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로 돌아온 팀장은 곧장 통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통장님. 저 총무팀장입니다.”
‘예. 팀장님. 안녕하셨어요.’
통장은 여전히 아무 감정이 섞이지 않은 듯한 딱딱한 말투로 팀장에게 애써 예의를 갖췄다.
“네. 다른 게 아니라 화재 사고가 났더라고요.”
팀장은 마치 남일 얘기하듯이 슬쩍 한마디를 던졌다.
'예. 구남필 어르신 댁에 사고가 생겼네요. 민구 주무관님이 자세히 얘기하던가요.'
“네.”
'네. 항상 이렇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말씀을 드려도 잘 움직이지를 않으시더라고요.'
“…”
'그렇잖아요. 이번 건도 그렇고, 제가 어려운 분들 말씀드려도, 이래서 저래서 안 된다는 말들만 하시고요.'
“통장님, 잘 아시겠지만, 저희는 법과 기준에 따라 움직이잖아요. 어렵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하니까요.”
'객관적으로 판단하다가 이렇게 사람이 죽어 나가네요.'
통장은 원망 섞인 말투로 팀장을 상대했고, 팀장도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통장님, 아까 오후에 지나가다가 우리 민구 씨한테 슬쩍 얘기하셨었던 거라면서요. 통장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복지팀장님께 직접 말씀해 주시지 그러셨어요.”
'항상 담당자 타령만 하시죠. 담당자도 수시로 바뀌고. 인수인계도 잘 안 되고. 참 통장으로서 일하기가 어렵네요.'
공무원에게 인수인계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만큼 열받게 하는 말도 없다. 인수인계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부인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네, 어려우신 거야 백번 이해하죠. 통장님께서 항상 애써주시는 것도 너무 잘 알고요. 더 많이 도와드리고 싶어도 못 도와드리는 마음도 좀 이해해 주시고요. 이번 일은 어르신께서 돌아가시게 된 것까지는 안타깝지만, 알아보니 지원해 드릴 수 있는 기준에 적합한 분도 아니었고요.”
팀장은 중언부언 말을 늘어놓다가 말꼬리가 잡히느니, 사망자를 도와줄 수 있는 기준이 없다는 사실을 통장에게 빠르게 고지하는 편이 낮겠다 생각했다.
'네. 팀장님.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민구 주무관님께 말씀드리고 나서 직접 연락드리지도 않은 거예요.'
“…”
통장 역시 사망자가 정부 기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복지 대상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여하튼. 잘, 알았습니다. 이만 끊습니다. 팀장님.'
뚜뚜뚜. 그렇게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무심하게 수화기를 내려놓는 민구네 팀장에게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복지팀장인 혜숙이 궁금한 듯 물었다.
-“뭐래요? 응?”
“원래 말이 좀 잘 안 통하잖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적십자나 협의체나 뭐 다른 방법으로 도와주실 게 있는지나 좀 알아봐 주세요. 통장님도 어르신이 복지 대상자는 안된다는 거 정도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해요?”
“어차피 얘기해도 지원 안 될 것 같아서 복지팀장님께는 연락도 안 드렸다고 말하네요.”
-“아니, 그럼 왜 민구 씨한테는 얘기해서 이 사단을 만드는데.”
“그냥 지나다가 민구 씨가 보여서 말한 것 같아요.”
-“그래, 그랬네. 정말 이게 무슨 일이야. 내가 통화해 볼 걸 그랬나.”
“우리가 객관적인 기준 따지면서 평소에 도와주지 않는다는 데에만 꽂혀 있어서 지금은 말해봐야 소용없어요. 나중에 얘기하시죠.”
팀장은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며 그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사건을 ‘동향보고’라는 보고서 한 장으로 순식간에 정리한 팀장은 구청으로 보고를 하고 마무리를 했다.
오늘만 봐서는 팀장은 역시, 팀장이구나 싶었다.
