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도 인간관계.
"내일은 떡 잔치 하는 날이니 다들 꼭 나오라고요? 알겠죠?"
그는 당부하듯 재차 언급한다.
떡잔치? 그게 뭐지? 갑자기 무슨 떡 잔치? 스포츠 센터 요가교실에서 떡을 먹는다고? 왜?
다음날도 씩씩하게 걸어 스포츠 센터에 갔다. 문 입구에 귤 두 박스가 놓여 있다. 오늘 뭔가를 하긴 하나보다.
선생님이 지극정성으로 신경쓰는 2명의 회원이 있다. 그 두명중 한 명이 결석하면 우리 선생님은 무척 궁금해한다. 왜 안 나오는지. 어디 갔는지. 그만뒀는지. 유달리 그 두 분한테는 신경을 많이 쓴다. 어쩔 땐 자기 옆자리에 매트 2개를 손수 깔고 그 두 분을 목 빠지게 기다린다.
그 둘은 다름 아닌 선생님과 성별이 같은 '남자' 요가수련생들이다. 한분은 부부 동반으로 연세가 조금 많은 분이고 다른 한분은 체격이 곰돌이 같은데 수영과 요가를 함께 해서 엄마들 사이에서도 꽤 유명한 분이다. 특히 평일 오전에 대부분 젊은 남자들은 당연히 일터로 향한다는 사회적 선입견에 맞선 그 곰돌이 푸우 남성 회원은 특히 주부들이 많이 몰리는 시간대에 요가와 수영을 하고 있었다.
한동안 곰돌이 남성분이 3주, 거의 한 달 정도 사라진 적이 있다. 그때도 우리 요가 선생님은 마치 애인을 기다리듯 그분을 기다렸다. 수영하는 아주머니들한테 "아이~ 거시기 어디 갔나? 왜 안 나오지?"
그럼 아줌마들은 이구동성으로 "요즘 수영장에도 안 보여요~~."라고 답해준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곰돌이 남성이 요가문을 활짝 열고 들어 왔다. 준비운동 자세를 하고 있던 선생님이 너무 반가운 나머지 보자마자 건넨 말이 "아이~ 거기 새해 복 많이 받아요."였고, 우리 아줌마들은 "와~" 환호를 보내며 박수를 날렸다. 보자마자 건넨 선생님의 새해 첫인사에 곰돌이 남성도 요가원사람들 모두 '하하하'거리며 웃었다.
순간 나도 웃음이 나와 참느라 고생했다. 비록 어설프고 어눌한 요가원이지만 이곳에서 나의 첫 요가 시작은 이렇게 따뜻한 분들과 함께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이런 인연으로 내가 요가를 다시 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젊은 시절 식도 역류 현상으로 요가원을 뛰쳐나간 뒤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요가는 없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갑자기 선생님의 구령이 들려온다. " 다리를 뻗어요~~." 항상 하는 스트레칭. 점점 몸에 익어 가고 있다. 요즘 부쩍 요가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선생님이 좀 더 디테일하게 설명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뭔가 아쉽다는 그런 생각이 드는 와중 옆에서 '악' 소리가 난다. 쟁기자세를 하다 움찔한 듯하다. 이전에 그녀는 허리 쪽에 디스크가 있다 했다. 그녀는 나와 나이가 동갑이지만 아이가 대학생이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수업 마칠 때까지 대충 앉아 있었다.
어느덧 요가 마칠 시간이 되었고 때마침 떡이 배달 왔다. 요가원 1호와 2호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더니 떡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호박 백설기 떡이라고 했다. 귤도 나눠 준다. 매트를 길게 옆으로 놓고 빙 둘러앉았다. 나처럼 초보 요기녀들은 멀뚱멀뚱 뭐 하는 건지 궁금했다.
요가원을 오래 다니신 분이 말씀하기를 이곳에 20년째 다니고 있는 1호와 2호 할머니가 새해 인사겸 선생님께 고맙다는 표시로 떡을 맞춰 돌린 거라 했다. 난 가족 같은 분들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토록 오랜 시간 함께 수련을 했으니 이렇게라도 감사 표현을 하고 싶은 두 할머니 쪽으로 눈을 돌렸다. 홀로 고개를 그저 맥없이 끄덕끄덕하고 있었다.
마침 그때 선생님께서 이전에는 이렇게 한 번씩 떡 파티를 하면서 자기소개를 했다고 한다. 나이와 이름 그리고 어디 사는지 까지 다 공개했다고 한다. 한데 요즘은 시대가 변했다면서 그 과정은 안 하는 게 낮겠지? 라며 넌지시 물었다. 나처럼 젊은 사람 몇몇은 동공에 지진이 난 듯 순간 눈알을 마구마구 굴렀다. 행여 한다면 난 탈출해야 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찔했다. 아무리 화기애애하고 분위기 좋은 동네 스포츠 센터 요가원이지만 일어서서 나이와 이름 어디 사는지 까지 굳이 다 말해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뭔지 곰곰이 생각했다. 나이 든 선생님은 옛날 대학교 신입 MT 같은 분위기의 떡 잔치를 바란 듯했다. 하지만 다들 떡을 대충 먹고 약간의 담소를 나눈 뒤 일어났다. 다음시간 수업도 있었고 난 치과 예약이 있었다.
1호와 2호 할머니께서 나눠주신 떡은 감사히 잘 받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리고 며칠뒤 구정이라며 돈을 거두기 시작했다. 선생님께 챙겨 드리는 개별 돈이라고 했다. 이건 당최 또 무슨 말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이제 겨우 3달밖에 안된 나는 그냥 돈을 드렸다. 매일 반이고 선생님을 매일 만나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스포츠 센터에서는 불법이라며 스승의 날이나, 추석, 명절에 선물이나 돈을 따로 챙기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공지를 붙여 놓았다.
그랬다. 이곳은 20년 동안 요가를 하신 할머니 1호와 2호가 주축이 되어 60,70년대 스타일의 스승님 대우법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요가 선생님 역시 연세가 꽤 많은 분이다 보니 그것을 당연히 받아들인 것 같다. 나쁘다거나 불법 이라거나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 나이 드신 두 분이 고마움을 표시하는 방법인 것 같다는 말이 하고 싶은 거다. 동시에 우리도 함께 동참한 거라 보면 될 것 같다. 그 두 분은 정말 남자요가 선생님을 스승님처럼 받들고 모셨다. 언제 적 방식인지 기억이 가물 가물 한다. 오래전 옛날에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라는 노래처럼 그 두 분은 깎듯이 요가 선생님을 모셨다. 그저 1호와 2호 할머니를 보며 세월을 보았다. 결코 이길수도 잡을 수도 없는 '시간'이란 녀석 앞에 1호와 2호 그리고 요가선생님이 있었다.
한 곳을 20년 넘게 다닌 할머니 1호와 2호도 대단하지만 한 스포츠 센터를 20년 넘게 지켜오신 선생님 역시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난 이 토록 끈끈하고 가족 같은 화기 애애한 분위기 속의 요가원에서 무언가 자꾸 부족함을 느끼고 이젠 내가 떠날 때가 온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by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