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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단 Aug 20. 2024

나의 필살기

‘자기는 필살기가 뭐야?’      



한 때 ‘엄친아’ 와 ‘엄친딸’ 이라는 말이 유행을 했었다. 유행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어느 순간 신조어가 되었다고 해야 할까. ‘엄마 친구 아들은,’ ‘엄마 친구 딸은,’ 이라는 말을 우리 엄마들이 얼마나 자주 했으면, 그리고 자식들은 그 말이 얼마나 듣기 싫었으면 신조어에 그리도 공감했을까.       



비교.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언제 어디서든 비교를 한다. 비교는 우리네들의 인생에 있어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다.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는 2.7kg, 누구는 3.5kg, 누구는 4.3kg 으로 태어났는지 비교당하기 시작하는 우리들은, 첫 걸음마를 언제 했는지, 엄마라는 말은 언제 처음 했는지, 몇 개월에 누구는 걷기 시작했다는 둥, 누구는 몇 살에 글을 다 읽고 쓴다는 둥 수많은 것을 비교하고 비교당하며 자라난다.      



청소년기를 지나는 동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비교의 주제는 바로 ‘학업성취도’ 이다. 학교를 다니며 무언가를 배워야 하는 시기를 지나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 특히나,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던 시절, 많이 배운 누군가는 사회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떵떵거리며 살며, 없어서 배우지 못한 누군가는 그런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우리 부모님 세대는, 너나할 것 없이 무조건적으로 ‘공부’ 만을 강요했다. 공부를 잘 하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시대를 지나왔으니 말이다. 요즘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성적으로 줄이 세워진 학창 시절을 지나왔다. 심지어 난 어떤 학년에는 성적별로 1등과 꼴찌, 2등과 꼴찌에서 두 번째 이런 방식으로 짝을 지어 앉아 수업을 받았던 적도 있었다. 그 때 아이들은 1등이 누구인지 꼴찌가 누구인지 헷갈려하며, 우리반 꼴찌가 ‘그 친구’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으니, 역시 사람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려 했던 선생님의 사고방식 자체에 큰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한마디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성적으로 줄 세워진 그 시기를 당연하다는 듯이 지나왔다. 시험을 못 봐서 기가 죽어야 했고, 시험에서 틀린 갯수만큼 회초리로 맞아야 하기도 했었던 이상한 시간들을 말이다.     

 


중학교 몇 학년쯤이었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반의 '짱‘ 이었던 A라는 친구는 평소 우리반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며 잘난척을 일삼던, ‘은근한 따’ B라는 친구를 평소 별로 맘에 안 들어 했었다. 어느 날, 그 친구를 한 번 손봐주려는 계획을 짰는데, 운이 없었(?)는지 사전에 모의가 들통 나 버렸다.


그 때에 담임 선생님께서 B만 어딘가에 심부름을 시켜 놓으시고는, 우리 반 친구 모두에게 하셨던 연설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지금은 B가 얄밉고 재수 없고 그렇지 너희들, 근데 너희들 그렇게 친구 왕따시키고 때리려고 하고 그러는 시간에 공부나 열심히들 해. B는 공부도 잘하고 집안도 좋으니 나중에 좋은 대학에 갈 거고, 그 친구가 성공하면 니들 나중에 다 걔 밑으로 들어가서 일하거나, B한테 잘 보이려 줄을 서야 할 거다. 결국에 B는 사회에서 잘 나가고 친구도 많은 훌륭한 사람이 될 거고, 공부는 안하고 어울려 다니면서 이상한 짓 하는 니들은 돈도 없고 친구도 없을 거다. 이 멍청이들아.’      


