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내려오고,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가장 먼저 부딪힌 것은 가족의 언어였다.
우리 가족의 못된 언어와 말투가 관계에서 큰 걸림돌이 되었다. 울고 소리치고 싸우는 일이 잦아졌다. 대화를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인 '조용히 해~'도 듣는 이에게 큰 허탈감과 불쾌감을 부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그 말은 대화의 차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민망할 때, '아이 참 쑥스럽게'가 아닌 '아~ 조용히 해라'라고 말한다는 건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 그 의도와 정반대로.
우린 우리의 룰을 만들었다. 여기 있는 동안 정신적으로 건강해지자는 뜻에서였다. 사용 금지 단어인 '조용히 해', '시끄러워'를 사용하면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이 유치한 규칙이 아주 조금 우리의 언어를 바르게 하도록 효과를 준 듯하다. 가족일지라도 조심히 말해야 하며 가족일지라도 말까지 편해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딸 셋은 무조건 저 금지어가 나오면 바로 빨간 색연필로 횟수를 체크했고, 벌금도 꼬박꼬박 챙겨 받았다. 일주일에 하루인 휴무일에 일주일 동안 모은 벌금으로 피자, 치킨 파티도 열었다. 벌금의 대부분은 엄마의 지갑에서 나왔고, 우린 고깃집 사장님의 지갑을 탈탈 터는 것에 결코 미안해하지 않았다.
정말 이 벌금제도를 통해 우리 가족의 안 좋은 말버릇을 고쳐나갈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중이었다. 내 나이 26세에, 난 가족과의 권태기를 극복하고 있다. 대학생이 되어 본가를 떠난 후 내 삶을 버티려고 본가로 내려갈 시간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가족과 살 붙으며 함께 있는 시간은 굉장히 적었고, 이렇게 멀어진 시간이 멀어진 가족을 만들었다. 그런데 몸도 마음도 다 큰 상태에서 가족과 지내려 하니 불편하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혼자 자취하며 살았을 때에는 조심할 것도 없었는데 지금은 말조심이라니!
피가 뭐길래, 이리 질기던가. 가족이 뭐길래, 이리 내 속을 앓게 만드는가.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경이로움을 다시 느꼈다. 끊어낼 수 없는 혈육의 끈이다. 고무줄을 확 잡아당기면 늘어나지만 다시 놓게 되면 고무줄이 제자리를 찾듯, 우리 가족도 그러하다. 미워서 홱 돌아가고 싶을 때도 많고 확 멀어지려 하지만 어쨌든 결국 다시 돌아와 제자리, 본래의 거리를 찾아온다.
그래, 가족은 이런 거다. 그리고 이 가족의 형태를 유지하려면 어쨌든 피붙이라도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가족의 매서운 언어를 노력으로 녹여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