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목욕을 좋아한다. 시원한 바람이 살살 부는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있을 때 천국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많다. 약간은 쌀쌀한 겨울, 뜨끈한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주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이해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목욕재계(沐浴齋戒) 라는 말이 있다. 머리 감을 목沐, 목욕할 욕浴, 재계할 재齋, 경계할 계 戒
몸을 정갈히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부정을 피함. 제사를 지내거나 신성한 일을 할 때, 목욕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부정을 피하는 일. 불교에서 시작된 용어인데, 신라시대에 '목욕재계'를 계율로 삼는 불교가 전해지면서 '목욕'이 습관화되었고, 마음을 깨끗이 하라고 죄수에게 목욕 벌을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즉, '목욕'은 몸을 씻는 것 외에 마음을 씻는 의미도 있었던 것이다. 내게도 목욕이 그런 의미도 있는 것 같다. 목욕탕에 몸을 담그면, 모든 것이 이해될 수 있다는 나의 마음을 보면 그렇다.
불교가 '목욕재계'를 율법으로 정했고, 통일신라시대 불교가 국교가 되면서 우리 민족의 목욕 문화가 더욱 성행했다고 한다. 고려 시대에 질병 치료 및 예방의학의 개념이 더해지며 ‘목욕’이 서민들의 생활양식으로 전승되어 대중화되었다.
민족마다 목욕 문화가 다른데, 온천이 풍부했던 일본에는 목욕 문화가 발달되어 있고, 물이 귀했던 사막지대의 몽골과 같은 곳에서는 물에 몸을 씻는 것을 금기시했다고 한다.
욕조가 있는 집에서만 살다가, 최근 욕조가 없고 샤워부스만 있는 집에서 2년 반 정도를 살았다. 때마침 그때가 코로나 기간과 겹쳐서, 목욕탕에 갈 수도 없고, 몸을 탕 안에 담그고는 싶은 어려운 날들을 보냈던 적이 있었다.
작년 이사 온 지금의 집은 샤워부스만 있는 집인데, 꾸역꾸역 인테리어를 하면서 욕조를 집어넣었더니 배수가 원활하지 않아 계획과 달리 반신욕을 자주 하지는 않는다. 다행히 목욕탕에는 자유롭게 갈 수 있게 되었지만, 코로나를 겪으며 목욕탕이 경영난으로 폐업을 많이 했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만만한 목욕탕에는 항상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남편은 목욕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여행지의 유명 온천이 있으면 항상 코스에 넣는 편인데,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아, 일정상 항상 맨 마지막으로 밀린다. 얼마 전 여행에서도 온천을 코스에 넣었었지만, 결국 가지 않았는데, 돌아오면서 생각해 보니 보통 아쉬운 게 아니었다.
나는 엄마와 다른 모녀처럼 아주 친밀하고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목욕탕에 함께 가는 것은 좋아했다. 목욕탕에 함께 갈 수 있는 엄마가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살아 일 년에 몇 번 보기도 힘들 정도니, 목욕탕은 언제 같이 갔었나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생각해 보니, 예전부터 외할머니가 온천욕 하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온 가족이 함께 온천에 자주 갔던 기억이 있다. 옹기종기 탕에 들어가서 놀다가, 서로 때를 밀어주고 나와서, 고기에 시원한 동치미국수 같은 것을 사 먹었던 것 같다. 세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물에 몸을 담그고, 때를 밀고, 씻어내는 일이 귀찮다면 귀찮은 일인데 뭐가 그리 좋을까? 싶은 생각을 해보았던 적이 있다. 그리고, ‘목욕재계’라는 말에서 바로 그 답을 찾았다. 몸을 정갈히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부정을 피함. 정말로, 목욕이라는 행위 자체가 몸을 씻어내는 것 외에도, 마음까지 씻어내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깨끗한 마음과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으로 보아서는 말이다.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토요일. 오늘은 이른 저녁을 먹고, 지난번에 가격 대비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던 위례에 있는 목욕탕에나 가봐야겠다. 그 시간 즈음이면 좀 덜 붐비려나. 위례에 사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목욕탕이 하나라니. 코로나가 원망스럽다. 오늘도, 잠깐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