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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단 Sep 25. 2024

9. 여섯 시에는 어김없이 영업 종료예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그때였다. 여섯 시. 사무실에 퇴근을 알리는 음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요일 가정의 날이면 나오는 퇴근송이었다.      


직장을 다니다 공무원이 된 민구에게 처음 퇴근송이 놀라웠다. 민구가 직장을 다니던 때는 칼퇴는 없던 시절이었다. 근무일 5일 중, 2일은 회식 3일은 야근을 반복했다.   

   

어느 날 여섯 시에 칼퇴근하고 사무실을 나섰는데, 생각보다 그 시간에 퇴근하는 사람이 많아 적잖이 놀랐었다. 그리고 또 어느 날, 조퇴하고 동사무소에 전입신고를 하러 갔는데, 파리 날리는 동사무소 안에 지겹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무표정하게 민구를 맞아 전입신고를 처리해 주던 한 공무원의 일상이 너무나 편안해 보였다. 그렇게 민구는 뒤늦게 노량진으로 향했고, 2년 만에 9급 공무원이 되었다.     


그리고‘퇴근송’을 듣게 된 것. ‘아, 공무원 하길 정말 잘했구나.’하고 생각했었다.


 여섯 시가 되니 여기저기서 가벼운 인사를 남기며 퇴근하는 모습이 생경했다. 이런 직장도 있었구나 싶었다.      

 




직원들이 하나둘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팀장도 컴퓨터를 끄고 자리를 정리하는 것 같았다.

     

“퇴근합시다.”     


 어느새 동장실에서 나온 동장이 직원들에게 퇴근 인사를 건넸다.   

   

“아니, 통장님 언제 오셨어요?”     


동장은 분명 동장실에서 밖의 소란을 다 듣고 있었을 터인데, 모르는 척 통장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네에... 뭐..”     


통장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건네는 동장을 쳐다보았다.      


“오셨으면, 안으로 들어오시지. 차는 하셨고?”     


챙겨주는 척, 능구렁이 같은 동장이 통장에게 말을 건넨다.


-“네에, 마셨어요.”

“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다 생겼어. 그래, 불이 나서 돌아가신 어르신 하고는 잘 아시는 사이세요?”     


사망자는 일 년 전, 우리 동네로 전입 온 분이셨다. 통장과 잘 아는 사이 일리는 없었다.      


-“뭐, 동네 주민이시니까요...”

“네에,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겨서, 저희가 따로 도와드릴 방법이 있는지는 알아볼게요. 걱정 마세요 통장님.”

-“네, 그러셔야죠.”  

   

통장은 당연히 너희가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듯이 대답했다.      


“네, 그럼 통장님 저는 오늘 좀 들어가 봐야 해서 다음에 또 뵈어요.”     


동장은, 더는 길게 말을 섞지 않고는 통장에게 인사말을 전했고, 동시에 팀장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날리며 곧장 사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그때 가방을 오른쪽 어깨에 둘러 맨 팀장이 어느새 나타나 통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통장님 그럼 다음에 또 봬요. 들어가세요. 그분께는 동사무소로 오시라고 전해주세요, 통장님.”     



팀장은 그렇게 사무실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엉거주춤하고 서 있던 통장은 우르르 퇴근하는 무리에 섞여 어쩔 수 없이 어영부영 사무실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통장도 더는 앉아 있어 봤자 소용없다는 것 정도는 안다. 통장 한두 해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민구는 통장이 테이블에 남긴 종이컵을 탕비실 휴지통에 던져 버린 뒤 컴퓨터를 로그아웃했다. 여섯 시 오 분.


저녁 여덟 시에 끝나는 위층의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남아 있는 당번 한 명만 빼고는 사무실은 이미 텅 비었다. 민구의 오늘 영업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두 시간 뒤, 오늘의 당번이었던 지은이 쇠꼬챙이를 셔터 고리에 걸어 간신히 셔터를 내렸다. 두 번의 지문 매칭으로 보안 가동 완료. 그렇게 행정복지를 표방한 서비스센터의 오늘 영업도 끝이 났다.


*사진: UnsplashCasey Horner

*위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사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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