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20년> (오소희)에서 20년이 의미하는 바를 곱씹어본다. 처음 엄마가 되어 주로 엄마로 살아가는 시간, 자녀가 성인이 되어독립하기까지의 시간이다.
수퍼의 생애진로무지개도 떠올려본다. '사람은 동시에 여러 역할을 함께 수행하며, 발달단계마다 다른 역할에 비해 중요한 역할이 있다'는 이론이다.
엄마로 살아온 12년을 정의하는 데 수퍼의 이론이 큰 위안이 됐다. 무엇 하나 이루어낸 게 없어 보이지만,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단 하나의 역할에는 더없이 충실했으니 말이다.
앞으로 더 살아갈 8년을 궁리하는 데 오소희 작가의 책이 큰 격려가 됐다. 엄마의 세계를 잘 가꾸는 것이 곧, 자녀와 서로 존중하며 동행하는 방법이라니 말이다.
유명한 분들의 이론에 영향을 잔뜩 받아 내맘대로 구분해 봤다. '엄마기'는 '임신출산기-육아기-육꿈기'로 나뉜다는 썰. 내 경우,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그러니까 코로나 사태와 함께 육꿈기에 진입했다. 나만의 세계를 가꿔가기 시작한 게 불과 몇 년이 안 된 셈이다. 한편으로는, 전업주부에서 전UP주부로 변모하는 데 몇 년이나 걸린 셈이다.
나만의 세계, 나를 돌보는 시간, 나를 위한 소비, 나의 꿈, 바람.. 그런 것들을 놓은지 너무 오래돼서 다시 추스르는 데 한참 걸렸고, 익숙하지 않은 것에 적응하려는 몸부림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나'와 '엄마' 두 역할을 어떻게 조화롭게 이끌어갈지 종종 혼란스럽다. 나를 우선에 두자니 아이를 방목하는 것 같고, 아이를 챙기자니 나를 성장시킬 여력이 달리는 게 현실이다.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좌충우돌 지나가는 중이다.
육아에 힘이 덜 들어가고 여유 시간과 에너지를 나에게 쓸 수 있게 되면서, 소소하게 도전하고 자잘하게 성취하며 든든하게 자신감을 쌓아왔다. 그 자신감을 디딤돌 삼아 이렇게 '원고쓰기 생초보'를 자처하며 처음으로 책 한 권 분량의 글쓰기에 도전하게 됐다. 나의 이야기가 소통의 연결고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설레다가도, '이 글이 과연 돈을 내고 사서 읽을 가치가 있는가, 누군가의 책장에 한시절 꽂혀있을 자격이 있는가.' 냉정한 검열관의 목소리에 금세 풀이 죽곤 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UP시키고 '다 쓰자'의 초심을 다잡기 위해, 그럴듯한 논리를 하나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