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란, 스스로 업을 일으키는 사람이라고 했다. '기업가정신'은 한 기업 또는 전 지구적인 혁신을 이끌기도 하지만, 주변의 작은 변화를 만드는 힘도 될 수 있었다. 걷기 불편한 어르신들이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릴 때 앉으실 수 있도록, 간이의자 아이디어를 낸 경찰관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바닥에 책을 펴고 공부하는 아프리카 학생들의 불편을 보고, 책상이자 가방으로 쓸 수 있는 제품의 설계 도면을 만들어 기부했다는 대학생 이야기엔 소름이 돋았다.
그동안 취업만을 염두에 뒀던 시간을 찬찬히 돌아봤다. 별다른 능력도 경력도 없기에 내가 지원할 수 있는 분야는 말단 사무직 뿐이었는데, 그마저도 나이는 큰 걸림돌이었다. 기댈 구석을 찾아 자격증을 땄지만 그것이 취업을 보장해주지도 않았고, 어렵싸리 취업한들 9to6의 경직된 근무환경은 생각만 해도 답답했다. '닥치면 다 하는 거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절박하지 않아서 그래.'
사람들이 할 법한 이야기를 나도 나에게 했다. 경직된 조직 문화에 적응하기 싫은 건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고, 월-금 정시 출퇴근이 답답해서 싫은 건 베짱이같은 마음인가 의심했다. 주부력은 만렙이나 생활력은 쪼렙인, 무능력에 대한 자각은 무기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티끌만 한 관심으로 시작한 활동들은 숙면하던 세포를 깨워주고, 주눅 든 내면이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도록 해주었다. 작은 성취 경험이 자신감을 키우면서 욕구를 바로 볼 수 있을 만큼 단단해졌다.
- 나는 경직된 조직 문화를 싫어한다.
- 나는 일하는 시간을 자율적으로 관리하고 싶다.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이제야 비로소, 순순히 알아지는 것을 순전히 받아들이게 됐다. '문제'로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현상' 자체만을 보기로 작정하니 심플해졌다.
40대에 무언가를 다시 시작한다면, 그것은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이어야 한다.
2,30대의 나처럼 상황에 등떠밀려 곧 후회할 선택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굳어졌다. 나는 내적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고, 그것은 내 예상보다 훨씬 큰 에너지를 뿜는다는 것을 확실히 경험했다. 나는 나를 믿기로 했다.
‘취업’이라는 낡은 단어를 지우고, 해답란에 ‘기업’을 써넣었다. 경제력 없고 경쟁력만 추구하는 절박한 인생보다, 가치를 세우고 성장 발전하여 나눌 게 있는 인생을 경영하고 싶다.
인생을 잘 경영하고 싶은데, 사실 구체적인 방법은 모르겠다. 그저 머물지 말고 조금씩 내디뎌보자는 심정이다. 그동안의 자잘한 성취들이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했듯, 지금의 소소한 걸음이 나를 또 어딘가로 데려가지 않겠나.
'앞선 경험자'와 가까이 하면서 배움과 영감을 얻고, 언젠가 나도 그들처럼 열매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잘 짜여진 각본처럼 인생 전체를 멋지게 짜고 싶지만, 허무맹랑한 욕심일랑 내려놓고 바로 오늘, 다음달, 내년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차근차근 그려보면서 나아가려 한다.
다시 쓰는 행위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 글 쓰는 일로는 인생 퀘스트를 깨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글 쓰는 시간을 통해 ‘나는 무엇을 하며 먹고살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겁먹지 않을 만큼 경험치가 쌓였다는 건 분명하다.
전UP주부의 이야기가 끝났으니, 나는 이제 뭘 써야 할까.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원없이 다 끌어내 썼으므로, 아쉬움없이 후련하다. 공허함이 밀려들기 전 다음 글감도 상상해본다. '복잡하게 생각하는 지긋지긋한 즐거움'이란 말이 어쩜 그리 나를 잘 대변하는지. 이 즐거움이 소진될 때까지 나는 쓰고 쓰고 또 쓰게 될 것 같다.
<전UP주부 자존감UP 프로젝트>로 명명한 긴 육꿈 활동의 열매는 다음 한 줄로 표현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