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이 아침부터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앉아 민구를 찾는다. 그래도 아홉 시는 넘었다. 어떨 때는 아침 여덟 시 반인지, 저녁 여섯 시 반인지 상관없이 불러댄다. 민구는 무거운 엉덩이를 천천히 들어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팀장을 향해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네.”
“어, 냉장고에 귤 말이야. 그거 오늘 직원들한테 다 나눠줘야겠더라. 썩겠어.”
뭘 보는지 모니터 가리개로 가려놓은 컴퓨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평소처럼, 굳이 불러대서 할 정도의 이야기가 아닌, 특별하지 않은 것을 민구에게 주문했다.
-“네에...”
“이따 오후에 두 개씩 나눠줘. 아님. 아예 지금 나눠 주던가. 또 잊어버린다.”
-“네에...”
“응, 그리고 오늘 점심은 뭐 먹을까?”
-“네... 뭐...”
“지난번 그 칼국수 어때? 괜찮던데. 거기로 다섯 명 예약해.”
-“아, 네에...”
아침부터 중요하지도 않은 ‘귤’ 타령에 ‘칼국수’ 타령이다. 민원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하고, 전화가 여기저기서 울려대기 시작하지만, 팀장의 관심사는 오직 먹는 것뿐이다. 자기는 손이 없나 발이 없나. 그렇게 할 일이 없으면 본인이 좀 나눠 줄 만도 하고, 본인이 좀 예약할 만도 하지만, 꼭 아침 댓바람부터 민구에게 말한다. 그것도 항상 같은 자세다. 컴퓨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자세, 사람을 불러놓고 기분 나쁘게 쳐다보지도 않는다.
휴게실로 들어가 냉장고에서 귤을 꺼내 들었다. 귤을 상자째 들고 사무실 안 직원들에게 팀장의 말대로 두 개씩 나눠줬다. 꼭 맞는 숫자였다. 아마 다 세어본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 민구에게 '제가 좀 같이 나눠 줄까요.' 혹은 '좀 도와드릴게요.'라고 말하는 직원은 하나도 없다.
가만히 앉아서 홀랑 잘도 받아만 먹는다. 대부분 직원이 민구보다 어린 후배지만, 이런 일(?)은 본인들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언제든 민구의 몫. '도와줄까요'는커녕 귤을 나눠주는 동안 이런저런 주문을 몇 개나 받았는지 모르겠다.
"주무관님, 저 얼마 전에 공문 온 '청년 전세사기 피해예방 교육' 신청을 하고 싶은데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귤 나눠주는 민구에게 복지팀의 영주가 묻는다. 민구라면 상자라도 거드는 척이라도 하면서 물어볼 텐데 요즘 애들은 그런 척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다. 본인이 필요한 것만 물을 뿐. 어떻게 하긴, 네가 공문으로 신청하면 되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열 살이나 어린 여자 직원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응, 이따가 한 번 보고 알려줄게요."
라고 나이스 한 척 대답하고는 귤 나눠주는 것에 집중한다.
"저는 귤은 안 먹어요."
복지팀의 도우미 여사님이 단호하게 귤을 거절하신다. 주는 손 민망하게. 민구라면 받아놓고 안 먹던가 혹은 다른 사람을 주던가 할 것도 같은데 말이다. 민망해진 손 안의 귤은 옆자리에 앉은 사회복무요원에게 넘어갔다. 휴대폰 게임을 하느라 귤을 주는지 마는지 관심도 없다. 엄연히 군 복무인데, 게임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요원'들이 이 땅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귤을 나눠주는 것을 마친 민구는, 상자를 분리수거함에 버리려 복도로 나서자마자. 환경 미화를 도와주시는 청소 여사님을 마주쳤다. 아차 싶었다. 민구는 자연스레 상자에 남아있는 민구 몫의 귤 두 개를 아주머니에게 집어 드리며 살갑게 말했다.
"귤 좀 드시면서 하세요."
-"어? 그렇잖아도 안 먹으면 썩을 것 같아서 아침에 몇 개 까먹었어. 이제야 나눠주네."
"네에.."
그러면서 민구의 몫이었던 귤을 받아 든다. 괜찮다는 말씀은 절대 안 하신다. 상자를 차곡차곡 접어 분리수거함에 넣고 사무실로 돌아가려는 찰나, 아니나 다를까 청소 여사님이 민구를 불러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