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돌이 요가복을 입어보았다.

모르신다면 참으로 다행입니다.

by Choi

레깅스가 너무 많아서..


기존에 입었던 6벌의 운동복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의 게으름이 한몫 거들었다. 처음 운동복을 구입했을 때는 가성비를 생각해서 오랫동안 입어야겠다는 아줌마의 의지로 조물조물 손빨래를 했다.


하지만 호찌민에서 아는 동생이 하필 옷공장을 했다. 그녀는 매해마다 운동복을 종류별로 가져다주었다. 샘플이라고 했다. 그녀 덕에 서랍장에는 운동복이 넘쳐났다. 그 뒤로는 손빨래 대신 세탁기가 운동복을 빨았다. 운동복의 소중함을 망각했다. 인간은 참 단순하다. 게다 공짜. 귀한 줄 몰랐다. 울코스로 가뿐히 빨고 말렸다. 한국에서도 그 습관을 유지했다. 한수 더 거들어 건조기에도 돌렸다.


나의 게으름 탓인지 그 많은 운동복들이 늘어나서 투명해질 만큼 얇아진 것도 있었다. 발목과 무릎 부분에 주름이 주글주글 잡히기 시작했다. 나의 허벅지와 팔뚝 살이 쳐서 허물 거리듯 운동복들도 그 모양새를 닮아 가고 있었다. 운동복도 세월을 못 이기나 보다. 몸을 탄탄히 잡아 줘야 할 자기 입무를 완수해 내지 못했다.


곧 죽어도 레깅스


운동할 때만큼은 딱 붙는 걸 선호한다. 왜냐고???

몸매에 자신이 있어서!!! 하하하~~ 정말?


운동복중 레깅스의 기능은 몸매를 잡아주고
정확한 자세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운동에 효과를 극대화해 준다.


나의 경우는 운동의 극대한 효과보다는 몸매와 핏 때문에 레깅스를 선호한다. 솔직히 살이 처지기도 했고 움직일 때마다 힘없이 말랑 말랑한 지방들이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게 영 불편하다.


레깅스를 입으면 저 불편함이 다 해소된다. 또, 내 몸매가 거울 속 몸매와 동일할 거란 착각 때문에 기분이 좋다. 스타일리시하게도 보인다.


매번 레깅스를 입을 때마다 거울에 비친 저 군살 없는 허벅지가 나의 허벅지였으면 하고 바란다. 사방에 붙어 있는 거울을 보면서 마치 현실 속 나의 모습인양 흡족해한다. 탄탄하고 쫀쫀한 레깅스가 흘러내린 살들을 어찌나 쭈욱 잘 끌어올렸는지 이런 옷을 만든 디자이너의 천재성에 감탄할 정도다.


그날 저녁에도 새로 구입한 요술팬츠 레깅스의 마력에 빨려 들어갔다.


너의 한마디 - '구겨 넣었잖아'


나는 나의 자존감을 더욱 높여줄 더 탄탄한 새로운 레깅스가 필요했다. 호찌민에서 입던 레깅스는 더 이상 나의 사치스러운 욕망을 채워주지 못했다. 수명이 다한 레깅스를 비웃으며 쓰레기통으로 슝~ 날려 보냈다.


요가 수업을 마치고 급한 데로 1층 상가 스포츠 센터에서 한벌 구입했다. 내일 당장 탄탄함을 느끼고 싶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샥샥' 옆구리 살들을 능수 능란하게 집어넣으며 새 레깅스를 입어 보았다. 늘어난 레깅스만 입다가 이토록 쫀쫀한 레깅스를 오랜만에 입었더니 웬일~ 살들을 더욱 꽉 잡아주었다.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비록 통통한 살들 때문에 울퉁불퉁 하지만 아줌마 치고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아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거실로 나왔다. 이 아줌마의 소소한 행복이었다. 잠시나마 나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 두 남자로부터 어떤 인정이라도 받고 싶어서였을까? 난 도대체 그 둘로부터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하!!!

"이것 봐~ 어때?"


