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억으로 가득한 곳
바다 VS 산이라고 묻는다면 난 한치에 망설임도 없이 바다!!! 를 외친다.
바다에 가면 마음이 참 편해지고 좋다. 모래사장에 앉아서 하루 웬종일이라도 있을 수 있다. 그냥 바다만 바라보고 멍 때리다 보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철썩철썩 파도치는 소리, 끼룩끼룩 울어대는 갈매기, 짭조름한 바다 냄새들로 가득하다. 마구 요동치던 마음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잔잔해진다. 그래서 바다가 참 좋다.
할머니 댁이 강원도여서 어렸을 때부터 바다 볼 일이 많았다. 언덕 위 시골집에서 바라보면 쫙 펼쳐진 바다가 한눈에 보였다. 새벽에 일어나 바다를 바라보면 오징어잡이 배 수십 척이 환한 빛을 밝히고 둥둥 떠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많은 배가 떠있는 걸 본 건 그게 처음이었는데 너무 신기하고 멋있었다. 뭍에서는 하얀 등대가 오징어잡이 배가 잘 돌아올 수 있도록 열심히 환한 빛을 뿜어대고 있었다. 지금 떠올려봐도 그 풍경이 꼭 한 폭의 그림 같다.
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엔 여러 가지 바다 반찬이 올랐다. 노릇노릇한 생선구이, 초장에 무친 새콤달콤한 미역, 커다란 문어를 삶아낸 야들야들한 숙회, 그리고 할머니표 김치까지 진수성찬이었다. 할머니와 그렇게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할머니가 해주셨던 반찬들의 맛과 냄새들이 지금도 가끔씩 생각난다. 할머니표 김치 말고는 지금도 먹어볼 수 있는 반찬인데 뭔가 느낌이 다르달까?
내가 추억으로 남겨둔 또 다른 음식이 있다. 지금도 그 맛이 생생하다. 개떡이라고 불렀던 거 같은데 감자를 삭혀서 만든 달달하고 쫀득쫀득한 식감의 음식이었다. 동네 할머니들께서 직접 만들어 따끈따끈한 떡을 빨간 고무대야에 이고 다니시면서 파셨던 기억이 난다. 한 여름 해수욕장에서만 맛볼 수 있어서 빨간 대야를 인 할머니만 보면 놀다가도 엄마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꼭 사달라고 했다. 이게 내 인생 첫 최애 음식이었는데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 시절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고는 더 이상 그 맛을 이어나가는 분들이 없는 것 같아 너무 아쉽다.
어느 여름 가족들과 찾았던 그 바다에 너울성 파도가 일었다. 너울성 파도는 파도가 일면서 휘감아 나가기 때문에 물속에 있는 사람을 바다 쪽으로 끌고 나가서 위험하다. 하지만 너울성 파도를 인지하지 못했던 나는 튜브도 없이 물에서 놀았고 점점 바다 쪽으로 휩쓸려 나가고 있었다. 어쩐지 모래바닥에 발이 닿일때마다 힘차게 도움닫기를 했지만 계속 제자리인 것 같더라니.. 아니 제자리에만 있어도 다행이었다. 모래사장에서 그 모습을 본 가족들은 엄청 놀랐다고 했다. 그때 아빠가 얼른 뛰어들어 구해주지 않았으면 정말 큰일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일을 겪고도 나는 물이 무섭지가 않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고 말하는 엄마와는 달리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던 탓에 (내가 죽는지 사는지도 몰랐으니 말 다했다) 아직도 물에 첨벙첨벙 잘만 들어간다. 바다를 보고 앉아 있으면 몸이 근질근질 얼른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인다. 바다 수영은 파도 타면서 둥둥 떠다니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아! 참고로 난 수영을 할 줄 모른다. 기껏 해봤자 숨 참고하는 잠수? 아님 개구리 수영 정도) 그래도 그 일 이후로는 튜브도 없이 물에 들어가는 짓은 하지 않는다.
가끔씩 이런 따뜻한 추억이 가득한 바다에 가서 앉아 있으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평상시에는 쉴 새 없이 돌아가던 뇌가 딱 멈춤 상태가 된다. 저 멀리 바다 너머 수평선을 보고 있으면 온갖 시름이 다 없어지는 것만 같다. 저 바다 끝엔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끝으로 완벽하게 정신줄을 놓는다.
바다같이 넓은 마음이라는 말처럼 바다는 정말 내 모든 마음을 다 받아줄 것만 같다. 그래서 그렇게 어리광 부리듯이 뛰어들고 싶기도 하고 폭싹 안기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나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때면 꼭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왠지 바다가 내 걱정과 고민들을 싹 다 가져가 줄 것만 같다. 두꺼비에게 헌 집 줄 테니 새집을 달라고 하는 것처럼 나는 바다에게 걱정과 고민을 던지고 복을 가져다 주기를 기도한다.
바다에는 좋은 추억만이 가득하다. 내가 행복한 한때를 떠올린다면 꼭 바다가 있다. 누구나 그런 나만의 장소가 있듯이 나에게는 바다가 그런 곳이다. 언제 가도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곳, 기분 좋은 곳,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함께 했던 곳 그런 곳이 하나쯤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울적해진 마음에 카페에서도 오래 앉아 있지 못하는 오늘 같은 날에 떠올리기 딱 좋은 장소이다. 바다 생각에 기분이 조금씩 나아진다.
아, 바다 가고 싶다.
바다에 다녀와서 꾸민 다이어리에 그날에 행복 이야기가 담겨있다. 다시 읽어 보아도 기분 좋은 설렘이 가득하다. 아, 진짜 바다 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