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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ythm is gonna get you!

리듬을 잡아 잡솨~

by 달게

"임영웅이요? 저는 임영웅 노래 하나도 모르는데요."

"몰라도 칠 수 있어요.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하고 똑같아요. 리듬 그대로 코드만 달라요."

리듬? 오늘은 리듬인가?


"이 곡은 몇 비트로 쳐야 하죠?"

몇 비트? 좀 점에 리듬이라고 했는데, 비트를 묻는다.

떼가 쏙 비트도 아니고, 박자를 말하는 것인가?

나는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4박자요?"


"박자 말고요. 한 박자에 몇 비트로 쳐야 할까요?"

역시 자신 없을 때는 그냥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낫다.

그런데, 선생님은 내게 대답할 기회를 너무 주고 있다. 그러지 말고, 그냥 알려주면 좋을 텐데 말이다.

나는 답을 생각해 내는 척하며 질문을 되풀이했다. 혼잣말처럼 그러나 선생님 귀에 들리게, "한 박자에 몇 비트?"

그리고 하나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전달했지만, 내 표정을 받아주지 않는다.

내 입에서 기어코 이 말을 하게 한다.

"모르겠는데요."


음악은 기호의 예술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소리를 기호로 표현한 것부터가 대단한 발명이다. 전 지구적 발명 중 제일로 쳐주고 싶다. 딱딱한 기호는 약속이고, 약속을 철저하게 지킨다면, 세상의 딱딱함을 모두 녹여줄 선율이 만들어지니, 대단한 발명을 넘어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그 기적을 내 손으로 만들어보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는 내게 선생님은 참 가혹하시다.

선생님 질문에 작아지고 더 작아져, 내 작디작은 블랙키마저 콘트라베이스처럼 거대하게 느껴진다.


선생님은 나를 어디서부터 가르쳐야 하나 막막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생각이 났는지, 사과를 반으로 쪼개면 몇 개가 되는지를 물었다.

나는 너무 쉬운 비유를 드는 것이 기분이 상했지만, '나는 학생이다'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답했다.

"두 개요?"

선생님 표정이 일순간 굳어졌다. 아! 대답하지 말걸. 이마저도 틀리다니.

체온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모든 혈액이 얼굴에 집중됐는지 활활 타올랐다. 안 그래도 열감이 시도 때도 없이 치솟아 조절이 안 되는 시기를 지나고 있는데, 지금, 여기서, 이러면 안 되는데.

나 못지않게 선생님 머리에도 불이 난 것 같았다.

"멜로디, 화음, 그리고 박자라고 잘 못 알고 있는데, 리듬이죠."

음악의 3요소 꺼내 와 이론을 펼쳤다.


리듬이랬다가 비트랬다가, 용어도 헷갈리고, 그래서 그게 뭐? 따져 묻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처지가 아니다.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내가 제일 원망스럽고 창피했다. 이런 건 어려서 배웠어야 한다는 말도 위로가 안 된다.


8분의 12박 노래는 1박자에 3개 비트를, 4번 쳐야 한다.

4박자 안에 12개 비트를 쳐야 하니 3개씩 쪼개서 4번 친다.

단순한 나눗셈이고, 곱셈이다. 글로 써보니 쉬운데, 오른손이 432, 123, 432, 123.... 비트를 도대체 몇 개를 쳤는지 세다가 결국 박자를 놓친다.

한 박자를 몇 개의 비트로 나눠서 연주하는지를 알아야 스트로크로 다운업다운업을 할지, 아르페이지오로 4321을 한 번 튕길지 두 번 튕길지를 정하는 것이고, 곡의 빠르기에 따라, 곡의 분위기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게 강약약, 혹은 약약강을, 리듬에 맡기고 리듬을 잡아먹으라는 얘기다.


모두의 수업 시간이 되어야 하는데, 오늘은 미안하게도 내가 선생님을 독차지해 버렸다.

10분을 남기고 나는 적당히 알아듣는 척했다. 안 그러면 나머지 공부를 하거나, 심하면 선생님하고 내가 싸웠을지도 모른다.


8분의 12박자의 이 노래는 임영웅의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이다.

레슨 시간에 느꼈던 모멸감? 조금 거창하지만 모멸감이라고 하자. 모멸감을 자극제 삼아 복습했다.

432, 123, 432, 123....

노래 가사 중에 내 마음을 알아 주는 대목이 있다.

'왜 이리 눈물이 나요. 왜 이리 눈물이 나요.'


Rhythm is gonna get you: 글로리아 에스테판 노래 제목

사진: 글로리아 에스테판과 마이애미 사운드머신 2003년 공연 장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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