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일 오전 10시에 화성에 있는 태안도서관에서 4대 성인에 대한 강의를 진행했다. 강의를 했다는 게 뭐 그리 대수겠냐마는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1년 만에 처음으로 진행한 외부강의라는 점도 그렇지만, 가파도에 지내면서 처음 수락한 대면 강의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러니까 1시간 30분 강의를 진행하기 위해 2박 3일을 투자한 셈인데, 경제적으로 계산하면 참으로 어리석은 결정을 한 셈이다.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강의에 대한 강사비는 다들 아는 정도인데, 그 강의를 진행하기 위해 나는 21일 저녁 가파도에서 마지막 배를 타고 운진항으로 나가, 거기서 제주공항으로 가는 급행버스를 타고 공항에 내려 비행기를 타고 김포에 도착,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일산에 있는 집에 가서 하루 묵었다. 대략 6시간의 시간과 10만 원이 넘는 경비가 들었다.
다음날 새벽에 지인에게 빌린 자가용을 몰아 고양시에서 화성으로 달렸다. 2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3시간 전에 출발했으나 겨우 30분 전에 도착하여 강의를 진행했다. 강의는 정말 좋았다.(내 생각이다. 왜 안 좋았겠는가? 오랜만에 입을 열어 마음 놓고 떠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니, 물고기가 물을 만난 셈이다.) 그렇게 시간은 바람처럼 흘러갔고, 다시 자가용을 몰아 빌려준 지인에게 차를 가져다주고, 점심식사를 같이 한 후에 다시 지하철을 타고, 김포공항에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제주공항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모슬포에 도착하니 밤 8시가 다 되어 간다. 가파도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시간(3시 50분 막배는 이미 끝났다.)이다. 모슬포에서 숙소를 정하고 하룻밤을 보낸다.
새벽에 일어나 운진항에 가서 가파도로 가는 첫배 티켓을 끊고, 첫배를 타고 들어와 근무를 시작한다. 이틀 전에 근무가 끝나고 출발한 강의여행은 오늘 근무의 개시로 끝났다. 제주도로 돌아와 하룻밤 밖에서 묶고 밥 먹고 하는데 드는 비용과 빌린 자동차의 기름을 넣은 비용을 합치니 20만 원 가까이 된다. 받기로 한 강사비는 이미 거리에서 녹아버린 셈이다.
2.
그럼에도, 그렇게 될 줄 뻔히 알면서도, 흔쾌히 강의를 하겠다고 결정했다. 시간적으로는 계산불가이고 비용이야 똔똔이지만, 나에게는 오랜만에 내 일(!)을 하는 뿌듯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가파도에 있으면서 비대면으로 강좌를 진행하고 있지만, 직접 대면하여 눈과 눈을 마주하고, 숨과 숨을 나누며, 뜻과 뜻을 부딪혀보는 소중한 시간이 그리웠다. 태안도서관은 나에게 그 소중한 시간을 선물한 것이다.
올해는 제주도로 내려와 조용히 지냈다. 매표원으로 잘 적응하며 가파도 주민으로 잘 정착하는 시기로 삼아 일부로 외부활동을 자제한 면도 있었다. 그럼에도 가파도에서 읽고 생각하고 쓴 글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 첫물꼬를 태안도서관에서 터준 것이다. 머리 숙여 감사한다.
태안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독서동아리 모임의 맴버들이다. 다들 진지하고 멋지다. 질문도 얼마나 잘 하시던지.^^
3.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제주에서도 강의를 진행하고, 조건과 기회가 된다면 본토에서도 강의를 하고 싶다. 지역적으로, 교통편으로 아주 불리한 상황이지만, 잘 맞추면 불가능하지는 않다. 몸이야 고달프겠지만 강의가 천성(?)이니 기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요즘은 주로 노자와 장자와 놀고 있지만, 동양철학과 서양철학,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강의도 제법(?) 잘한다.
혹시 관심이 있으시면 댓글이나 메일(0070kky@hanmail.net)로 연락 주시면 반갑게 답신하겠습니다. 사진은 태안도서관 강의에 참석하셨던 분이 보내주신 걸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웠습니다.
화성에 있는 태안도서관. 새로 지었는지 아주 깨끗하고 잘 갖춰져 있다. 프로그램도 알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