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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단 Jul 31. 2024

2. 내부의 적

     

“민구 씨.”


팀장이 아침부터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앉아 민구를 찾는다. 그래도 아홉 시는 넘었다. 어떨 때는 아침 여덟 시 반인지, 저녁 여섯 시 반인지 상관없이 불러댄다. 민구는 무거운 엉덩이를 천천히 들어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팀장을 향해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네.”

“어, 냉장고에 귤 말이야. 그거 오늘 직원들한테 다 나눠줘야겠더라. 썩겠어.”     


뭘 보는지 모니터 가리개로 가려놓은 컴퓨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평소처럼, 굳이 불러대서 할 정도의 이야기가 아닌, 특별하지 않은 것을 민구에게 주문했다.     

 

-“네에...”

“이따 오후에 두 개씩 나눠줘. 아님. 아예 지금 나눠 주던가. 또 잊어버린다.”

-“네에...”

“응, 그리고 오늘 점심은 뭐 먹을까?”

-“네... 뭐...”

“지난번 그 칼국수 어때? 괜찮던데. 거기로 다섯 명 예약해.”

-“아, 네에...”


아침부터 중요하지도 않은 ‘귤’ 타령에 ‘칼국수’ 타령이다. 민원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하고, 전화가 여기저기서 울려대기 시작하지만, 팀장의 관심사는 오직 먹는 것뿐이다. 자기는 손이 없나 발이 없나. 그렇게 할 일이 없으면 본인이 좀 나눠 줄 만도 하고, 본인이 좀 예약할 만도 하지만, 꼭 아침 댓바람부터 민구에게 말한다. 그것도 항상 같은 자세다. 컴퓨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자세, 사람을 불러놓고 기분 나쁘게 쳐다보지도 않는다.

 

 


   

휴게실로 들어가 냉장고에서 귤을 꺼내 들었다. 귤을 상자째 들고 사무실 안 직원들에게 팀장의 말대로 두 개씩 나눠줬다. 꼭 맞는 숫자였다. 아마 다 세어본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 민구에게 '제가 좀 같이 나눠 줄까요.' 혹은 '좀 도와드릴게요.'라고 말하는 직원은 하나도 없다.


가만히 앉아서 홀랑 잘도 받아만 먹는다. 대부분 직원이 민구보다 어린 후배지만, 이런 일(?)은 본인들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언제든 민구의 몫. '도와줄까요'는커녕 귤을 나눠주는 동안 이런저런 주문을 몇 개나 받았는지 모르겠다.


"주무관님, 저 얼마 전에 공문 온 '청년 전세사기 피해예방 교육' 신청을 하고 싶은데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귤 나눠주는 민구에게 복지팀의 영주가 묻는다. 민구라면 상자라도 거드는 척이라도 하면서 물어볼 텐데 요즘 애들은 그런 척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다. 본인이 필요한 것만 물을 뿐. 어떻게 하긴, 네가 공문으로 신청하면 되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열 살이나 어린 여자 직원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응, 이따가 한 번 보고 알려줄게요."


라고 나이스 한 척 대답하고는 귤 나눠주는 것에 집중한다.


"저는 귤은 안 먹어요."


복지팀의 도우미 여사님이 단호하게 귤을 거절하신다. 주는 손 민망하게. 민구라면 받아놓고 안 먹던가 혹은 다른 사람을 주던가 할 것도 같은데 말이다. 민망해진 손 안의 귤은 옆자리에 앉은 사회복무요원에게 넘어갔다. 휴대폰 게임을 하느라 귤을 주는지 마는지 관심도 없다. 엄연히 군 복무인데, 게임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요원'들이 이 땅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귤을 나눠주는 것을 마친 민구는, 상자를 분리수거함에 버리려 복도로 나서자마자. 환경 미화를 도와주시는 청소 여사님을 마주쳤다. 아차 싶었다. 민구는 자연스레 상자에 남아있는 민구 몫의 귤 두 개를 아주머니에게 집어 드리며 살갑게 말했다.


"귤 좀 드시면서 하세요."

-"어? 그렇잖아도 안 먹으면 썩을 것 같아서 아침에 몇 개 까먹었어. 이제야 나눠주네."

"네에.."


그러면서 민구의 몫이었던 귤을 받아 든다. 괜찮다는 말씀은 절대 안 하신다. 상자를 차곡차곡 접어 분리수거함에 넣고 사무실로 돌아가려는 찰나, 아니나 다를까 청소 여사님이 민구를 불러 세운다.


-"아, 민구 주무관님. 아니 티브이 보니까 기모 고무장갑이라는 게 있다던데, 모양도 예쁘고 좋더라고. 손이 시려서 청소를 못하겠어. 기모 고무장갑 좀 사줘."

