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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단 Jul 24. 2024

1. 오늘도 영업개시


지문 센서가 매번 직원들의 지문을 그렇게 잘 읽어낼 수 있는 건, 정말 사람들의 지문이 그렇게 다 달라서 인가보다.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운 그 미묘한 차이를 감지해 낼 수 있는 기계에 두 차례에 걸쳐 지문을 맞추고 나니 비로소 출입문의 보안이 해제되었다.    

  


오늘도 민구가 제일 먼저 출근이다. 아귀가 잘 맞지 않아 밀어 올리기 어려운 셔터를 있는 힘껏 밀어 올리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선다. 차단해 놓았던 전원 버튼과 보일러 버튼을 누르자 불이 들어오며, 사무실 곳곳에 놓인 기계들이 기지개를 켰다.     

 


키보드 아래 감춰 둔 서랍 열쇠를 꺼내 잠긴 서랍을 열고 파일 몇 개와 업무수첩을 꺼냈다. 연필깎이로 연필을 돌려 깎으며 오늘 할 일이 적힌 수첩을 내려다보았다. 동시에 탁상달력의 오늘 날짜에 특별히 표시된 것이 있는지도 한 번 확인했다.      



초과근무와 출장 관련 감사 자료를 하나 작성해 보내야 했고, 다음 달 행사 계획, 정보통신과에 제출해야 하는 보안점검 파일을 작성해야 하는 것이 전부였다.


컴퓨터에 암호를 두 차례에 걸쳐 처넣었다.


약간의 버퍼링을 거친 컴퓨터는, 배경이 애초에 어떤 것이었는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바탕화면을 빼곡히 채운 온갖 파일들을 민구의 눈앞에 내어놓았다.      






수요일 아침. 어느새 주 중반에 와있었다. 주말을 학수고대하며 보내는 주중의 날들이 가고 나면, 눈 깜빡하면 지나가는 주말이 왔고, 또 그런 주말을 학수고대하는 주중을 금세 맞이하는.


일주일, 한 달 그리고 일 년이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직장인의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다 보니 어언 10년 치가 쌓여 있었다.   

  

 

“문 열었어요?”     


일곱 시 사십 분. 셔터를 올린 지 채 십 분이 지나지 않았다.      


-"아홉 시에 시작해요.”


“아홉 시?”     


아홉 시라고 되묻는 말에 신경질이 약간 배어있다.      


“급해서 그러는데 인감 하나만 좀 떼줘요.”     

-“선생님 죄송하지만, 전산 발급이 아홉 시가 넘어야 가능합니다.”    

 

“아, 급해서 그렇다잖아. 사람이 나와 있으면 좀 해 줄 수도 있는 거지. 그런 게 어딨어. 안 그래?”     

-“죄송합니다. 제가 담당자도 아니고, 담당자도 아홉 시는 넘어야 발급할 수 있어요.”    

아, 영업장이 문은 열어놓고 영업 안 하는 게 어디 있대?”     


아침부터 셔터를 전부 열어 올렸던 것이 문제였다.      


-"아직 시작 전이잖아요. 아홉 시 넘으면 바로 발급 가능합니다. 수고로우시겠지만, 댁에 갔다 오시던지, 여기 앉아서 기다리세요.”   

  


공무원이 되고 경험이 많지 않을 때에는 무조건 안된다는 말부터 했었다. 경험치가 좀 쌓이니, 부정의 단어보다는 긍정의 단어가 더 잘 먹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발급 못 해드려요. 보다는 이렇게 하시면 발급 가능해요. 라고 말이다. 



민원인은 그럴거면 아침부터 문을 왜 열였냐는 둥. 일도 안하면서 자리는 왜 차지하고 하고 않아 있냐는 둥, 혼자 뭐라 한참을 구시렁대더니 사라졌다. 그정도면 진상은 아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여덟 시 오십 분쯤 되자 여기저기서 출근 인사가 들려왔다. 아침의 소소한 소란은 그렇게 묻히고, 밤새 안녕했냐는 인사와 함께 직원들이 하나둘 출근하기 시작했다.     


좀 전에 그렇게 급하다던 민원인은 어느새 대기 번호표를 뽑고 다른 사람들과 조용히 민원대 앞에서 아홉 시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띠리리리링, 띠리리링.'


아홉 시다. 귀신같이 깜빡이며 울려대기 시작한 전화기만 봐도 시간을 알 수 있다.


'띵동.' '띵동'


아홉 시 정각을 알리는 전화벨소리와 함께 민원대에서도 벨을 누르기 시작한다.      




“네, xx행정복지센터 강민구입니다.”


민구는 얼른 전화를 당겨 받는다.


아니, 복지부에서 문자가 왔는데 이게 무슨 얘기예요?'


다짜고짜 본인이 받은 문자가 무슨 내용이 냔다.


“선생님, 복지부에서 어떤 내용의 문자가 왔는데요?”     


민구가 전화기 너머 질문을 한 누군가에게 되물었다.   

   

‘아, 그런 것까지 몰라요. 그래서 물어보려고 전화한 거잖아요.’

"어떤 내용인지 대충이라도 설명을 해 주셔야지, 안내를 해 드리죠, 선생님."


'아, 아 모른다니깐. 보이지도 않아."

“혹시, 문자 보낸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는데요?”


‘아 모르지. 안 보인다니까 그러네! 그리고 이 냥반 참 답답하네 문자가 와서 물어보려고 전화를 했다니까, 왜 나한테 계속 물어봐!’   

"잠시만요!"


민구는 수화기를 한 손으로 붙잡고 직원들을 향해 큰소리로 물었다.


"혹시 복지 대상자한테 단체 문자 보낸 거 있나요?"


대답이 없다. 아무래도 우리 쪽에서 보낸 문자는 아니다.


"선생님 아무래도 저희가 보낸 문자는 아닌 것 같은데, 성함 알려주시면 혹시 알아보고 연락드릴게요."

'아 나 전화받기 힘든데. 몰라요? 문자 누가 보낸 지?'



"네, 저희가 보낸 건 아닌 것 같으니까 다시 한번 문자 내용을 보시고 연락 주시든지 하세요. 무슨 내용인지도 지도 모르시고, 어디서 온 문자인지도 모르는데, 제가 어떻게 안내를 해 드려요?”

아, 이 사람 참 답답하네. 문자를 보내놓고 왜 큰 소리야!’     



뚜뚜뚜뚜뚜. 수화기 너머 익명의 민원인이 막 열을 내려고 시동을 걸기 시작한 찰나, 전화가 갑자기 끊어졌다.  

 

잘 됐다.      


싶었다. 뭘 물어보려는 지도 모르는 채 전화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이유 없이 아침부터 욕먹으면서 담당자를 찾아 연결해 주기도 보통 짜증나는 게 아니다. 거기다가 오늘 아침에는 한차례 대거리도 한 뒤였으니 말이다.     


입사한 지 몇 년 안 됐을 때만 해도 끊긴 전화에 다시 전화를 걸어 꼭 마무리해야 맘이 놓였지만, 이젠 급하면 또 걸겠지 하고 놔둔다. 다시 걸려 온 전화를 내가 받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 말이다.     


 



“좋은 아침!”


동장은 항상 '좋은 아침'이라고 사무실이 떠나가도록 외치며 영업장에 당당히 입장하신다. 어쩌다 아홉 시가 넘었을 때도 그러시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엄연히 복무 위반이다.     

 



그렇게 동장까지 출근 완료. 오늘도 행정복지 그리고 서비스센터의 영업은 개시 완료!




* 위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사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커버이미지: 사진: Unsplash의 Casey Ho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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