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리고 딸 셋, 우리 넷은 정말 안 맞다. 20년을 같이 살았는데도 이렇게 안 맞을 수가!
강아지와 고양이, 사자와 호랑이, 늑대와 여우처럼 아주 상극이다.
엄마는 돼지찌개, 첫째는 김치찌개, 둘째는 된장찌개, 셋째는 순두부찌개를 좋아하고,
엄마는 고구마케이크, 첫째는 생크림 케이크, 둘째는 초콜릿케이크, 셋째는 치즈케이크를 좋아한다.
이건 극히 일부이다. 음식부터 옷, 향, 영화, 여행지까지 다 제각각의 취향을 가지고 있다.
또 네 명이서 마음이 맞기도, 타이밍을 맞추기도 힘들다. 가족 여행을 가려고 해도 한 명은 "아프다, 오늘은 쉬고 싶다"며 꼭 한 명은 일탈했다. 서로의 생활패턴, 습관도 너무 달랐다. 청소를 할 때, 그때그때 바로 해야 하는 첫째, 몰아서 하는 셋째, 분리수거에 예민해 무조건 재활용을 해야 하는 둘째. 청소 한 번에도 서로 다른 성향으로 항상 전쟁을 치르곤 했다.
우리는 떨어져 지내면서 달라진 생활패턴을 20대 중후반에 다시 맞춰야 했다. 평화를 위해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양보와 배려였다.그 시작이 '간섭하지 않기'였다. 자기의 기준을 다른 이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이 간단해 보이는 진리가 실제로는 실현하기 가장 힘든 행동이었다.
가족이니깐 더 나은 길이 있다면 그 길로 인도해야 한다는 선의가 큰 문제였다. 하지만 그 참견을 받는 대상에겐 결코 선한 의도로 느껴지지 않았으며 결국 그 선의는 간섭과 잔소리임을 인지해야 한다. 그렇게 우린 노력했다.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건 쉬운 일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이들이 함께 할 때면, 평화를 위해 누군가의 양보와 희생이 절대적이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같은 피를 나눈 자들에게 가장 힘든 것이 양보이다. 완벽한 타인에게는 배려해 주고이해해 줘도 곁에 있는 가족에게는 어려운 일이 된다.
가족이기에 하기 힘든 노력을, 가족이기에 하기로 결정했다. 가족이어도, 비슷한 가정환경을 가지고 있어도 우린 다른 인격체로 성장했고 우린 다를 수밖에 없다. 모녀라도, 자매라도 같은 바다를 함께 건너고자 한다면, 한 배를 타야 한다. 우린 그 한 배를 '서로를 인정하는' 것으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