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인 친구들과 대화하면 의도하지 않아도 많은 부분을 자연히 공감한다. 여러 공통점 중에 전업주부인 것까지 더해져서 더 잘 통하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만 세 살까지오롯이 양육한 경험은 우리끼리의 자부심이다.
타인을 위해 헌신봉사한 것도 아니고, 전적으로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다보니 그렇게 된 거지만. 어쨌든, 24시간씩 36개월을 밀착 육아한 경험치는 사회생활 3년이나 군복무 3년과 비등하게 대우받아야할 만큼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자부심이 그릇된 자신감으로 변질되어 일으키는 마음의 소리가 있다.
'일한다고 저러면 안 되지.'
속사정을 알 수 없는 타인보다, 속사정을 조금 아는 지인을 향해 날카로운 잣대가 드리워졌다. 전적으로 육아를 선택한 나는, 극단에 있는 다른 선택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 기준과 경험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기에, 너그럽지 못한 마음은 자책으로, 다시 판단으로 이어졌다.
"일도 안 하면서 왜 그랬대."
같은 전업주부로서 듣기에 거북한 말이었다. 가정과 가족 구성원에게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의 탓을 '일도 안 하는 그 집 엄마'에게 돌리고 있었다. 전업주부 입장이 되어보지 않은 사람의 말이었다면 모르는 소리 한다며 무시하기 쉬웠을 텐데, 전업주부이면서 전업주부를 몰아세운 한마디는 오래도록 거슬렸다.
“일도 안 하면서 왜 그랬대.” 하는 핀잔과 “일한다고 저러면 안 되지.” 하는 잣대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 남보다 낫다고 여기는 옹졸한 본성이 짙게 깔려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결국 또 그소리야...싶지만, 그렇다. 결국 자존감이다. 사실 <일도 안 하면서 왜 그랬대>의 결론을 어떻게 맺어야할지 굉장히 고민스러웠다. 수학문제를 정답지 보면서 가르치는 격으로, 자존감이라는 답을 내긴 했지만 스스로도 뭔가 명쾌한 구석이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