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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정단
Aug 28. 2024
6. 동향 파악이요? 사건 사고 아닌가요?
녹초가 되어 사무실에 들어가 보니 사무실을 나선 지 세 시간 반이 흘러있었다. 그사이 민구 자리 위에 각종 우편물이 그득 쌓여 있었다.
이메일이 6개나 도착해 있었고, 부재중 전화 12통이 찍혀 있었다. 급하게 제출해야 하는 것들이 있는지 이메일부터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민구가 자리로 돌아온 것을 알기나 한 듯 전화벨이 울렸다.
-
‘xx동 570번지 지금 화재로 소방서에서 출동했다고 하네요.’
시청의 재난 부서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불이요?”
-
‘
네, 동향 파악 좀 해주세요.’
“예.”
남들에겐 큰 사건 사고를‘동향’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좀 이상하지만, 그렇게들 부른다.
570 번지면 골목에 소방차 한 대가 비집고 들어가기도 어려운 재개발 예정지였다. 관용차를 두고 걸어서 사고 현장으로 향했다. 인근에 도착하자 소방차가 서너 대 보이기 시작했다. 경찰도 네 명 정도 현장에 와 있었다.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니, 이미 까맣게 그을린 집이 눈에 들어왔다. 출동한 소방관은 적 잡아 20여 명. 화재는 진압된 상황이었다. 주변에 넋을 잃고 주저앉아 있는 할머니 한 분. 그리고 구급차로 실려 나가는 들것 하나. 인명
피해까지 발생한 것 같았다.
그 옆에 모여 구경하는 몇몇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낯익은 얼굴 하나가 보였다.
통장이었다. 아까
낮에
만났던.
잘됐다 싶었다. 이럴 때 써먹으라고 평소에 통장님으로 극진히 대접했지.
민구는 사건 경위나 사고당한 사람들의 인적 사항에 대해서 통장에게 물어봐 동향 보고를 하면 되겠다 싶었다.
민구가 통장을 알아보자마자, 그 경황없는 와중에 어느새 민구를 알아본 통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서서히 민구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통장님 나와 계셨네요. 이게 무슨 일이래요?”
민구는
발걸음을 멈춘 통장에게 말했다. 그녀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민구를 잠시 쳐다보더니, 굳게 다문 얇은 입술을 위아래로 서서히 떼었다.
-“주무관님. 제가 아까 말씀드렸죠.”
“네?”
뭔가 낌새가 이상했다.
-
“우리 동네에 이가 아프셔서 죽겠다는 분이 계신다고요.”
“네에..”
공무원 짬밥 10년. 이 여자의 말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직감할 수 있었다.
-“주무관님께 제가 말씀드렸죠?”
통장은 민구에게 본인이 이야기했었다는 말을 한 번 더 강조했다.
“네.”
-“
결국에는 이렇게 돌아가시게 된 것 같네요. 정말로
.”
“…”
그랬다.
이가 아파 죽겠다는 사람.
‘교육 간 직원 일을
대직하면서 허리디스크 환자가 염화칼슘 날라 대는 것도 짜증이 나 죽겠는데,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도대체.’
라는 생각으로 대충 흘려듣고 말았던, 그 이야기. 이가 아파 죽겠다는 그 사람. 그 사람이 사망자였다.
순간 놀라기도, 겁나기도 했지만,
갑
자기 짜증이 확 밀려왔다.
‘
이
통장은 그 얘기를 왜 나한테 한 거지.’
-“주무관님, 전달은 된 건가요?”
전달? 전달이라고 지금? 거기다가 그‘주무관님’이라는 표현을 지금 써야겠니. 통장의 말투와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민구를 더 거슬리게 했지만,
“.... 그게. 아직..”
-“아직이요? 이미 세 시간이나 흘렀는데요.”
“제가... 출장 중이었다가, 사무실에 복귀하자마자 다시 나오는 바람에요...”
-“아, 네에... 출장 중이셨죠.”
“........”
-“
주무관님, 그 사이에 사람이 죽었네요
.”
섬뜩했다. 말투에는 아까와 같이 아무 감정이 실려있지 않았지만, 민구에겐 민구가 사람을 죽였다는 원망이 실려있는 말투로 들렸다.
“그분이 돌아.. 가신 건가요?”
-“네에. 그렇다고 하네요. 직접 목숨을 끊으신 것 같다고요. 정확한 건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요.”
“갑자기요?”
-“조심스레 추측해 보지만, 아마도.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평소에 이가 아프다고 죽을 것 같다는 말을 달고 사셨던 거로 보아서는, 아마도 그런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네요. 주무관님.”
조심스레 추측 같은 소리 하네.
“통장님 일단 여기서 통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다른 분들이 들으시기에 기정사실로 들릴 수가 있으니, 수사 결과를 기다려 보시고 말씀하시죠.”
민구는 통장의 입부터 틀어막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무관님. 그래서 제가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고 말씀드리고 있잖아요.”
“네에... 그렇게 말씀하시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말씀을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통장님.”
민구는 통장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함부로 입 놀리고 다니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라고 협박하는 무언의 눈빛을 함께 실어서
.
그 말이 먹혔을 리 만무하지만 말이다.
*
위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사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
커버사진:
Unsplash
의
Stephen Radf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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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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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복지 그리고 서비스센터
04
4. 점심시간에도 여전히 ‘일’ 합니다.
05
5. 통장 한 두해 하세요?
06
6. 동향 파악이요? 사건 사고 아닌가요?
07
7. 우리가 '책임'이 있나?
08
8. 원칙, 원칙! 그 원칙 좀 그만 따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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