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윤 Oct 31. 2024

오늘 : 10월의 마지막 날

2023. 10. 31.

1.

브런치에 마지막으로 기록을 남긴 날이 10월 22일이다. 이후로 희한하게도 글을 쓰지 못했다. 그리 바쁜 것도, 그리 나쁜 것도, 그리 아픈 것도 아닌데 조금은 글쓰기 루틴이 지루해졌나 보다. 대신 독서는 멈추지 않았으나 그에 대한 글도 쓰지 못했다. (물론 책에 대한 후기는 나중에라도 쓸 수 있겠지.)

시간이 흘러 벌써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대중가요의 가사말이 저절로 떠오르는 날. 오늘 아침도 출근을 하는데 풍랑이 거세서 배가 뜨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출근하다 발길을 돌렸다. 가파도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니까. 집으로 돌아가 아침식사를 하고, 이사 갈 집으로 가서 옮겨진 짐들을 대충 정리했다. 커피를 마시고 싶어졌다. 새로 이사 갈 집에서 매표소까지는 걸어서 10분. 비록 배는 뜨지 않지만, 매표소 문을 열어 안쪽으로 들어가 물을 끓이고 커피를 타고 컴퓨터를 켠다.

2.

그리고 10월 22일부터 30일까지 빈 공간을 메모 차원에서라도 기록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기억력을 믿을 수 없으니 나중에라도 확인하기 위해서.


<10월 22일/화>

작가회의와 제주문화예술재단이 함께 준비한 가파도 작가 발표회가 있었다. 김해자 시인과 베트남 시인 이 반이 발표자다. 가파도 주민들을 초대하여 함께 시를 낭송하고, 제주의 시인들도 초청하여 시낭송으로 자리를 빛내는 편안한 시간이었다. 점심 도시락도 맛깔스럽고 든든했다. 나는 오전 근무를 마치고 점심시간에 잠시 들러 구경했다.

오후 시간에 가파도에 머물면서 작품활동을 했던 영국작가 윌리엄과 태국작가 샬롯이 가파도를 떠났다. 나를 '티켓 마스터'라 부르는 청년들이다. 윌리엄은 맥주도 좋아하고 장난도 좋아하고 재주도 많은 청년이다. 샬롯은 조용하고 사색적이고 전통을 사랑하는 청년이다. 다들 가파도가 작품 활동하기에는 정말 환상적인 장소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잘 가시라. 가기 전에 사진 한 컷!


<10월 24일/목>

아내가 후배부부와 제주도로 관광 와서, 아내만 가파도로 들어왔다. 새로 얻은 집을 구경해 보더니 지난 집보다 훨씬 좋다며 다행이라고 한다. 가파도에서 더위로 고생한 내가 안쓰러웠나 보다. 저녁에는 해자누나와 이 반 작가를 만나 같이 블루오션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아직 이삿짐도 다 옮기지 못했는데, 안방을 치우고 하룻밤을 보냈다.

<10월 25일/금>

갑자기 파도가 높아져 가파도로 온 첫배가 회항을 하더니 하루 종일 결항이라는 통보가 왔다. 오늘 가파도를 나가 후배부부들과 일정을 보내야 하는 아내로서는 난감한 상황. 다행히 동네 가게 삼촌이 어선을 불러 몇몇 관광객과 함께 작은 어선에 몸을 싣고 가파도에서 나왔다. (나도 처음 타보는 어선이 일렁이는 파도에 뒤집어질 듯 흔들리며 전진하니 가슴이 철렁철렁했다. 아내는 아예 눈을 감고 있었다 한다.)

가파도에서 나오니 바깥세상은 너무도 고요하다. 후배 부부와 제주도 요양원에서 근무하는 선배누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과 애월에서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고 관광을 했다. 나는 다음날 새벽에 운진항으로 돌아가야 해서 일찍 잠에 들었다.

<10월 26일/토>

새벽에 일어나 애월에서 운진항까지 차로 달렸다. 첫배로 몸을 싣고 가파도로 이동. 3시까지 근무했다. 마지막 배가 뜨지 않아, 해 질 녘까지 시간이 있다. 서둘러 이사할 집으로 몇몇 짐을 옮겼다.  블루오션의 봉윤이 형이 도와줬다.


<10월 27일/일>

가파도에서 여러 차례 식사를 나눴던 베트남 작가 이 반이 떠나기 전에 한 번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연락해 왔다. 저녁 5시에 전망대 식당에 모여 백반, 짬뽕, 해물파전을 시키고 소주를 몇 잔 나눴다. 이 반은 그동안 이모로 저모로 고마웠다며 나중에 베트남 하노이로 놀러 올 일이 있으면 꼭 연락하라고 이메일과 주소를 공유해 줬다.

술 몇 잔을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반이 기분이 좋았는지 거리에서 노래를 불러준다. 베트남 전통민요라는데 우리 민요와 리듬과 성조가 비슷하다. 뜻은 모르겠지만 마치 우리 아리랑 노랫가락을 듣고 있는 기분이다. 해자 누나랑 이 반이랑 새로 이사할 집을 구경하고 축복해 주고 떠났다.

<10월 28일/월>

부천인문학 수업이 있는 날이다. <역사의 쓸모>를 읽고 있다. 오늘따라 참가자가 적어서 조촐하게 진행했다. 끝나고 모슬포로 나가 차를 타고 다이소를 찾아가 이사에 필요한 것들을 샀다. 그중 하나가 모서리 충격흡수 스펀지. 가파도는 집에 낮아 자꾸 이동할 때 머리가 닿는 곳이 많다. 부딪히면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아프다. 빵집에 들러 달달한 빵을 몇 개 사들고 가파도로 들어간다. (군대생활하며 삼립빵이 그렇게 땡겼는데, 가파도생활도 비슷하다. 달달하고 짭짤한 게 그렇게 땡긴다.^^)

블루 오션 봉윤이형에게 빵 하나를 드렸더니 저녁밥을 먹고 가란다. 김치찜이 남아 있다며, 김치찜에 국수를 비벼 먹고, 밥 한 그릇을 비웠다.

 

<10월 29일/화>

너울성 파도로 배가 오후 2시로 끊겼다. 해가 지기 전까지 집에 있는 짐들 중 일부를 새로 이사 갈 집으로 옮겼다. 저녁에는 이사를 도와준 지인들과 함께 회를 뜨고 고기를 굽고 술을 나눴다.

<10월 30일/수>

가파도에서 활동했던 작가들이 모두 떠나는 날이다. 아침 일찍 매표소에 들른 부부작가  환희와 펠릭스, 일본작가 유나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환희와 펠릭스 부부는 서울에 올 일이 있으면 꼭 들러달라고 말했다.(농담이나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니란다.^^)  일본 들를 일이 있으면 유나 작가에게 연락하겠다고 했더니 활짝 웃으며 좋다고 한다. (사실 해외 나갈 일은 거의 없을 것 같지만, 떠나는 작가마다 자기 나라에 오게 되면 꼭 연락하라고 말하니 기분은 좋다. 혹시 아는가? 갈 수도 있을지?)

3.

참, 많은 인연이 있었구나. 잘 가라 친구들아! 잘 가라 10월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