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이다. 비가 내린다. 바람이 거세게 분다. 연이틀 배가 끊겼다. 알람이 울려 깨었으나 풍랑주의보로 강제휴일이 되었으니, 서두를 필요는 없다. 천천히 김치찌개를 끓이고 햇반을 데우고 아침식사를 한다. 이삿짐의 대부분을 옮겼고, 나머지를 싸두어서 집안이 썰렁하다. 비가 오니 이사는 불가다. 기분이 착 가라앉는다.
이 달에 할 일을 생각해 본다. 새로 살 집에 인터넷 설치를 예약했지만 워낙 섬 속에 섬이라 두 달은 기본이다. 11월 중순이면 인터넷이 설치될 것이고, 그때 마지막 짐인 컴퓨터를 옮기면 지금까지 살았던 집과는 이별이다. 새로 얻은 집은 - 집을 매물로 내놓아서 집이 팔리면 나간다는 조건으로 - 상동 해안가에 위치한다. 창을 열면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아담하고 이쁜 집이다. 앞 뒤 마당도 넓고, 마루도 넓다. 옷가지와 책, 그밖에 중요한 물건들은 이미 옮겨놓고 정리했다. 상수도 시설을 정비하고, 레인지에 연결할 가스를 신청하고, 필요한 전열등을 교체하면 된다. 이전 집이 11월까지 계약이니, 한 달 이내에 이사를 하면 이사종료다.
2.
걱정은 그동안 정들었던 고양이들과 어떻게 이별할 것인가이다. 감자, 카레, 미니, 무, 흙당근 이 식구들을 데리고 갈 수는 없다. 고양이는 영역동물이라 영역이 바뀌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집안에서 키우면 문제없겠지만, 처음부터 마당고양이로 키웠기에 반 야생의 상태이다. 해안가의 고양이들은 거의 야생고양이와 가까워서 그들과 영역 싸움을 한다면 연약한 우리 고양이들이 전멸할 수도 있다.
정을 떼야한다. 내가 없어도 이곳에서 정착해 살 수 있도록 주변의 고양이 삼촌과 이모들에게 부탁하고, 내가 주는 별식인 참치캔도 끊어야 한다. 습식사료에 길들여지면, 비교적 딱딱한 건식사료를 잘 먹지 않는다. 나만 보면 반갑게 달려와 캔을 달라며 울어댔던 감자네 식구들을 외면하기 힘들지만, 참치캔과 사료도 거의 떨어져 간다. 아껴 먹여야 한다.
새로 얻은 집에 급식소 하나는 옮겨놓을 예정이다. 새집으로 이사 왔으니 새로운 고양이 인연을 만들어 가야겠다. 이사하면서 관찰해 보니 주변에서 마당으로 왔다 갔다 하는 고양이들이 제법 있다. 마주치면 간단하게 눈인사를 나눈다. 내가 이 집에서 살 사람이야. 배고프면 와서 사료를 먹으렴. (서귀포시에서 무료로 나눠졌던 고양이 사료지원이 끊겼다. 고양이보호단체와 협의해서 집단적으로 구매해서 이들을 먹여야 한다.)
3.
11월이면 내가 가파로 온 지 딱 일 년이 되는 달이다. 이번 달에 회사와 재계약을 맺을 것이다. 최소 1~2년은 더 가파도에 있을 생각이다. 관광하기 좋은 곳이지만 생활하기에는 정말 불편한 곳이다. 그래도 자연이 주는 위로와 행복도 만만찮다. 물론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 좋은 것만은 주지는 않겠지만 그 자연에 경외하는 마음을 갖고 잘 적응하며 지내보려고 한다.
11월에는 두 권의 책을 정리하려 한다. 한 권은 고양이 동화책이고, 다른 한 권은 가파도 아포리즘X어반 스케치 책이다. 1년 살이를 마감하는 달이니 열매를 맺기 위해 마지막 땀을 흘려야지. 모두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만들기로 했다. 든든한 공동창작자들이 있으니 나는 내 몫을 다하면 된다. 같이 살면 살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