나는 그 때 그 말씀을 하시던 선생님의 말투와 표정, 그 날 교실의 공기를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그 이유는 선생님의 그 발언이 상당히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B가 좋은 집안에 공부도 잘 하는 친구였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친하게 지내기에는 사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아는 척도 많이 했고, 잘난 것도 딱히 없어 보이면서 잘난 척도 많이 했던 건 사실이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교수였던 B는 본인 부모가 명문대를 나온 캠퍼스커플이라는 말을 줄곧 했었고, 자기도 그 대학을 갈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어렸을 적에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 살았으며, 자기네 집이 50평이 넘는 다는 말도 입에 달고 다녔었다. 사실 B는 있는 그대로를 말했던 것뿐인데, 나 역시도 그런 B와 되도록 말을 섞으려 하지 않았었다. 이유는 피곤해서. 아무튼, B가 그 나이 대 그 공간에 함께했던 다른 친구들과는 좀 달랐던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건, 아무리 B를 두둔한다 할 지언정, B가 나중에 잘 나가게 된다고 해서 친구도 많을 거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여하튼, 나는 그 친구와 그 이후에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었지만 같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그 친구는 의대에 진학했다. 지금쯤 별 일 없었다면 어느 병원에서 전문의로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지금 그 친구의 주변에는 정말 친구가 많을까. 공부를 잘 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친구도 많고 인생도 행복한 것이 당연할 것이라는 것. 내가 지나온 학창시절을 지배하던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회는 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내가 ‘사회’ 라는 곳으로 나와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건, 모든 것이 ‘성적순’ 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사회의 어딘가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성적순이 아니고, 그 어딘가에서 어디쯤이 놓이게 되는 것도 성적순이 아니라는 사실.      


아주 오랜 시간 비교의 주제가 단지 ‘학업’ 이었던 시기를 지나 마주하게 된 사회. 사회에서 비교의 주제는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었고, 학교에서는 도통 배운 적이 없는 것들이었다.   


   

누구는 컴퓨터 앞에서 다른 어떤 사람보다 시간을 오래 때우며 본인을 어필하고,

누구는 사무실 전체에 울려 퍼지는 큰 목소리로 거래처와 통화하는 걸로 본인을 어필한다.

누구는 커피를 맛나게 타는 걸로,

누구는 윗사람들과 친근하게 대화하는 걸로,

누구는 술자리에서 기막히게 술을 잘 받아 마시는 걸로,

누구는 노래방에서 화끈하게 가무를 즐기는 걸로 어필하기도 한다.

누구는 설득을 잘 하는 걸로, 누구는 성격 좋은 걸로, 누구는 경조사를 잘 챙기는 걸로,

누구는 좋은 동네에 살며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걸로 어필한다.

누구는 부모가 누구인 걸로 그리고 또 누구는 좋은 대학을 나온 걸로 어필한다.     



이 수많은 어필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학창시절, 그 많은 시간을 지배했던 ‘학업성취도’ 의 결과는 오직 ‘대학’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학교를 다니면서는 비교조차 할 필요도 없었던 온갖 잡스러운 것들. 성적만 좋으면 한 번에 눌러 버릴 수 있었던 것들이다.      


사회에 나와, 이 수많은 주제들을 통해 끊임없이 비교 당해온 결과. 나는 지금 학창시절을 지배했던 비교의 결과, 그 어딘가 보다는 분명 훨씬 아래의 어디쯤에 놓여있다.      



‘자기는 필살기가 뭐야?’      



한 술자리에서 상사에게 들은 말이다. 할 말이 없었다. 그 수많은 비교의 주제들 가운데 내가 남들보다 특별하게 우위에 있는 그 어떤 것이 단 하나도 없었으니, 할 말이 없었던 것이 당연했다.



사회에 나와 처음에 난, ‘내가 왜 이정도밖에 대우받지 못하지’ 라는 생각을 항상 했었다.

하지만, 난 내가 속해있는 조직에서 내가 놓여있는 위치를 그렇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필살기가 단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   


   

성적으로만 줄 세워졌던 단순한 그 시기를 지나, 학교에서는 배우지도 않았던 수많은 것들로 줄 세워지는 사회는 녹록치가 않다. 성적으로 한 큐에 정리되던 온갖 잡스러워 보이던 것들이, 실은 사회를 살아가는 데 더 유리한 것이라는 사실.


예로부터 음주가무를 즐겼던 흥 많은 한민족의 후손들이 모여 살아가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음주가무에라도 능했다면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닐까.      



p.s. 혹시나 하는 맘에 검색창에 중학교 때 잘난 척을 일삼던 그 B라는 친구의 이름을 검색해 보니, 어느 병원의 원장으로 잘 살고 있다. 살도 쪽 빼고. 적어도 나보다는 친구도 많을 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선생님 말씀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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