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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단 Aug 12. 2024

글자가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는다


글자가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는다.

여러 단어가 나열되어 있는 상황에 마주했을 때, 눈으로 쉬이 읽히지도 그 뜻이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은지가 꽤 되었다.      

한참을 들여다봐야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단어가 눈에 들어오고 그 뜻이 이해가 된다.      

특히, 전자기기를 통해 읽는 글자가 더욱 그렇다.

눈에 쉬지 들어오지도, 눈으로 본 글자가 머릿속으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눈이 나빠진 걸까. 노안인가. 

집중력을 상실했나.



                

사무실 건너편에 조성되기 시작한 신도시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모습을 갖췄다. 처음 입사했을 무렵이었다. 사무실 건너편으로 내려다보이는 빈 공터에 아파트 10만 세대가 조성될 거라는 이야기들을 쑥덕대던 때가 말이다.    

  

"너도 청약 있으면 한 번 넣어봐."

- "청약이요? 돈이 없는데요.. , "    

 

그때는 청약은 돈이 있어야 하는 줄 알았다. 암튼 누구는 청약이 됐느니, 누구는 피를 붙여 팔았느니 하는 시간들을 지나 관심밖에 놓여있던 사무실 건너 동네는 청약이라는 말이 나온 뒤로부터 5년 만에 뚝딱 모든 것을 갖춘 도시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우리 지역의 전통이 깃든(?) 맛집이라던가. 전통이 깃든(?) 병원이라던가. 혹은 전통이 깃든(?) 학원이라던가. 그런 것들에 더해 최근 서울에서 유행하는 맛집 체인점, 온갖 브랜드 매장까지 더해진 완벽한 ‘슬세권’ (슬리퍼만 신고 나가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곳)으로 변모했다.   

   

구내식당만 가득 메우던 직원들도 삼삼오오 모여 신도시의 ‘맛집’ 들을 탐색하기 시작했는데, ‘주문’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입구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나 봤음직한 기계가 한 대씩 떡하니 놓여있었고, 거기서 직접 주문하고 결제하는 키오스크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가게가 주를 이룬 것.


비싼 월세에, 치솟는 물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북유럽과 맞먹으려면 아직은 멀었지만, 올라간 인건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결과였다.     




어느 날이었다. 평소 나에게 도움을 자주 요청하셨던 한 선배 직원이 그간 고마웠다며 점심을 쏘시겠다는 거였다. 그 선배 직원은 팀장보다 나이가 많으신 직원이셨다. 직원이니 할 일은 많고, 컴퓨터를 다루는 것이 익숙지 않으니 젊은 직원들의 도움을 안 받을래가 안 받으실 수가 없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주로 무언가를 문서로 만들어내는 일이 반. 각종 시스템에 들어가 뭔가를 집어넣어야 하는 일이 반 인 일이다. 문서를 만드는 것도 느릴 수밖에 없고, 시스템에 들어가 뭔가를 집어넣는 일은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으신 분이었다.


평소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했던 나를 포함한 세 명과 함께 총 넷이 꾸려졌다. 우리는 신도시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한 초밥집을 선택했다. 초밥집에 들어선 그 선배직원은 다짜고짜 자리부터 잡고 앉으셔서는 메뉴판을 한 참을 들여다보더니 음식을 선택하시고 가만히 앉아 계셨다. 보다 못한 우리 중 한 명이 입을 뗐다.      



"앞에 나가서 주문하는 거예요."

- "어, 그래? 뭐 이래? 나는 모둠초밥 B로 해줘. 니들도 먹고 싶은 거 맘껏 먹어."

"네에..."       


그 순간. 우리 셋 중 그 누구도 ‘앞에서 주문하면서 결제도 하시는 거예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고 우리는 쪼르르 가게 입구의 자판기에서 모둠초밥 B를 선택하고, 결제를 했다. 음식을 다 먹고 우리 중 한 명이 결제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선배 직원은,      


-"나 한테 말을 했어야지. 나는 몰랐지. 내가 돈 보내줄게. 계좌 알려줘."

