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창빈 Aug 20. 2023

사내이직(2) - 발 없는 말도 필요 없다

작은 조직 안에서 소문이 퍼지는 모양


돌이킬 수 없는 인사발령이었다.



"자네 팀장, 그리고 함께 일하고 있는 주재원 이치무라 상을 포함해서 누구에게도 이 발령 내용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사장은 신신당부했지만 40명 전후의 직원이 근무하는 이 작은 회사에서 내가 입을 열지 않는 정도로 입소문을 막을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은 잘못되었다. 그리고 나는 당장이라도 내 이동을 번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을 찾는 게 제일 중요했다.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기대는 사그라들었지만..



"의외네. 이래도 되는 건가? 타무라 사장, 무슨 생각인 건지 모르겠네?"


"그렇죠? 저도 이치무라 부장님 오시는 시기부터 거의 2년간 열심히 일해온 성과가 이제야 막 보이기 시작하려는데 이동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잖아요."


"다른 사람 이야기는 못 듣고?"


"네 명 정도 인사이동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랑, 제 자리에는 새로운 사람을 배치할 거라는 것 정도요? 아, 그리고 이 인사발령에 대한건 아직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나는 이치무라 부장이 당장이라도 타무라 사장에게 몇 마디 해주기를 바라면서도,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괜한 기대라도 해보고 싶은 간절한 순간들이 있지 않던가. 가장 가까이에서 2년 동안 한국어를 못한다는 구실을 잘 활용하며 나를 부렸던 이치무라 부장이라면 나를 돕고도 남아야 할 정도의 신세를 졌다.


하지만 우리 둘 사이의 관계 이전에 이곳은 회사였고, 주재원 사장 - 영업부장 사이에도 위계는 존재했다. 결정에 대해 강하게 반박할 구실조차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지난 2년간 물밑에서 진행되었고 이제 막 성과가 나타나려는 일들은 나 혼자 한 일이 아니었으니 '대체 가능'할 거라는 여지를 남기기도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 내 뒤를 잇는가? 아마 이치무라 부장의 관심사는 이미 그곳을 향해있었을 것이다. 아쉬운 건 나뿐이었다. 그리고 또 금세 내 후임자의 윤곽이 드러났다. 내가 뭐 했는가. 작은 회사에 비밀은 없다.



"과장님이 이동하신다고요? 헐.. 저는 제가 마케팅 팀으로 이동하면서 과장님 하고 같이 일하게 되는 줄 알았는데..."


"우리 회사에서 그 정도로 마케팅에 힘을 실으려고 하지는 않겠지.. 김 대리가 내 후임자였구나.."



거짓말. 이미 다 알았을 것이다.(..라고 멋대로 생각했다. 남 탓을 해야. 그래야 내 마음이 좀 편할 것 같았다.) 접대가 많아지는 건 아니냐는 둥, 내가 가게 될 팀의 조직문화가 안 좋다는 등 입사초기에 한 차례 내가 이동할 부서에서 일을 경험했던 김대리는 물심양면 뀌뜸을 해주고 있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조금 더 불안이 더해질 뿐이었다. 


아.. 이 인사발령은 결국 뒤집을 수 없겠구나.



하지만 마냥 손 놓고 기다리는 건 성격상 참을 수 없었다. 가장 큰 조력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더 이상 의지할 수 없다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작가의 이전글 사내 이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