"아, 네에.. 기모 고무장갑이요.."


얼마 전 티브이에서 한 연예인이 밥 지어먹는 프로그램에 기모 고무장갑을 끼고 연신 설거지를 해대는 모습을 민구도 봤다. 신문물이네 싶었는데, 민구에게 바로 주문하시는 청소 여사님도 참 대단하시다.


-"응, 좀 부탁해요."


평소에도 청소 여사님은 민구랑 마주칠 때마다 이런저런 주문을 잘도 하신다. 순발력이 좋으신 건지, 아니면 민구와 마주치면 얘기하려고 어젯밤 잠자기 전에 몇 번씩 정리해 두셨던 말인지 모르겠다.






“민구 씨, 의원님 오셨으니까 차 한잔 부탁해.”     


자리에 돌아와 청소 여사님이 사 달라지는 ‘기모 고무장갑’을 검색하려는 순간. 동장실에서 얼굴을 빼꼼 내민 다른 팀의 여자 팀장인 혜숙이 말한다. 동장실에 차를 탈 수 있는 정수기와 커피포트가 놓여있지만, 차는 항상 민구에게 주문했다.


의원이 또 무슨 일로 아침부터 납시셨는지. 휴게실에 들어가 둥굴레차를 하나 꺼내 들고 정수기에서 종이컵에 미지근한 물을 받아 몇 번 대충 우려내 쟁반에 받쳐 들고 동장실에 들어가 탁자에 내려놓았다.     

 

“여기는 남자 직원이 차를 주네요. 하하하.”


의원이 민구에게 차를 얻어 마시는 것이 어색하다는 듯이 말했다. 요즘 세상에, 이런 남녀 차별적 발언이 있나. 듣는 남자로서 보통 기분이 나쁜 게 아니다.  

  

“우리 민구 씨 차 잘 타요. 호호호.”


왠지 차를 본인이 타야 할 것만 같았나. 혜숙 팀장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받아넘겼다. 차를 타서 가져다 바치면서도 기분이 썩 좋질 않다.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민구는 곧장 동장실에서 돌아 나왔다.   


   



삼십 분쯤 지났을까. 의원이 동장실에서 나가자마자 민구의 전화기가 울렸다. 동장실은 민구의 책상 바로 옆. 참으로 가까운 데에 앉아서 동장은 전화로 사람을 잘도 불러댄다. 하긴 동장이 일일이 직원을 찾아 나오는 것도 이상하긴 하다.     



“네, 동장님.”

-“응, 민구 씨 좀 앉아봐.”

“네.”

-“그, 우리. 정민 씨 교육에서 돌아오면 하려고 했잖아. 제설함 정비하는 거. 그거 얼른 해야겠다.”

“네? 네에....”   

  

민구네 팀의 재해업무 담당인 정민은 3주짜리 신규 교육 중이었다. 다음 주에 돌아오는데, 우리 동 주민 하나가 의원에게 왜 동네 구석구석에 놓여있는 제설함에 염화칼슘이 안 채워져 있냐고, 이러다 갑자기 11월에 눈이라도 오면 어떻게 할 거냐고 연락을 했다고 한다.     

 

어련히 알아서 할까. 의원의 한마디가, 당장 해야 하는 일이 되어 민구에게 돌아왔다. 이렇다 할 눈 예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음 주에 정민이 돌아오면 해도 되는 일이었다.


가뜩이나 동사무소에 남자 직원이 없어 힘쓰는 일은 몇 명에게만 몰빵인데, 제설함에 염화칼슘을 채워 넣는 노가다마저 팀 내 유일한 남자인 정민을 쏙 뺀 채 혼자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심지어 작년에도 민구랑 사회복무요원 한 명, 단 둘이서 했던 일이다.     



동장도 그렇다. 우리가 때 되면 알아서 하겠습니다.라고 한마디 못 하는 걸까. 그저 의원이라면 벌벌 기는 모습을 보면, 의원 덕에 동장이 된 건가 싶다.



의원도 마찬가지다. 그건 동사무소 직원들이 알아서 할 겁니다. 걱정 마세요.라고 주민에게 단호하게 말해줄 수는, 당연히 없겠지.


이런 일 하라고 의원이 있는 건데...      



“네에.. 오늘 공익들이랑 나가서 하겠습니다.”



아침의 계획은 그렇게 매일 빗나간다. 할 일이 몇 개 없었던 것 같은데, 내부의 적들은 민구에게 오늘도 끊임없이 이런저런 일들을 만들어 준다.




*위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사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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