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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UP주부 Mar 03. 2023

화음과 불협화음

전UP주부라 육꿈합니다


개수대에 잔뜩 쌓인 그릇을 보면 불쾌함이 쓰나미로 밀려올 때가 있다. ‘아, 진짜 짜증 나네.’ 순간 화풀이하고 싶은 건 이를테면 가짜 욕구다. 화나는 이유를 말하고 이해받고 싶은 게 진짜 욕구다. 가짜 중에서 잘 가려낸 ‘진짜 욕구’는 소통의 키워드가 되기도 한다. 누구든 상대방이 무작정 쏟아낸 화는 받아줄 생각이 없어도, ‘찐심’을 들으면 이해할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일상의 퀘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아이템을 획득하듯 진짜 욕구를 알아채야 한다.



아이 방을 처음 마련할 때처럼 내 공간을 새롭게 꾸렸다.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공간이 생기니, 무엇이든 마음먹게 됐다. 주부로 아내로 엄마로 사는 공간에서와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주어진 삶 너머의 인생을 꾸리고 싶어졌다.



내 입장, 내 감정, 내 몫, 내 사정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기로 작정하는 건 '나와의 화음'을 꾀하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타인과의 불협화음'을 동반한다. 이타심을 배우고 실천하며 살다가 이 나이에 다시 이기적으로 돌아가는 건가, 회의가 든 것도 잠시. 이기심이라는 프레임마저도 잘못 학습된 굴레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애가 빠진 이타심이야말로 자존 없이 세상에 휘둘리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을까.



나에게 자기애, 자존 같은 단어는 애써 의식하고 노력해야 하는 영역이지만, 누군가에겐 너무나 당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일일 것이다. 나는 온 에너지를 기울여 '감정 문제'와 사투하지만, 누군가는 '감정 정도'에 마음쓸 필요조차 못 느낄 수도 있다. 타인의 그런 일면은 너무 신선해서 흥미롭기도 하고, 금세 마음의 벽이 세워질 정도로 이질적이기도 하다. 남이라면 이렇든 저렇든 괜찮은데, 가족일 때는 안 괜찮다. 남과는 안 싸워도 가족이랑은 싸우게 된다. 싸우는 대상이 가족이라 다행인 걸까.


다양한 활동을 통해 나를 채우는 시간은 충분했고,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 분명해졌다. 점차 독립하려는 아이를 시샘하듯, 주체적인 인생을 꾸리고 싶은 내적 자아가 꿈틀거렸다. 각종 역할 관계로부터 거리를 표시하고 내 영역을 구축하면서 진짜 인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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