나의 동거남은 영혼 없는 답변을 날리는 프로 선수다.


"완전 날씬해~. 우아~ 완전 살 빠졌다 야~ "라고 남발을 한다. (역시 그는 빈말의 천재다.)


엄지 손가락까지 척 내밀어 준다. 둥실한 얼굴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느끼한 미소를 띠며 저런 말을 남발하면 난 왠지 그의 말을 찰떡처럼 믿고 싶다.


그를 연신 째려보지만, 매번 그렇게 해주는 빈 말에 난 우쭐해질 때도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더욱 슬픈 사실은 그 말을 진심으로 믿었던 때도 있었다. 나 순진했었다.


아들은 냉철하다. 객관적이고 날카롭다.

"엄마, 구겨 넣었잖아."

그게 끝이다. 중딩 아들이 내뱉은 한 마디.. '구겨 넣었단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콧구멍으로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듯 숨을 내쉬었다.

나.쁜.ㅆ.ㄲ

냉철한 놈.

(웃는 얼굴로 속으로 내뱉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


아들에게 젊었을 때 사진을 보여주며 '이 엄마가 소식적엔~ ' 어쩌고 저쩌고~' 아들은 꿈쩍도 안 한다.

그래서 다들 '중딩아들'이 무섭다고 하나 보다. 치사해서 ~


유달리 과한 쫀쫀함이 가져올 사태를 꿈에도 모른 채 잠자리에 들었다.


돌돌이 요가복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의 말투가 들려온다.

"자~ 다리를 벌리고 엉치뼈를 앞 뒤로 왔다 갔다 헛쎄요~."

"고관절을 풀거에요."

"오늘 골반 교정도 해 봅시다잉~."


거울 속에 나는 새 레깅스를 입고 흐뭇해 보인다. 살이 흘러 내리지 않는다. 다리도 이전보다 많이 벌어진다. 여전히 고관절이 아프고 척추를 펴고 있다 보면 골반사이가 끊어 질듯 아프다. 힘이 들어가서 그런 것 같다.


곧이어 다른 동작들이 이어 진다.

그. 런. 데. 이상하다.

새 레깅스가....


이거 왜 이런 거지????

배를 감싸주는 넓은 밴드 쪽 부분이 자꾸만 돌돌 말려서 아래로 내려갔다. 이러다 벗겨지는 건 아니겠지?

동작 하나 하나 할 때마다 계속 배가 훌러덩 까져 통통한 뱃살이 보이고, 야속한 레깅스는 돌돌 말려서 한없이 아래로 내려갔다. 아 환장하겠다.


엎드려 다리를 뒤로 쭉 올리거나, 다시 숙여 허리를 구부리는 등 여러 동작을 할 때마다 자꾸자꾸 돌돌 말린다. 또르르 말리다 다행히 골반쪽에 끼어 더 이상 내려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남자 선생님이라 더욱 신경이 곤두 썼다.


한 동작하고 옷을 끌어올리고 한 동작하고 끌어올렸다. 돌돌이처럼 말려 내려갈 때마다 볼록볼록 옆구리, 앞구리 살들이 곱창처럼 튀어나왔다. 다시 바지를 끌어올렸다. 다시 동작을 시도한다. 다시 말려 내려간다


몸에 집중을 하고 호흡에 집중해야 할 요가 수업에 나는 '돌돌이 요가복'에 초 집중을 하고 있었다.

'이게 왜 이렇지?', '이게 윗부분이 짧은가?', '이 레깅스 배 쪽 탄력이 불량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나의 비대하고 큰 몸뚱이를 M 사이즈에 아들 말대로 '구겨 넣어서' 그런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한 시간 동안 '요가 수업'을 한 건지 '바지 끌어올리기'를 한 건지.

인내심이 폭발했다.


요가를 하는 둥 마는 둥 마치고 1층 샵에 서둘러 내려갔다.


“아주머니, 이거 레깅스 이상해요. 불량 같아요. 자꾸 배 쪽이 이렇게 말리잖아요. ~~”

당당하게 배를 까서 아줌마에게 보여줬다. 레깅스 배 쪽 탄력이 문제라는 게 나의 요지였다.


