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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UP주부 Mar 03. 2023

본전과 반전

전UP주부라 육꿈합니다


학령기에 들어선 아이는 쑥쑥 잘 커왔는데, 나의 세계는 자라지 못했다는 자각은 씁쓸했다. 열심히 살았지만 남은 게 없어 보였다. 지나온 자취를 더듬거리다 고개를 돌려 앞을 보면 막혀있는 길 위에 선 듯 답답했다. 눈앞에 닥친 현실도 그러했다. 코로나 사태가 터져 손발이 묶인 채 집안에 머물러야 했다.


40대가 되니, 뉴스에서 보도되는 일들이 남일 같지 않다. 노후의 사정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고, 건강할 때 건강을 지켜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내 앞날도 훤치 않은데, 자녀의 성장을 위한 경제적 발판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몸 쓰는 육아 대신 맘 쓰는 육아에 진입해 사춘기라는 말만으로도 벌써 위축된다. 친구들과는 경사로 만날 일보다 조사로 만날 일이 더 많을 것이고, 부모님과 함께해온 날보다 함께할 날이 짧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20대나 하는 질문을 꺼내들었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붙잡고 늘어져야 할 질문 같았다. 50대가 되어도 비틀거릴 수는 없지 않은가. 찬란한 50대를 맞이해야 하지 않겠나. 하여, '피오나'가 된 Y세대는 시간과 돈을 들여 자아 성장을 적극 꾀하기 시작한다. 가사와 육아를 뺀 나머지 시간은 자투리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비용을 들이는 것 자체가 부담이므로 돈이 들지 않는 방식으로, 그렇게.   


대신 온라인 세상이 활짝 열렸다. 사회적 관계망이 생기고 행동반경이 넓어졌다. 일상에 활기가 더해지며 과거를 재조명하고 미래를 그리게 됐다. 앞이 뻥 뚫린 터널에 들어선 기분이다. 훤히 보이진 않아도 빛을 향해 가고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20대때나 하던 질문을 하나씩 던지고, 찬찬히 답하며 <소소한 성취의 본전> <찌질한 질투의 반전>을 썼다. 소소하게 시도하고 자잘하게 성취하며 든든하게 쌓은 자신감이 '본전'이라면, 찌질한 질투 끝에 얻은 것이야말로 본전에 비하지 못할 만큼 가치 있는 '반전'이었다.


썩 내키지 않은 제목을 붙여 글을 저장하고 잠을 청했던 새벽, 결국 잠들지 못하고 머리를 이리저리 굴린 끝에 '본전과 반전'의 라임떠올리고서 어찌나 짜릿했던지. 내가 좋아하고 잘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긴 시간을 돌고 돌아서 얻은 진짜 답은 아마도 이 문장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글자수를 맞추는 것만큼이나
언어로 리듬을 만드는 일이 너무 재밌다.   



'재미'를 좇아 이것저것 도전해보니 자연스레 '의미'를 위해서도 도전하고 싶어졌다. 느닷없이 마음먹고 쉽싸리 뛰어든 '국가자격증 취득기'는 <누워서 떡 먹은 사연>에 담았다. 누워서 떡 먹으려다가 가슴에 떡ㅡ얹혀버린 것에 대한 이야기다.



만약 당신이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른다면,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연을 일으킬 수 있는 행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존 크롬볼츠-



계획된 우연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방송 동아리 활동에도 참여했지만,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과정에서 사실 몇 번 후회하긴 했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시간과 마음을 맞춰가는 일이 녹록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경험을 글감 삼아 한 꼭지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계획된 우연'을 더욱 곱씹게 됐다. <0이 한 개 빠진 원고료>의 마지막 문단을 쓰면서 오래도록 비어있던 자리에 맞춤한 퍼즐 조각을 드디어 찾은 기분이 들었다.


돌아보면,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그러했다. ‘진로’를 고민하며 도전했던 것마다 실속도 효용도 없었지만, 그 길 끝에서 얻은 용기로 또 다른 문을 열고 새 길을 걷고 있다. ‘나아가는 길’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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