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잠바라기 Oct 22. 2023

5. 친구들과 떨어지다

괜찮아, 몸은 떨어져도 마음은 연결되어 있잖아.

난 매서운 추운 겨울에 따뜻함을 보냈다.


영하 10도의 한겨울의 날씨에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마음이 따뜻하다는 말이다. 나의 친구들이 나에게 온기를 전해줬기 때문이다.  


본가로 다시 내려갔고, 그 후 곧바로 우리 가족은 시골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친구들과의 물리적인 거리가 길어졌고, 쉽게 볼 수 없었다. 시골인지라 교통편이 좋지 않아 쉽게 타 지역에 갈 수 없었다. 정 붙인 6년의 도시 또한 헤어졌다. 난 나의 대학교가 있는 곳, 내 친구들이 있는 곳이 항상 내가 있어야 할 곳이며, 내가 언젠가 돌아갈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곳에서 발을 떼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잠시 보지 못할 인연들과의 인사 후 나는 시골로 내려갔다. 친구들과는 같은 도시에 있어도 자주 만나지는 않았던 터라 얼굴을 볼 수 없는 시간들이 익숙하긴 했다. 그런데, 친구들의 목소리가 그리웠다.




고등학생 때부터 곧잘 들어온 말이 있다.


"대학 친구들은 다 비즈니스야, 다 가짜야."


고향 친구, 고등학교 친구 말고는 다 가짜라고 하는데, 나에겐 이 공식이 참이 되진 않는다. 대학교에서 오랜 인연이 될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나랑 비슷한 이들을 만났고, '우리'로 묶이며 자주 만나지 않아도,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항상 친구라는 이름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느꼈다.


해와 달. 내 두 명의 친구를 해, 달로 부르겠다.


우린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되는 그 사이에,

그러니까 1월 1일이 지나서 20살은 되었지만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그 1월의 애매한 날에 성인이지만 아직은 아이 같은 티를 못 빼낸 그때부터 현재까지,

쭉 서로에게 진짜 친구로 지내고 있다.


우연한 만남이었다. 우리 학과는 한 학년에 10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이 있다. 그렇기에 입학한 지 7년이 지나도 아직 얼굴도 모르는 동기가 있을 정도이다. 합격 통지서를 받은 후 MZ세대답게 00 대학교 00 학과의 카카오톡 단톡방을 가장 먼저 찾았다. 100여 명이 넘는 정원이 무색하게 9명만 있는 단톡방이 덩그러니 존재해 있었다.

 

그 9명끼리 왜 이렇게 사람이 모이지 않는 것이며 의문을 제기할 때도 있었고, 입학 전에 만나자며 다 같이 회동을 약속한 날도 있었다. 그러다 한 친구가 알게 된 거다. 우리 단톡방 말고 대형 단톡방이 있다는 사실을! 그 후 우리는 웃으며 그 단톡방으로 모두 이동했고, 그 일은 작은 에피소드가 되었다. 어쨌든 9명의 인원은 서로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했고, 첫 대면 만남인 OT 때 함께 자리에 앉으며 말을 텄다. 그리고 해와 달과 나는 그 9명 중 일원이었고 우리는 서로를 발견했다. 모래사장에서 바늘이 아닌 진주를 발견한 거다.


우린 너무 닮았다. 외면적인 모습보다 성향이 많이 닮았다. 집에서는 의젓한 딸이었고, 학교에서는 조별 과제의 버스기사가 되어 혼자 떠맡을 때가 많았고, 직장에서는 믿을 만한 직원이었다. 2학년 때까지 3명이서 붙어 다녔고, 학교 선배들은 너네 너무 닮았다, 정말 자매 같다며 신기한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함께 과제를 하고, 공부를 하고, 영화를 보고, 만나고, 웃고, 떠들고, 놀았다. 서로의 대학생활에서 서로의 비중이 너무 클 정도로 우린 함께 했다.


약 4년의 기숙사 생활을 하며 가족보다 더 많이 보았고, 더 많이 부딪혔고, 더 많이 터놓으며 울었다. 내게 친구들은 한없이 솔직해지고 '나'를 보여주는 존재가 되었다.




그런 친구들과 떨어지게 되었다. 물리적인 거리가 길어졌고, 쉽게 볼 수 없었다. 정 붙인 6년의 도시 또한 헤어졌다. 난 나의 대학교가 있는 곳, 내 친구들이 있는 곳이 항상 내가 있어야 할 곳이며 내가 언젠가 돌아갈 곳이라고 생각했다. 이 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 곳에 발을 떼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진로를 고민하는 친구,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 우린 서로 다른 하루를 보내지만, 어찌나 서로가 궁금한지 전화만 하면 1시간 반을 통화해도 할 말이 끊기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만나자는 약속은 코로나19, 개인적인 사정 등으로 그 만남이 쉽지 않아 3개월에 1번으로 바뀌었지만 만남의 빈도가 우리의 애정을 증명해 주진 못한다.


떨어졌더라도, 여전히 서로를 아끼는 우리다. 대학생이 된 지 얼마 지났다고, 벌써부터 직장인, 공무원으로 다른 이름표를 붙였을지라도, 4년의 대학생활에서 결국 난 사람을 얻었다.


이전 04화 4. 엄마와 딸(가깝지만 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