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결혼 33주년이었다. 아내는 지인과 절로 2박 3일 수행을 떠났고, 나는 풍랑으로 공친 날을 보충하려고 근무를 했다. 결혼하고 나서 두 번째로 따로 지내는 결혼기념일이다. 젊은 날 감옥생활을 잠시 할 때 결혼기념일을 따로 보낸 것을 제외하면, 결혼기념일에는 - 그날은 개천절이기에 - 함께 가까운 곳에 여행을 가기고 하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루틴이었는데, 어제는 따로따로 각자 알아서 지냈다.
2.
서운한가? 별로. 이제 기념일을 챙겨 삶을 환기시키기에는 나이가 들어버린 것일까? 그냥 무탈하게 지내기가 소망이기에, 무탈하면 됐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그냥 재끼지는 않았다. 아내에게 택배로 선물 하나를 보냈다. 아내는 나에게 금일봉을 하사하셨다, 맛있는 거 사 먹으라면서. 근무를 하느라 맛있는 걸 사 먹지는 않았지만 그것으로 족하다.(아, 어제 제주에서 활동하는 지인들과 한 잔을 했구나. ^^)
무심한 아이들은 가족 톡방에 결혼 33주년이라고 하니, 작은 아들은 "축하드립니다. 33년 동안 같이 사시다니....."라고 툭 메시지를 던졌고, 큰 아들은 그나마도 없이 쌩깠다. (아들만 둘인 집안에 비극이다.^^) 그러면 어떤가?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커서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으로 한몫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3.
오늘도 원래는 쉬는 날이지만, 쉬는 것을 취소하고 근무하고 있다. 자, 이렇게 따로 알아서 잘 지내보자. 사건사고 없이, 크게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게, 아프지 않게, 아프더라도 많이 아프지 않게! 삶을, 생각을 잘 조절하면서 하루하루 살아보자. 33년을 같이 지냈으니 이렇게 따로 지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서로 평안하기를 각자 있는 곳에서 기원하자. 그동안 같이 사느라 고생했다. 따로 지내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저 평범한 하루를 감사하며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