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모양에도 우쭐합니다.
센터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곡소리가 들린다. 호호 아주머니 옆과 흰 백발 단발머리 아주머니 사이에 주로 앉는다.
메트에 소독제를 '칙칙' 뿌린다. 메트를 '주르륵' 편다. 호호 아주머니는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뿜어낸다. 호호 아주머니의 밝은 에너지와 기운이 나에게 전달되는 것 같다.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자기야, 나 여기 허벅지가 너무 아파서 죽을 뻔했어. 우리 남편이 명동에 놀러 가자고 했는데 갈 수도 없었어. 동네 근처 나가서 고기 구워 먹고 왔어. 그리고 엉덩이 접히는 부분은 벌겋게 까졌어. 자기 안 아파?"
"저.. 어깨하고 목부분 쪽이 아픈데 원래 거북목에 등이 굽어서.. 그냥 견딜 만은 해요. 아니 근데 어디가 까졌어요?"
"아니, 그 왜~~ 꼬리뼈 밑에 엉덩이 눌리는 곳 있잖아~ 왜 거기 그곳~."
"아...!!!"
"선생님께 물어봤더니 골반이 틀어져서 등 굴리기 할 때 그곳이 눌려서 그렇다네?"
"자기는 어디 까지거나 그런 곳은 없어?"
"아.. 네.."
"다행이다~ 아우, 그냥 아파 죽는 줄 알았어"
당연히 호호 아주머니뿐만 아니라 여러 나이 드신 분들이 아우성이다. 옆에 할머니 1호와 2호는 당당하게 "난 그래서 안 하고 앉아 있었지. 하하하하하"
오랜 시간 동안 선생님과 함께한 두 어르신은 수업을 간파한 노련미를 발휘한다. 승자!!! 두 분은 어느 정도 스스로의 몸을 통제하는 법을 알고 있다. 센터 요가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순간이다.
무엇을 했냐면?
등 굴리기!!! 쟁기자세!!
체육관 요가 센터는 춥다. 검도 연습장과 겹용이다. 딱딱한 바닥이 더 딱딱하게 느껴진다. 그날 콧수염을 점점 더 길게 기르고 있는 요가 선생님은 마치 오늘은 '골반 교정, 굽은 등 교정, 거북목 교정'을 작정하고 결심한 듯 보인다. 메트를 옆으로 밀어내고 그 딱딱한 바닥에서 등 구르기와 쟁기자세를 번갈아 시킨다. 마구 시킨다. 그래야 어디가 아픈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그 아픈 부위를 정확히 판별할 수 있다고 그는 자신 있게 말한다.
맨 앞줄에 나란히 앉은 우리 열정 요가녀들은 선생님 말을 항상 경청하는 모범생들로써 두 이를 악 물고 차갑고 딱딱한 바닥에 우리 등을 냅다 던진다. 나 역시 너무 아파 두 눈을 질끈 감고 아랫배에 힘을 준 뒤 두 다리 아래 손을 단단히 잡고 등을 굴린다. 목뒤와 어깨 쪽이 벌겋다. 골반이 교정되고 어깨와 목이 펴진다는 믿음으로 대차게 굴린다. (근데 정말 교정되는 거 맞는지??? 어쩔 땐 너무 답답하다.)
요가를 하면서 아픈 통증을 자주 마주한다. 어느 순간부터 그 통증과 마음의 통증을 비교하기 시작한다. 그럼 나의 깊은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육체적 통증? 이거 한다고 죽지 않아. 버텨봐.' 견딜 수 있는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나를 본다. 내 쉴 때 숨소리가 무거워지면서 두 눈을 질끈 감는다. 그리고 배웠다. 어디까지 몰아붙여야 나 스스로 감당이 되는지, 어떤 아픔과 통증까지 나 자신이 견딜 수 있는지. 다음날 요가수업 때 지장이 있는지 없는지. 최근에 뭔가 잘못되었는지 오른쪽 엉치뼈 고관절 통증이 심하다. 잘 모르겠다. 이럴 땐 정말 전문 요가 센터를 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기 시작한다.
