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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서림 May 24. 2023

아픔을 대하는 자세

 『사람은 왜 아플까?』

‘아픔’에 질문하기

  안 아프고 살 수는 없을까?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나’의 아픔은 ‘타인’에게 공유되고 덜어질 수 있을까? 등등의 물음이 『사람은 왜 아플까?』를 만나게 했다. 그리고 이 책으로 ‘아픔’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

  의식해 본 적은 없지만 아프지 않은 건강한 상태의 몸은 그 자체로 완벽하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다. ‘완전한 설계도에서는 생명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환경은 계속 변하는데 내 몸이 빈틈없이 짜여 있으면 적응하지 못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이다. ‘생명은 고귀한 것’이라는 인식은 은연중에 ‘생명은 완벽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허술함과 닿아 있다니! 게다가 지금 우리의 몸은 구석기 시대에 수렵·채집을 하던 인류의 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삶의 양식이 이렇게나 변했는데 몸은 그대로라면 아픈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아픔’은 피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생명은 불완전한 것이고, 아픔은 태어남과 함께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한층 여유가 생겼다. 누구든, 언제든 아플 수 있다. 그런데도 그것을 쫓아내는 데에만 급급해서는 진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나는 왜 아픈가? 이 아픔과 어떻게 만나야 하나? 이렇게 질문하기 시작해야 비로소 아픔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되는 건 아닐까?     


한 방의 유혹

  병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기술도 발달한 오늘, 병원 신세 한 번 지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병원에서 이런저런 치료와 수술을 받았는데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적어도 지금이라면 비염과 하지 정맥류 수술은 안 할 것 같다. 꾸준히 약을 먹고 병원을 들락거려도 차도가 없자 이비인후과 의사는 레이저 수술을 권했다. 하지 정맥류 진단을 내린 대학 병원 의사도 자세한 설명 없이 다짜고짜 수술이 가능한 날짜를 물었다. 혈관이 튀어나온 정도가 심하지 않았고 일상생활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술을 당연시하는 의사의 태도와 한 번 늘어난 혈관이 다시 수축되지는 않으리라는 판단에 수술을 받았다. 의사의 말대로 수술은 간단했으나 효과는 미미했고 부작용이 남았다. 레이저 수술을 받은 쪽의 코가 약해져 관리가 필요해졌고, 하지 정맥류 증상은 전혀 완화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따금 수술 부위의 통증을 추가로 느끼게 됐다. 수술을 하면 한 방에 나아질 거라는 기대는 망상이었다.

  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모르는 나와 달리 전문가인 의사는 내 몸의 문제를 잘 알고 있으니 믿고 맡길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의사는 그런 병을 얻게 된 내 삶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과 의사를 그토록 신뢰했다는 것이 놀랍다. 책에서는 질병의 원인으로 병원체를 문제 삼는 대신 자신의 삶이 반영된 ‘배치’를 살펴보라고 한다. 병원체만을 탓하기보다 병원체가 작동하게 되는 삶의 배치를 보는 것이 아픔을 통과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한동안 나를 괴롭혔던 비염은 그저 계절의 영향이었던 것 같다. 또 평소에도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않은데 하루에 5~6시간씩 서서 일하니 하지 정맥류가 생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 삶이 어떤 배치를 가지고 있는지 주의해서 살폈더라면 의사의 말만 믿고 몸을 맡겼다가 부작용만 떠안는 일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려움이 더한 고통

  아플 때 느끼는 두려움이 의사나 약을 의지하게 하는 것도 같다. 통증을 느끼면 나도 모르게 두려운 마음이 이는데 그러면 무엇에라도 기대고 싶어진다. ‘이 정도 통증이면 오늘 할 일을 못할 수도 있겠는데? 얼마나 참아야 괜찮아지려나? 진통제를 먹으면 바로 효과가 나타날까?’ 나는 아플 때 이런 생각을 하다 진통제를 삼키고, 약을 먹었으니 이제 괜찮아질 거라 스스로를 위로하곤 한다. 할리우드의 어느 배우는 자신에게 유방암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유방 절제 수술을 받았다는데 얼마나 두려웠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런데 ‘자신은 도저히 고통을 통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느낌, 자신에게는 고통을 다룰 능력이 없다는 스스로에 대한 불신, 그래서 고통 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서 있을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불안’이 두려움을 낳는다고 한다. 과연 그런 것 같다. 몸의 어느 부위든 통증에 사로잡히는 순간 자신감은 사라지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것 같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다. 그 두려움에 압도되어 실제의 고통에 상상의 고통까지 더해 왔는지 모른다.

  결핵으로 30대에 세상을 떠난 일본의 시인 마사오카 시키는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예쁜 것도 예쁜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고통이 극심해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는데 꼼짝 못하고 누워 지내면서도 유리 항아리에 든 금붕어를 보며 아름다움을 느낀 것이다. 고통은 고통대로 아름다움은 아름다움대로 느끼는 그의 능력이 숨을 거두기 이틀 전까지도 일기를 쓰게 했나 싶다. 인간을 한계로 몰아넣는 극한 고통을 겪는 중에도 두려움을 덜어내면 그 고통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되나 보다. 아픈 것은 살면서 겪는 하나의 상태일 뿐이다. 스스로 허락하지 않는 한 아픔이 삶 전체를 삼켜버리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니 아픈 것은 아픈 것이고, 예쁜 것도 예쁜 것이다.     


시그널 해석하기

  이제 아픔은 몸이 보내는 신호라는 것을 알겠다. 지금 내 삶의 어디가 어떻게 문제인지 드러내주는, 달갑지는 않아도 고마운 시그널. 그 신호는 아직 여유가 있는 노란불일 수도 있고 즉각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빨간불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색을 보기도 전에 신호가 왔다는 것, 건강한 정상 상태를 벗어났다는 것에 꽂혀 쉽게 평정심을 잃고 만다. 병이 든 비정상 상태를 정상으로 회복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기도 하는데 그러는 동안 조급함은 커진다. 그런 불안한 마음으로 좋은 의사, 훌륭한 시설의 병원, 효과가 빠른 약을 찾아다니기 바쁘다. 어디가 아프다고 할 때는 이런 패턴을 반복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병을 치료하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다급한 마음에 무턱대고 서두르면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해 일을 그르치기 쉽다.

  급할수록 돌아가랬다고 심호흡을 하고 내가 받은 시그널을 해석하려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일상의 어떤 습관이, 평소에 써 온 어떤 마음이, 나의 어떤 조건들이 이런 아픔을 가져왔는지 자신의 눈으로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픔이 주는 신호를 오해하지 않고 제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전문가만 믿고 따르려는 태도에도 변화가 생길 듯하다. 내 몸에서 벌어지는 일인 만큼 스스로 개입해 볼 여지를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아프다. 하지만 모두 다르게 아프다. 나는 왜 이렇게 아프며 이 아픔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는지 해석하는 눈을 갖기 위해 몸과 마음 그리고 삶의 전반을 돌아보는 공부를 해 나가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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