서는 공사를 하고 있는 인부들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삶이 달라진다. 예전에는 후딱 지나치면 봤는데, 이번에는 천천히 작품들을 음미하며 글을 쓸 때 추사의 심정을 상상해 본다. 1840년(55세, 헌종 6년)에 동지부사로 임명되었다가 갑자기 제주도 대정현으로 위리안치 유배를 당했을 때, 어떤 심경이었을까? 그로부터 2년 후 아내가 죽었을 때, 아내의 사망 소식도 듣지 못한 채 갇혀 있었다. 그가 유배에서 풀려난 것은 1848년(63세, 현종 14)이었으니 햇수로 9년 동안 유배생활을 한 것이다. 그동안 추사는 붓이 마르고 닳도록 쓰고 또 썼다. 우리가 알고 있는 추사체는 바로 이곳에서 탄생한 것이다.
물론 유배 중에도 찾아오는 사람이 있었고, 동네 학동과 선비들을 가르쳤다. 추사학은 유배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특히 1843년 초의선사는 제주도에 내려와 6개월간 추사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 흔적을 지금 전시장에서 기획전시하고 있다. 시간이 되면 들러보시길) 그리고 항상 자신을 챙기고 찾아와 주는 제자 이상적을 위해 <세한도>(1844년)를 그린 것도 이때였다. (이상적인 이 작품을 청나라로 가져가 청나라 16 문인의 제찬을 받기도 했다.)
4.
나는 현재 제주도 대정읍 가파리에서 10개월간 머물렀다. 올해 더위로 몹시 힘들지만, 추사에 비할 바 아니다. 추사는 63세에 8년 3개월의 유배에서 풀려났으니, 내가 63세가 되려면 앞으로도 2년의 세월이 남았다. 추사는 추사체와 세한도를 남겼다면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보낸 하루였다. 이런저런 생각만으로도 더위가 꺾이고 있었다. 다시 태풍이 밀려온다. '괜찮다'라고 생각한다. 바람이 분다.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