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그 한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일주일이 흘렀다.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는 Bb을 외우지 못한 채, '너의 의미'를 찾아야 했다.
점심시간, 일주일에 한 번, 대략 50분이 블랙키를 마음껏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한 달에 고작 4시간에서 5시간을 투자해, 그럴싸하게 연주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층간소음'이라는 이유를 들어 연습도 안 하는데, 언제 그만둬도 아쉬울 것 없다는 마음도 있다. 이러니 뭐 되겠나 싶다.
우쿨렐레를 배우면서 글을 연재하기로 한 이유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글 소재가 좋았고, 또 하나는 배우는 과정을 공개해서 나태해지는 나를 독려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금연을 계획하고 주변에 알리듯이 말이다. 좋자고 시작해서 나중에 의무감에 부담이 되더라도, 그렇게 하면 결과를 보겠지 싶었다.
이제 한 달 지났지만, 두 가지 다 어렵다. 글 소재가 좋다고 글이 잘 써지는 것도 아니었고, 만인 앞에 공표하면 의무감에 어떻게 해서든 해낼 거라는 막연한 계획은 허구일 뿐이었다. 매주 수요일 연재하기로 한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연습은 앞서 말한 층간소음을 핑계로 포기했다.
어려운 코드가 하나씩 늘어나는 것도 부담인데, 이제 줄의 계이름을 외어야 하고, 발로는 쿵작쿵작 혹은 쿵작작 박자를 맞추고, 오른손은 다운업다운업 리듬을 맞춰야 한다.
와! 음악하는 사람들, 악기 연주하는 사람들 모두 천재 인정!
여기에 한가지 추가하자면, 선생님까지 맞춰야 한다.
선생님은 내게 친절하지 않다. 질문을 못 하게 하고, 알려주는 데로 따라 하라며 윽박지른다.
전적으로 나의 주관적이고 편협한 평가다.
지인들에게 선생님에 대해 말하면 대뜸 선생님이 잘생겼다면 이런 불만이 없을 거란 농담을 한다.
그럼, 반대로 내가 잘 생겼다면 내게 친절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성립한다. 농담이라지만, 갑자기 기분이 더 나빠진다. 사람 마음이 인지상정이라는데, 이놈에 외모지상주의!
나는 사실 답을 알고 있다.
원인은 학생인 나에게 있다.
학생이 되는 것이 쉽지 않다.
오십이 넘으니 나를 가르치는 사람이 없다. 친정엄마도 이제 나를 못 가르친다.
가르칠 사람이 없다는 것은 다 배웠으니 하산하라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살아가고 있는 인생 선배로부터, 자식으로부터, 책에서, 인생은 끊임없이 배우는 과정인 것 같다.
왜냐하면, 내일은 내가 절대 살아보지 않은 날이고, 오늘은 늘 처음 맞는 날이니까.
내가 배우기로 마음먹었다면, 어린아이도 내게 스승이 된다.
하물며 마음먹고 우쿨렐레를 배우기로 해놓고는 다 안다는 태도를 하고 있으니, 선생님은 내가 얼마나 불편할까? 40년 전 중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클래식기타를 배웠던 적이 있어 우쿨렐레가 낯설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밑천 삼아 내가 좀 시건방을 떨었는지도 모르겠다. 악보도 잘 못 보면서 말이다.
너의 의미는?
난 학생이고, 넌 선생님이야.
수업에 임하기 전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나는 학생이다. 나는 학생이다. 나는 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