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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r 06. 2020

금강경 명상 8 : 依法出生分

8장 : 법에 의해 다시 태어나라

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만약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칠보로써 보시한다면, 이 사람이 얻을 복덕이 많다 하겠느냐? 그렇지 않다 하겠느냐? 

2. 수보리가 사뢰었다. 정말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그러하오니이까?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이 복덕은 곧 복덕의 본성을 지니지 않기 때문이오이다. 그러한 까닭에 여래께서는 복덕이 많다고 말씀하신 것이오이다. 

3. 만약 또한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곧 이 경중에서 사구게라도 하나 타인을 위하여 설파하는데 이른다면, 이 사람의 복이 칠보공덕의 복을 뛰어 넘으리라. 

4. 어째서 그러한가? 수보리야! 일체의 모든 부처님, 그리고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이, 모두 이 경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5. 수보리야! 이른바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곧 불법이 아닌 것이다.     


* 삼천대천세계 ; 인도인의 우주관을 보여준다. 전설의 산인 수미산을 중심으로 9산과 8해가 둘러싸여있고 마지막 경계선에 철위산을 둘러싸고 있는 이 세계를 1수미세계라고 한다. 삼천대천세계란 1수미세계×1000=1소천세계, 1소천세계×1000=1중천세계, 1중천세계×1000=1대천세계를 말한다. 그러니까 삼천대천세계는 1000의 3승, 즉 10억개의 수미세계를 뜻한다.


    須菩堤。 於意云何, 若人滿三千大千世界七寶以用布施, 是人所德寧爲多不? 須菩堤言, 甚多, 世尊。 何以故, 是福德卽非福德性, 是故如來說福德多。 若復有人, 於此經中, 受持乃至四句偈等爲他人說, 其福勝彼。 何以故, 須菩堤, 一切諸佛及諸佛阿耨多羅三藐三菩堤法, 皆從此經出。 須菩堤, 所謂佛法者, 卽非佛法。


Subhuti, what do you think? If anyone filled three thousand galaxies of worlds with the seven treasures and gave all away in gifts of alms, would he gain great merit?

Subhuti said: Great indeed, World-honoured One! Wherefore? Because merit partakes of the character of no-merit, the Tathagata characterized the merit as great.

Then Buddha said: On the other hand, if anyone received and retained even only four lines of this Discourse and taught and explained them to others, his merit would be the greater. Wherefore? Because, Subhuti, from this Discourse issue forth all the Buddhas and the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teachings of all the Buddhas.

Subhuti, what is called "the Religion given by Buddha" is not, in fact, Buddha-Religion. 


<짧은 명상>

설상가상(雪上加霜)! 8장은 아예 “불교는 없다”고 말한다. 금강경 전체는 이 한 마디로 정리된다. “이른바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곧 불법이 아니다[所謂佛法者, 卽非佛法].” 비록 금강경에는 공(空)이란 말이 없지만, 이 한 마디가 바로 공(空)사상의 정수다. 원시불교에서는 이를 ‘제법무아(諸法無我)’로 정리하기도 했다. 원시불교의 무아(無我)사상은 대승불교에서 공(空)사상으로 확장된다. 의심의 법정에 모든 것이 소환된다. 그리고 모든 진술은 거부된다. 

중국호떡 중에 우리가 공갈빵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겉은 크고 그럴 듯하게 구워져있지만 속은 텅 비어있는 그 빵을 기억하는지. 그 빵을 먹을 때의 허망함이란…….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 빵은 텅빔을 담기 위해 겉을 껍질로 감쌀 수밖에 없었다고. 그 껍질을 뜯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속이 비었음을 몰랐을 것이다. 그 껍질(언어)를 벗기자, 그 속(진리)가 텅 비었음을 깨닫는다. 공(空)이다. 공갈빵은 불교의 공(空)을 그렇게 우리에게 보여준다. 공(空)을 담고 있는 언어, 그것이 불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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