“네?, 무슨 사이즈 구입 하셨어요? “

난 당당하게 “ 미듐~M 사이즈요”

아주머니는 이리저리 나를 둘러보신다.


"다리가 가늘긴 한데 허벅지랑 상체 쪽에 살이 좀 많은 것 같은데요?"

“보기보다 배 쪽에 살이 많으신가 보다. 라지 'L' 입으셔야 할 것 같아요."

"그거 작아서 그런 거예요.”


그리고 살짝 웃었다.


아…..작아서 그런 거예요 말이 메아리처럼 계속 들려온다.

진. 짜. 창. 피. 하. 다.

"아!, 넵, 그럼 라지 L사이즈를 다시 구입해야겠네요."

억지웃음을 지으며 가게를 나왔다.


호찌민에서 아는 동생이 운동복을 항상 챙겨준 탓에 난 나의 사이즈를 몰랐다. 아니 M인 줄 알았다. 생각해 보니 그 동생이 항상 옷을 건네면서 '언니, 아마 언니한테 사이즈 다 맞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 동생은 내가 'L' 사이즈 인지 어떻게 알았을까? 헐렁하고 큰 박스티로 항상 감추고 다녔는데...


그 동생이 급 보고 싶네..



인터넷을 뒤졌다.

아~ 운동복 브랜드가 이리도 많았던가.

젝스미*, 안다*에서 각 각 L사이즈, 라지를 구입했다. 억울해서 2벌을 구입했다.

하나는 돌돌이 레깅스, 하나는 L 사이즈 레깅스. 보이죠? 다른 점.


어쩐지, M사이즈라서 더 날씬해 보였고, 더욱 탱탱하게 쫀쫀하게 몸매 핏을 잡아 주어서 기쁨이 두 배가 되었던 거구나.

남편은 나의 말을 듣고 '큭큭' 거리며 웃었고 중딩 아들은 시크하게 '하' 하고 한번 웃어 주었다.


L사이즈 레깅스는 아래로 도르륵 말려 내려가지 않는다. 돌돌이 요가복이 아니다.

다리 아래쪽에 쫀쫀한 느낌은 덜하다.

호흡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가랑이 쪽에 근육이 찢어지는 느낌을 이겨 내고자 오늘도 난 골반 푸는 동작을 열심히 따라 했다.


'젊었을 땐 왜 그것이 젊음인지 몰랐을까?'


한 치수 작은 레깅스를 입고서 생쇼를 하며 남편과 중딩 아들 앞에서 '나 좀 괜찮지 않냐'라는 허세를 부린 내 모습이 웃기기도 했지만 서글펐다. 그 어느 누가 세월을 이겨 먹을 수 있을까. 아니다 요즘은 중년이 중년인지 모르겠더라. 난 예외다. 난 그냥 중년이다. 아니, 난 중년이라는 그 단어 뒤에 숨고 싶다.


'청춘이었을 때는 그 청춘을 깨닫지 못했는데, 왜 늙어감은 이리도 빨리 깨닫고 있는 걸까?', '레깅스를 입은 모습이 스타일리시 하건 안하건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난 마냥 철없는 애처럼 좋아 날뛰었을까?'.

아무래도 아직은 젊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나 보다.


나의 그런 모습옆에 항상 진실과는 거리가 먼 빈말을 날려주는 전문가와 시크하고 냉철한 중딩 아들이 있어서 나의 나이 듦은 충만하다. 아무도 나이가 들면 어떻게 변하는지 가르쳐 주지는 않았지만 그건 아마도 그들도 몰랐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지만 난 나이가 들어서도 나의 표현에 인색하고 싶지 않다.


레깅스 M사이즈를 입는 그날까지, 박쥐와 후굴이 되는 그날까지, 폴더폰이 될 수 있는 그날까지 요가를 멈추고 싶지 않다.


요가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by Choi.




keyword
이전 05화애절한 남자 요가 선생님의 소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