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똥기저귀 차던 시절은 남편과의 관계가 가장 깊이 곪아가던 때였다. 상대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면서도 죄책감을 못느낄 정도로 마음이 굳어있었다. 남편은 어디서 본 슈퍼워킹맘을 떠올리며 대놓고 부러워했다. 다들 그렇게 산다며 나를 다그치던 말투와 표정이 어렴풋이 그려진다.
이소라의노래 가사처럼 추억은 다르게 적히기 마련이니, 남편에게 내 기억은 편협하게 재편집된 가짜뉴스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사실 여부에 플러스 마이너스의 차이는 있겠으나, 그시절 나에게 각인된 '남편의 태도'는 너무나 실망스러웠고, 그 실망감을 추스르느라 오래도록 애써야 했다.
현실적으로 불합리한 바람과 요구에 정정당당히 대꾸할힘이...................그때는 왜 없었을까? 전업주부를 띄엄띄엄 보는 시선으로부터 선을 긋지 못하고, 미약한 자부심으로 스스로를 지탱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돈 버는 동시에 육아도 잘하는 완벽한 워킹맘이 당연하면 당신이 몸소 그렇게 살아봐.
육퇴 없는 노동 현장에서 아이랑 재밌게 놀으라고? 당신도 회사에서 재밌게 놀아~
모노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써놓은 대사를 혼자 읊으며 격정적으로 감정을 해소한 뒤엔, 나도 일하고야 말겠다며 우격다짐했다. 그것이 짓밟힌 자존심을 일으킬 방도라도 되는 듯. 나는 더 중요한 가치를 찾는 대신 부질없는 감정에 마구 휘둘렸다.
전UP주부가 할 일은 무엇보다 '나다움'을 유지하고 가꾸기 위해 끊임없이 힘을 쏟는 일이 아닐까. 다른 무엇으로 수식되지 않아서, 정체성이 모호해질 수밖에 없기에 더더욱, 나에게 집중하고 나만의 세계를 가꾸는 일이 절실한 것 같다. 내 일과 내 생활을 어떻게 명명할지 자문하며 내게 맞춤한 수식어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어제의 전업주부는 오늘의 전UP주부로, 또 내일의 다른 무엇으로 비상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