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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단 Aug 14. 2024

4. 점심시간에도 여전히 ‘일’ 합니다.


오전에 예약한 칼국수 집에서의 점심은 동장과 팀장 둘, 그리고 민구 그리고 오늘의 뉴페이스 지은. 그렇게 다섯 명을 위한 것이었다.      


민구는 항상 동장과 팀장 둘의 점심을 모신다. 그렇다고 점심을 얻어먹는 건 아니다. 네 명이 각출해서 먹는다. 계산과 온갖 심부름을 할 똘마니가 하나 필요하니, 그 역시 민구의 몫. 오늘은 지난달 새로 임용된 지은 씨가 추가되었다.           


“오늘은 어제 김치찌개 드셨으니까 칼국수 어떠세요?”


팀장은 아침부터 예약까지 해놓으라더니, 인제야 동장에게 슬쩍 칼국수 얘기를 던진다.


“어 좋지. 나는. 민구 씨가 좋은 걸로 하자고.”

-“저요? 저는.. 칼국수 좋습니다!”


동장은 종종 안중에도 없는 민구를 걸고넘어진다.



저는 칼국수는 지겹습니다. 왜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칼국수를 먹어야 하는 겁니까. 오늘은 저 혼자 점심을 우아하게 즐기고 싶습니다. 코인과 주식이나 들여다보면서요. 라고 말하고 싶은 맘은 굴뚝같았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대답은 정해져 있다.      



“어, 그래? 그러면 칼국수로 하자고. 근데, 지은 씨는 칼국수 좋아하나?”

-“그럼요.”     


갑자기 지은이 생각났나 보다. 지은의 안중은 물어보지도 않고 팀장이 대신 대답한다. 스물다섯 지은이 칼국수를 좋아할 리가.    

 

 




“의원님 하고 식사를 한 번 하셔야 하지 않겠어요?”     


칼국수를 입에 한가득 물고 팀장이 동장에게 말을 건넨다.   

  

“그렇지. 생각은 하고 있었어.”      

-“얼마 전에 자기 집 앞에 오수관 공사해 달라는 김숙자 할머니가, 의원님한테도 쫓아갔었나 보더라고요.”     

“아니, 오수관 공사가 우리가 하는 건가, 의원을 쫓아가게 어쩌라는 거야.”      


-“의원님이 전화가 와서 우리가 해당 부서에 요청을 해줘야 하지 않겠냐고 하시던데, 뭐 그건 그렇고. 얼마 전에 행사할 때도 뒤늦게 알려줬다고, 그것도 직원이 전화를 하냐고 열을 냈다는데…. 식사라도 하시면서 한 번 풀어주셔야죠….”     

“그래, 그러면 이번 주중에 한 번 잡아보자고. 의원님이 어디 좋아하시나.”      

-“횟집이나 뭐 그런 곳이 좋지 않겠어요?”      


어르신들과의 식사 시간은 업무의 연속이다. 의원은 없을 때도 의원님이다.    

  

-“새마을회장 고깃집으로 하죠. 한 번을 안 온다고 뭐라 하던데….”     

“어, 아주 좋은 생각이네. 새마을 회장네 가게에서 의원님이랑…. 일거양득이네. 허허허.”      


한 단체 회장의 고깃집으로 의원님과의 식사 장소를 정하고는 다들 좋은 아이디어라며 하하 호호를 했다. 민구와 지은은 아랑곳하지 않고 칼국수만 계속 푸고 있었다.      


“지은 씨는 주말에 남자친구랑 어디 좋은데라도 갔어?”     


발갛게 잘 무쳐진 맛나 보이는 겉절이를 하나 집어 들고 있던 애먼 지은이 눈에 들어왔나 보다. 동장이 묻는다.     


-“동장님. 그런 거 묻지 마세요. 요즘 그런 것도 다 성희롱이야.”     


팀장이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해댄다. 요즘은 뭐든 다 성희롱으로 갖다 붙이려 한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일화들을 덧붙여 말하면서 더 희롱하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뭐 그냥 영화나 보고 밥이나 먹는 거죠.”      


지은이 노멀한 대답으로 더 이상 질문할 거리가 없도록 화제를 전환했다. 임용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나이가 있는 만큼 아무래도 그간 공격 아닌 공격을 많이 받아 본 듯하다.  

   

“요즘 재미난 영화가 있나?"

-"네.. 뭐.. 그냥요."


지은이 구체적인 대답을 하지 않고 말을 얼버무린다. 굳이 더 말하고 싶지 않은 눈치다.


"에이. 젊은 사람들이 그러면 쓰나. 주말에 여기저기 놀러 다녀야지. 근데, 결혼은 안 하고?”


동장은 갑자기 결혼 타령이다.


“결혼은 아직 안 한다잖아요. 동장님. 하하하.”


팀장이 대신 대답한다.     


“그래도 결혼해야지. 이제 지은 씨도 서른인데…. 너무 오래 사귀어도 안 돼요. 얼마나 사귀었댔지?”      

-“한 삼 년이요..”    

"삼 년이면 할 때 됐네.”     


지은이 실제 남친과 사귄 건 오 년이 넘었지만, 몇 년 전부터 항상 '한 삼 년'으로 대답이 정해졌다. 오 년을 사귀었다고 했으면 이미 결혼했어야 한다고 할 판이다.


 '남자 친구-몇 년 사귀었느냐-결혼해라'이 세 가지 주제 말고는 시킬 말이 없는 사람들이다. 남 사생활에 무슨 관심들이 그렇게 많은지. 유일한 여자인 혜숙팀장이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결혼하든 말든 저희가 알아서 하겠죠. 그만 좀 하세요. 호호호. 오늘따라 칼국수가 더 맛있네. 안 그래, 민구 씨?”     






귀로 먹는 건지 입으로 먹는 건지 알 수 없던 점심시간 내내 끊이지 않았던 대화가 간신히 일단락되고, 모두 숟가락을 내려놓은 지 오래지만, 동장은 여전히 식사 중이다. 하긴 말을 그렇게 하면서 다 먹었을 리가 없다.


     

“나는 말이야, 예전에 직원일 때 팀장이랑 과장들이 밥을 너무 빨리 먹어서. 막 밀어 넣었었다니까. 그래서 내가 생각했지. 나는 나중에 저러지 말아야겠다고. 그니까 천천히들 먹으라고. 허허허 천천히.”     



그러면서 남들 다 먹었는 데에도 혼자서 한참을 계속 먹고 있다.

빨리 먹는 게 나쁜 건지, 지나치게 천천히 먹는 게 나쁜 건지.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그렇게 한 시간밖에 되지 않는 점심시간은, 재미없이 오가는 대화들과 동장이 다 먹기를 기다리는 동안 속절없이 흘러가고, 사무실로 돌아가 자리에 앉으면 한 시. 한 시간 땡.



그렇게 점심시간에도 여전히 '일' 아닌 일을 한다. 




*위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사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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