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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단 Sep 02. 2024

인생커피, 커피인생



오늘도 ‘별다방’ 어플에 별이 적립된다. 다음 무료쿠폰까지 남은 별 2개. 이번에는 얼마 전 별을 추가 적립해 주는 행사 덕분에 순식간에 별이 쌓였다.      


내가 ‘별다방’ 커피를 처음 접한 건 뭐 확실치 않지만 서울의 어느 곳이었을 것 같고, 별다방의 ‘까라멜 마끼아또’의 맛을 처음 알게 된 건, 하와이에서 잠시 다녔던 학교의 도서관 앞에 간이로 마련되어 있던 ‘별다방’ 푸드트럭 같은 거였나, 그곳에서 이다.      


과제를 마치고 도서관 문을 열고 나오던 어느 네 시에서 다섯 시 사이의 운명과도 같은 날이었다. 평소 도서관 앞을 지나칠 때마다 커피 향이 후각을 자극했던 것은 사실이나, 커피를 마시면 어질어질한 것이 이래서 어른들이 애들은 먹으면 안 된다고 했구나 하며 멀리하던 ‘스물세 살의 어린 나’였다.     


 



그날은 유독 커피 향이 강하게 나를 이끌었고, 나도 모르게 푸드트럭 앞에 발길을 멈춰 섰다. 그리고 메뉴판에서 운명과도 같은 단어 ‘Caramel Macchiato'를 찾아냈다.


나는,     

- Can I get a cup of 까라멜 마끼아또, please?

라고 주문했고, 잠시 인상을 찡그리던 인도계의 그 미국인(?)은      


- Oh, 캐러멜 마치아토?

라고 되물었다.      


그랬다. 당시 한예슬이 논스톱에서 줄곧 외쳐대던 ‘까라멜 마끼아또’가 아닌, ‘캐러멜 마치아토’였다.   


  

여하튼 우여곡절 끝에 주문에 성공한 나는 그렇게 ‘별다방’의 첫 ‘캐러멜 마치아토’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기숙사로 돌아가면서 지금까지 왜 이 맛난 걸 안 먹고살았을까 하며 후회를 하고 또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종종 ‘캐러멜 마치아토’를 쪽쪽 빨며 기숙사로 향했는데, 한 학기 식당에서 먹을 만큼의 돈을 미리 지불하고 그걸 포인트로 학생증에 적립해 학교 안 어디서나 뭐든 사 먹을 수 있게 해 놓았던 시스템 덕(?)이었다.  아침을 대개 패스하니, 커피를 먹을 포인트가 남았고,


간간이 한인마트에서 사다 쟁여놓은 라면이나 통조림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으니 또 남아돌던 포인트 덕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가난한 교환학생이 비싼 ‘별다방’의 커피를, 우리나라에 비하면 훨씬 저렴했지만, 종종 사 먹을 수 있었을 리가.      




여하튼, 그렇게 맛 들인 ‘별다방’ 커피의 맛은 쉬이 잊히지 않았고, 우리나라로 돌아오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별다방‘ 매장 덕에 쭉 계속되었던 것.


그러던 중, 커피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 한 책을 읽고 난 뒤부터 내 인생과 커피의 운명적 만남에 대해 탓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나는 왜 ‘tea time'을 가지는 삶이 아닌

‘coffee break'가 필요한 인생으로

대학생 때부터 내 발로 걸어 들어갔었냐는 것.      



그때에 내가 여유롭게 'tea‘ 나 마시며 서핑과 태닝이나 즐기는 시간을 보냈었더라면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

과제니, 리포트니, 프레젠테이션이니...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하려니 배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던, 그래서 ‘coffee'를 마시며 부스트 업 했던 나의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아닌지.    


   

하루에 열 시간. 주당 평균 50시간 이상.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었으니 뭐 적당한 근무량인가. 여하튼 그 시간 동안 컴퓨터 앞 책상에 앉아 씨름 아닌 씨름을 해 내는 나의 삶이 바로 그 운명처럼 조우했던 인생커피 ‘별다방’의 ‘캐러멜 마치아토’로부터 비롯되었던 것은 아닌지.      


오늘도 어김없이 이 시대의 노예계급에 속한 나는 언뜻 보면 사약 같은 어찌 보면 마약 같은 커피를 또 들이켠다.



사약인지, 마약인지

죽기 위한 약인지, 살기 위한 약인지

정신을 잃고 해롱대기 위한 약인지,

정신을 차리기 위한 약인지      

그렇게

사약 같은, 또 마약 같은 커피를 들이켜는 내 인생은 계속된다.

쭉 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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