팀장이 통장과 통화하는 내용을 듣고 한숨을 돌린 민구는 자리에 앉아 밀린 업무를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이메일을 대충 훑어보니 중요한 내용은 없었다. 설문조사 협조. 교육 이수 협조. 음악회 홍보 협조. 와 같은 협조 요청 메일과 월간 회의자료 제출기한, 조례개정 제출기한을 알리는 내용. 공문으로 이미 내려와 있던 업무들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니 5시 50분.
퇴근 시간인 저녁 6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자고로 말이다. 영업장에는 적어도 영업 끝나기 삼십 분 전까지는 도착하는 게 예의 아닌 예의라지만, 그 통장이 예의씩이나 따질 위인은 아니었다.
“통장님 오셨어요.”
팀장은 재빨리 통장을 알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통장을 맞으며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네, 팀장님. 그 다른 게 아니라...”
온종일 시달린 탓에 피곤할 때로 피곤해진 민구는 주섬주섬 칼퇴근을 준비하고 있던 손을 멈추고 탕비실에서 차를 한 잔 타서 통장 앞에 내려놓았다. 왠지 칼퇴는 멀어진 것 같은 불길한 예감과 함께 민구는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그 전입 신고하신 분들 확인하는 거 있죠? 요즘은 왜 그걸 하지 않죠?”
통장은 아까의 사망사건 때문에 따지러 온 게 아니었다. 그새 또 다른 일로 찾아온 것. 참으로 공사다망하신 분이었다.
-“아, 그게 코로나 때문에 대면으로 확인하지 말라고 내려와서요. 유선 확인만 하고 있지 않나요?”
“그랬군요. 근데, 팀장님도 아시다시피 전화를 안 받는 분들도 계시고 해서요, 직접 방문해야 할 것 같네요.”
-“무슨 일이 있으셔서 그러시는 건가요?”
“어떤 주민이 자기 집에 이상한 사람이 주소가 있는데 통장이 왜 확인도 제대로 안 했냐고 저한테 따지 셔서요.”
-“네에. 그걸 왜 통장님한테. 저희한테 오라고 하시지요.”
“아니, 그렇게 무책임하게 동사무소로 가라. 하고 말할 수는 없는 거고요. 저도 저희 통에 계신 분들을 일일이 다 파악하고 있을 의무가 있는 거니까요.”
-“네.. 통장님 뜻은 잘 알겠지만, 당분간은 가가호호 방문은 삼가고 있으니까요.”
“그, 원칙! 원칙! 원칙 좀 그만 따지세요!!!!!.”
통장이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소리를 질러댔다. 지금까지 유지하던 그 AI톤이 연극이었는지, 지금 버럭 질러대는 소리가 연극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의 감정이 실려있었다. 켜켜이 쌓아놓았던 감정이 폭발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구남필 어르신처럼 사람이 죽어 나가요. 정말 탁상에 앉아서 일만 하시니까 동네 돌아가는 물정을 너무 모르고 말씀하시네요.”
-“통장님. 물정을 모르다니요. 언성 높이실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는 통장을 앞에 두고 팀장은 조용한 목소리에 힘을 실어 아주 단호하게 한
마디를 날렸다. 그리고,
-“그분께 동사무소로 오라고 말씀해 주세요. 전입은 확인하고 처리하는 게 아니에요. 통장님! 본인이 신고하면 저희가 처리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처리한 뒤에 확인해서 실제 주소지에 살지 않으면 행정적인 절차에 따라 ‘거주불명 등록’을 합니다. 통장님께서 상대하실 일은 아니에요.”
“그것만 항상 따지시네요. 행정적인 절차요.”
통장이 약간은 분노를 가라앉힌 듯 시니컬한 말투로 되물었다.
-“통장님. 잘 아시잖아요. 저희는 행정적인 절차에 따라 일해야 하는 공무원입니다. 저한테 오라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전입 사후확인도 당분간 유선으로 부탁드려요. 어려우시겠지만, 부탁드립니다. 통장님. 오늘은 그만 들어가세요. 종일 고생이 많으셨잖아요. 통장님.”
팀장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고, 의자를 테이블 안으로 밀어 넣었다. 테이블에 졸지에 혼자 남게 된 통장은 앞에 놓인 종이컵의 남은 차를 들이켜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팀장을 쳐다보았다. 팀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