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로하'
블랙키를 저녁에 챙겨 놓는 것은 물론이고, 복습까지 했다.
코드를 좀 외워야 하지 않냐는 선생님의 질책이 아른거려 마음을 다잡아 블랙키를 꺼내 들었다.
'네모의 꿈'은 셔플로 쳐야 하고, 이어서 배운 '아로하'는 퍼커시브를 접목해서 쳐야 맛이 난다.
퍼커시브는 반비트를 무음으로, 기타의 줄과 바디를 손가락으로 치면 된다. 마치 드럼을 두드리듯.
스트로크만, 혹은 아르페지오 주법만 사용하는 것보다 소리가 훨씬 재밌고, 리드미컬하다.
우쿨렐레를 배우면서 바라는 게 하나 더 생겼다.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헛된 바람이라는 것도 곧 알게 됐다. 아주 사소하지만, 매우 감정적인 바람, 선생님이 내게 좀 부드럽게 대해 줬으면 하는 거다. 글쎄 이건 단순히 공손함, 친절함과는 다르다. 뭐라고 해야 할까? 선생님은 절대 누구에게든 지지 않으려는 방어적인 자세를 보인다. 그 모습은 소통과정에서 내게 너그럽지 않다는 인상을 줬다. 나를 너그럽게 대해줬으면 하는 게 바람이다.
다른 수강생들도 내 의견에 일부 공감을 하기도 했다. 선생님의 태도 때문에 그만둔 회원도 있었다고 하니, 속앓이 했던 내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나의 바람이자 극복의 대상인 선생님에게 나는 앞으로 관두거나, 참거나, 맞짱을 뜨거나, 무시하거나 혹은 아무렇지 않기 중에서 내 모양에 맞는 것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은 비장하게 준비했다. 복습을 하고 와서인지 자신감도 살짝 상승했다.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든 복수하리라 모진 말을 품고 갔는데, 엇가는 기대와 달리 선생님은 오늘따라 나긋나긋하다.
게다가 나는 복습의 효과를 제대로 발휘했고, 그 바람에 내가 칭찬을 받고 말았다. 나는 그만 기분이 좋아져 버렸다. 품고 갔던 모진 말이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내 입꼬리 마저 올라갔다.
아이 씨! 선생님은 나보다 한 두 수는 위인 게 분명하다.
진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약이 올랐다.
나는 강습이 끝나면 다음 강습을 받는 날까지 거의 일주일을 선생님의 태도를 곱씹으며 투덜거렸다.
언제 그만둬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할 사람 없는데, 선생님 탓을 해가며 그만두지 못하는 내 마음이 참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나의 모순된 행동의 이유를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왜 배워야 하는지 좌표가 없어서이다.
우쿨렐레를 왜 이 나이에 배우고 있는지 목표가 불분명해 조그마한 갈등에도 이리저리 휘둘리며 마음속에 전쟁을 겪는다. 그렇다면 왜 뚜렷한 목표도, 계획도 고민하지 않고 엄한 사람을 끌어들여 나를 흔드는가?
그것은 아마도, 적당히 발 하나만 담그고 있다가 여차하면 도망가려는 포석이겠다. 어디에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비겁한 심리 아닐까?
몰라서 못하는 게 더 나쁠까? 알면서 안 하는 게 더 나쁠까?
우쿨렐레가 나를 성찰하게 하는구나.
아로하나 들어야겠다.
원곡 쿨 버전으로 한 번, 그리고 슬생 조정석 목소리로 달콤하게 한 번.
모두 잊고 그냥 하와이 해변을 상상하며 마음수련을 해야겠다.
대문그림: 'Aloha'라고 쓰인 모래사장을 프리다 풍으로 그린 챗GPT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