"아녜요... 그냥 담에 한 번 더 사주세요..."

- "아니야. 내가 산다고 한 건데."

"아녜요.. 맛있게 먹었음 됐죠. 뭐. 하하하."

       

결국 그날의 점심은 선배직원이 아닌 우리 중 한 명이 샀고, 그 이후로 그 선배직원과의 점심식사는 그날의 멤버 중 두 명의 인사이동으로 흐지부지 됐다.      



그 선배직원이 키오스크 기계에 적응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적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난감한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나면, 생각보다 쉬이 음식을 받아먹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뭐 별거 아니네.라고 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선배 직원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      


몇 년 전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 맛있는(?) 음식들만 먹다 보니 햄버거가 무척이나 먹고 싶었던 나머지, 숙소 인근의 맥OOO를 찾아갔다. 세상에. 엄청난 인파의 프랑스 젊은이들이 무려 6대의 기계 앞에 줄을 나라비로 서서 햄버거를 고르고 결제를 하고 있었다. 주문을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햄버거를 조리하고 나눠주는 사람만 몇몇 간헐적으로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영어로 된 키오스크 기계 앞에서, 그나마 익숙한 ‘빅맥’이라는 단어를 간신히 찾아낸 나는 프렌치프라이와 콜라가 함께 나오는 콤보메뉴가 있는지 열심히 찾았지만, 화면 어디에서도 그런 건 찾을 수가 없었다. 콜라를 추가해야 하는 타이밍을 놓친 나는 그냥 빅맥 햄버거만 두 개 주문해서는 결제를 간신히 마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키오스크 기계가 이렇게까지 많지는 않았기에, 그날 파리의 맥OOO의 모습이 나에게 생경하게 다가온 것은 당연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이제 우리나라도 웬만한 음식점의 주문은 모두 기계로 대체되었다. 심지어 시골의 읍, 면 소재지에 있는 음식점도 마찬가지. 물론 햄버거와 같은 패스트푸드를 젊은이들이 즐겨 먹는다고는 하지만, 일반 음식점까지 다 그렇게 바뀌고 있다는 것. 나도 주문하기가 어려운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아예 사 먹지도 말라는 걸까.   




얼마 전, 한 돈가스 전문점에서 돈가스를 먹고 있었다. 어떤 할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오셨는데, 반기는 사람 하나 없고, 쳐다보는 사람 하나 없이 입구에는 떡하니 기계만 놓여 있었다. 할머니는 한참 서서 두리번거리시다가 그냥 가게를 나가셨다.


아마, 어떻게 주문하는지 모르셨을 것이고, 응대하는 사람도 하나 없으니 그냥 돌아 나가신 것. 가게 주인이 있었다면 손님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겠지만, 아르바이트생들만 있었는지 주방에서 자신들의 일만 하느라 할머니는 아는 척도 안 했던 것이다.


나라도 가서 어떻게 주문하는지 도와드릴걸. 생각만 하다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채 그냥 가게에서 발걸음을 돌리게 만들었던 할머니가 종종 생각난다.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건, 어쩌면 종이에 예쁘게 배치된 글씨가 아닌 컴퓨터와 같은 각종 기계를 통해 느닷없이 마주하게 된 글자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면서부터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강력한 전파를 뿜어내는 온갖 기계의 그래픽 속에 섞인, 그림인지 글인지 알 수 없는 간헐적인 글자들 사이에서 난, 내 몸 안에 있는 글자들 마저 튕겨내기 시작함을 느낀다.

   


상실의 삶

뭔가 채우려 노력했던 시간들을 지나

나의 무엇인가가 하나씩 빠져나가는 느낌

채워지지 않으며 빠져나가기만 하는 삶      

특히나 ‘글’이 그렇다.

내 몸이 글자를 튕겨내고,

그러면서 내 안에 채워져 있던 글자들마저 앗아가고 있다      

글자가 들어오질 않는다.     

글자가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는다.




*커버이미지: UnsplashClaudio Schwa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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