매일 요가를 가면서 '오늘도 나를 밖으로 끌어냈다'는 만족감은 어느 순간 사라졌고 '오늘 이만큼의 통증을 견뎠구나'로 이어졌다. 점점 더 벌어지는 다리가 고맙고 아직 늦지 않음을 알려주는 이 '몸 뚱아리'에게 감사하다고 할까?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이 멀쩡한 몸, 떠도는 사고, 맘대로 널뛰는 마음. 이 것들이 '나'란 인간을 이루고 있는 부분인데, 사지가 멀쩡해서 다행이고, 4차원적인 사고를 자주 하지만 이 역시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맘대로 널뛰는 마음을 그나마 쥐똥만큼이라도 알아차릴 수 있어 안심이 되는 순간 난 오늘도 살아갈 이유를 충분히 찾은 듯하다.
선생님은 떠들썩한 교실 소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두 다리 벌려요. 몸 푸는 동작 들어갑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
우리는 후다닥 정렬을 하고 오늘도 어쭙잖은 그의 구령과 왼발 오른발 설명을 들으며 다리를 접었다, 늘렸다, 좌우로 움직였다 한다. 그는 오늘 유난히 다리와 허리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분명 뭔가를 할 것 같은 낌 세다. 정면을 보고 한 다리는 90도로 접고 한 다리는 뒤로 펴라는데 다시 앞 뒤 옆에서 곡소리가 들린다. 나 역시 골반쪽 당김이 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두 눈을 질끈 감고 통증을 버텨본다.
갑자기 편 다리 발목을 손으로 잡아 올린 뒤 팔 접히는 부분에 끼우란다. 잉? 몸이 옆으로 굽혀진다. 팔안쪽에 끼운 뒤 두 손을 머리뒤에 깍지를 하고 천장을 보란다. 천장이 잘 안 보인다. 식은땀이 줄줄 난다. 천장이 반만 보인다. 체육관에 밝은 불 때문에 눈이 너무 부시다.
( 내가 만든 비둘기는 이런 고급진 비둘기가 아니에요. 저기 팔과 허리가 굽힌 다리 쪽으로 더 숙여져 있고 천장은 반만 보여요. 그야말로 어정 쩡쩡한 그런 자세인데 저 무릎이 팔 안쪽에 끼우는 게 힘든가 봐요. 그걸 제가 그냥 끼웠을 뿐입니다. 혹시 오해할 것 같아 이리 주절주절 부연 설명을 또 하고 있네요. 저도 저렇게 고급지고 멋진 동작 하고 싶네요.)
갑자기 큰 소리로 선생님이 흥분한 목소리로
"어어어어 어~~ 저기 저기 봐, 저기 봐, 되네. 어허이. 여~러개가 되네~~ 어 허이~"
요가 교실이 다시 웃음 바다가 된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개!!! 하하하하
나를 두고 한 말이다. 화들짝 놀래 팔 사이에 낀 다리를 풀고 멍한 표정으로 "네???"
선생님이 " 아이 그 왜 풀어~~. 다시 해봐. 빨리 해봐."
얼떨결에 난 다시 다리를 막 끼우고 허리를 굽히고 비툴어진 비둘기 모양새를 만든다.
난 호호 아주머니와 백발 아주머니 사이에서 "한 개라도 되는 게 있어 다행이야"에 이어 "여러 개가 되네~"로 승급한다. 나이 드신 분들 사이에서 요가를 하다 보니 별거 아니고 그야말로 창피한 동작임에도 불구하고 다리 하나가 팔 안쪽에 걸린다는 이유로 난 '여러 개가 되네'로 칭찬까지 받아 또 헤벌레 웃고 있다.
선생님이 무척 뿌듯해한다. 난 마치 무언가 엄청 대단한 뭔가를 한 듯 입이 귀에 걸린다. 이런 게 요가 매력인 것 같은 느낌을 어쭙잖게 느끼고 있다. 성취감. 해냈다는 자신감. 한 가지 모양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 순간의 몰입. 사실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재 내가 느끼는 '나의 요가'는 이런 모습과 의미를 지닌다.
1월 한 달 역시 매일 요가는 성공리에 마무리된다.
2월부터는 다른 변화가 시작된다.
한발 성큼 크게 뻗어 내디뎠다.
무식함.
용감함.
한번 또 해보지.라는 가벼움으로 내디뎠다.
기대되는 2월이다.
살면서 '내일이 기대되는 오늘'을 내가 몇번이나 느껴본 적이 있던가?
또다시 감성에 젖은 Choi는 다시 한번 울컥한다.
여성스럽지 못한 Choi는 울컥하는 감성조차 어색해 교양 없게 혼잣말을 툭 내뱉는다.
'에이 씨!!,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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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